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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故 박씨의 이모, “형사처벌 아니라고 태움 없는 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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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간호사연대 NBT가 주최한 ‘고 박선욱씨 추모집회’에 놓여진 국화와 촛불램프.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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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도 ‘태움’이 형사처벌 사항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어요. 다만 선욱이에게 일어났던 일의 진상을 밝혀주길 바랐던 거에요.”

21일 고(故) 박선욱씨의 이모인 A(47)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런 심정을 토로했다. 19일 경찰이 박씨 사건의 내사를 종결한다는 발표가 난 후였다. 경찰 관계자는 “폭행이나 모욕, 가혹행위 등이 있었다는 진술이나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 내사를 종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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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유족 설명을 토대로 정리. 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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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지난달 15일 송파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를 포함한 유족들은 간호사들의 ‘태움’ 때문에 박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봤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라는 의미로, 선배가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며 가르치는 문화를 일컫는 은어다.

A씨는 “폭행·폭언 등이 없었다고 태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경찰 발표로 마치 선욱이한테 가해졌던 태움이 아예 없었다는 식으로 알려져 답답하다”며 “경찰은 태움을 조사하는 기관이 아니라고 한다. 이제 유족들은 어디다 호소할 수 있냐”고 토로했다.

그는 경찰을 신뢰할 수 없었다. 15일 직접 조사를 받을 때도 그랬다. A씨는 “경찰에게 선욱이 동료가 다른 간호사에게 보낸 ‘배액관(뱃속에 고인 피나 체액을 빼내는 관) 사고’ 관련 문자를 보여주며 어떻게 수사를 종결할 수 있느냐고 했다. 하지만 읽어보고도 별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배액관 사고는 박씨가 숨지기 이틀 전 환자의 배액관을 실수로 망가트린 일을 말한다. 박씨는 이 일로 심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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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박선욱씨의 동료가 다른 간호사에게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 지난달 13일 박씨가 환자의 배액관을 망가트린 후 상황이 적혀 있다. [사진 고 박선욱씨 유족]


A씨가 경찰에게 보여줬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면 ‘마지막 날 의사가 개X랄하고 관 빼먹은 거 고발하겠다고 난리 피운 거는 쏙 들어가고’ ‘애가 마지막에 그거 듣고 저 고소 당해요? 그랬대’라고 적혀 있었다. A씨는 “이 사고 이후 선욱이가 자기 휴대전화로 ‘의료소송’을 600회 검색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숨지기 20분 전부터는 서른여섯 번을 검색했다. 검색을 하면서 실낱 같은 희망이 없을까 고민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A씨는 태움은 분명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9월 입사 때만해도 밝았던 조카가 몇 개월만에 퇴사까지 생각해서다. 그는 “너무 힘들다고 해 2월말에 퇴사하기로 했었다”며 “동료들 하고 나눈 카톡을 봐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힘들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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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선욱씨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사진 고 박선욱씨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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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전해준 숨진 박씨의 카톡 내용을 보면 ‘이제 쌤한텐 무서워서 뭘 못 여쭤보겠어’ ‘더 떨려 막…정신을 못차리겠어’ ‘약도 모르고 막 이래서…진짜 많이 더 혼날 듯 해’ ‘나 이런 거 하면서 설명을 일도 못 들어…선생님이 쫘자작 봤지’라는 글이 있었다. 동료가 ‘쌤이 자존감 떨어지게 하루 종일 들들 볶드만’ ‘혼냈다가 비꼬다가 정색하다 웃다가 화내다가’라고 보낸 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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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선욱씨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카카오톡 메시지. [사진 고 박선욱씨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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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따르면 박씨의 종이 유언장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휴대전화에서 ‘업무에 대한 압박감 프리셉터 선생님의 눈초리(때문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한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는 글이 남아 있기도 했다.

A씨를 포함한 유족들은 병원 관계자들의 처벌을 바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병원 측의 행동에 대한 실망은 크다고 했다. 그는 “선욱이의 병원 선배들이 대중에게 마녀사냥을 당하거나, 어떤 처벌을 받길 원하지 않는다"며 "태움은 개인 몇 명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의 잘못이 가장 크고 체계적인 시스템과 교육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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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선욱씨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카카오톡 메시지와 박선욱 프로필 화면. [사진 고 박선욱씨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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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숨진 박씨의 부모가 아니라 자신이 유족의 대표 역할을 하는 이유도 설명했다. A씨는 “언니(숨진 박씨 어머니)는 자식의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터질 거 같다고 말하는 상태다. 사망 신고하자는 말 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선욱이의 휴대전화도 정지하지 않은 채 그대로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의 진상 규명과 병원의 진심 어린 사과가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찰 측은 “3개월 동안 숨진 박씨와 함께 일한 전 동료를 찾아내 진술을 듣는 등 참고인 17명을 조사했다. 유족들에게 당시 정황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제출해주길 바란다”면서도 “이 사건에서 약자는 유족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유족이 원한다면 내사를 종결하지 않고 수사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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