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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경적 못듣고, 파란불 못봐도' 고령운전자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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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적성검사 잦아졌지만 청각검사 없고, 자진신고제도 '여전'

전북CBS 김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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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2일 오후 A(70)씨가 몰던 승용차가 전북 김제시 한 마트로 돌진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마트 유리창과 진열대가 파손됐다. 경찰은 A씨가 오른발에 깁스를 한 채로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발이 미끄러져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보고 있다.

#2 지난해 4월 25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B(69)씨가 몰던 차량이 도로 양쪽으로 주·정차 중인 차량 9대를 들이받은 후 앞서가던 차량을 추돌했다. 이 사고로 인근을 지나던 보행자 2명이 차에 치여 숨졌다.

◇ 고령운전자 늘면서 사고도 많아져…10년 새 3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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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운전자가 늘면서 이들이 낸 교통사고도 급증하고 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사고 위험성도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개발원과 도로교통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 2006년 87만 명 수준이던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수는 지난 2016년 250만 명에 달했다.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건수 역시 같은 기간 약 2만 건에서 6만 1천여 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고령으로 갈수록 사망자 증가세도 완연하다. 2007년부터 최근 10년 새 고령운전자 중 65~69세 사망자 수 증가 추세는 미미했다. 반면 같은 기간 70대 운전자 사망자 수는 1.8배로, 80대의 경우 3.4배로 크게 증가했다.

7~80대 운전자 수가 늘어나는 한편 일부 고령 운전자들이 자신의 신체능력을 지나치게 믿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도로교통공단이 실시한 연령별 운전자 신체능력 설문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 고령자 중 75.7%가 본인의 신체능력이 '좋다'고 응답했다.

◇ '늙은 것도 서러운데 생계 문제까지' 老 운전자들 '눈칫밥'

여론의 뭇매를 맞자 운전면허를 스스로 반납하는 고령 운전자들도 점차 늘고 있다. 지난 2013년 582명이던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자 수는 지난해 3730명으로 불과 5년 만에 6배 넘게 증가했다.

노인들도 고령 운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노인들은 무작정 운전대를 놓을 수 없는 입장이다. 운전이 생계수단인 고령 운전자들도 적지 않아서다.

지난 2016년 통계청이 실시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근로자 71만 4천여 명 중 8만 2천여 명이 운수업에 종사하고 있다.

운수업은 전체 18개 업종 중 제조업(13만 5천여 명)과 부동산업 및 임대업(11만 3천여 명)에 이어 고령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업종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청과물 도매상에서 운전을 했다는 이모(79)씨는 "'내 잘못으로 남이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고 있는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언제든 사고를 낼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항변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동갑내기라도 건강 상태에는 개인 마다 차이가 있는 법인데 늙었다고 한데 묶어서 운전을 못하게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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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운전면허 종별 적성검사 항목 및 신체검사 기준 (사진=도로교통공단 제공 문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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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허갱신주기 단축‧교육 의무화로 OK?…사고 방지책 '글쎄'

고령 운전자 사고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이어져왔다.

먼저 70세 이상 운전자들이 1종뿐만 아니라 2종 보통 면허를 갱신할 때도 적성검사를 받아야 하는 제도가 지난 2011년 도입됐다.

내년부터는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이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인지기능검사를 포함한 교통안전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75세 이상 고령자의 운전면허 갱신(적성검사) 주기 역시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될 예정이다.

그러나 허점도 여전하다. 도로교통법상 대다수 운전자들이 소지한 1종‧2종 보통 면허 갱신 규정에 청력 검사가 빠져 있다.

색맹‧색약 등 색을 분별하는 감각 측정도 강제 사항이 아니다. 이상이 있을 경우 운전자 본인이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팔다리(사지‧四肢) 이상 유무도 본인이 신고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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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령 운전자가 자신의 운전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전북 운전면허 시험장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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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밀검사 도입·건강보험정보 공유가 대안 될까

현행 고령운전자 사고 방지책을 두고 부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현행 적성검사만으로는 고령 운전자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행 적성검사 제도 등 고령운전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법과 제도는 사실상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보다 적극적인 적성검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일례로 현행 운전적성정밀검사(자격유지검사) 수준의 신체검사를 도입하는 방법이 있다.

65세 이상 버스 운전자들은 지난 2016년부터 시야각·반응속도·공간지각능력·기억력·주의력 등 7개 항목을 판정받아 자격 유지 여부를 평가받는다. 70세 이상은 이에 매년 응시하고 있다.

내년 2월부터는 검사 대상에 65세 이상 택시기사도 포함되는 등 점차 확대 시행되고 있다.

이 교수는 또다른 대안으로 교통당국이 운전자의 건강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그는 "국민건강보험 정보를 도로교통공단이 공유해 운전자의 운전 기능 이상 여부를 미리 파악해 조치하는 방법도 있다"며 "다만 개인정보 보호 정책에 막혀 고령 운전자 사고 방지책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아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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