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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디지털스토리] "정규직 말 한마디에 직장에서 잘려요"…비정규직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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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성은 기자 = "첫 취업이었는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어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 졸업 후 3년 동안 취업 준비에 매달렸던 김 모(30)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작년에 비정규직으로 대기업에 취업했다. 학자금 대출과 집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김 씨는 "돈이 필요하기도 했고, 혹시나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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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최근 이런 기대감을 버렸다. 김 씨는 "회사에 들어와 보니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내부 차별도 심하고, 경력도 제대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 같아 퇴근하고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증가 추세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 비정규직 비율은 40%에 달했다. 60세 미만 근로자 가운데 청년층만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졌다.

비정규직 청년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각종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청년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 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차별을 해소하고,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비정규직 청년층에 확산…"빚 갚거나 생활비 때문에"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 임금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2003년 8월 기준 31.8%였으나 2015년 35.1%, 2016년 35.2%, 2017년 35.7%로 꾸준히 상승했다. 청년층 정규직 비율은 68.2%에서 64.3%로 역시 3.9% 포인트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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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60세 이하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의 비율이 증가한 것은 청년층이 유일하다. 30∼39세의 경우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이 2003년 8월에 26.3%였는데 2017년 8월에는 20.6%로 줄었다. 40~49세는 31.2%에서 26%로, 50~59세는 40에서 39.9%로 각각 떨어졌다.

저임금 및 불안한 일자리로 꼽히는 비정규직이 청년층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의 비정규직 증가는 취업난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9%로 2000년부터 현재 기준으로 측정한 이래 가장 높았다. 체감 실업률은 22.7%로 치솟았다.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비정규직으로 발길을 돌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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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PG) [제작 이태호]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원하는 일자리를 바로 얻지 못한 청년들이 학비를 대느라 생긴 빚을 갚거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비정규직 일자리로 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복순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비정규직 고용과 근로조건' 보고서에서 "청년층이 학교를 갓 졸업하고 찾은 일자리가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이들의 경력 형성에도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저임금, 고용불안 시달려…말 한마디에 잘리는 파리목숨

"경력 11년 차인 방송리포터인데 한 달 수입이 200만 원이에요. 하루 6만5천 원 일당으로 급여를 받는데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해야 그 정도 받아요. 프리랜서라서 휴일근무수당은 물론 4대 보험은 꿈도 못 꿔요. 근로기준법보다는 관리자인 방송사 정규직 말 한마디에 언제든 잘릴 수 있어요"

정의당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5년 발표한 '청년 비정규직 현황과 대안' 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비정규직 차별 사례다. 방송리포터 김 모 씨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대형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늘 직장을 잃을까 봐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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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격차도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정규직 근로자 월 평균 임금은 284만3천 원으로 비정규직 근로자 월 평균 임금 156만5천 원보다 127만8천 원 높았다.

양측 임금 집계를 시작한 2004년 8월에는 정규직 월급이 177만1000원, 비정규직 월급이 115만2000원으로 격차가 61만9000원이었다. 13년 사이에 양측의 임금 격차가 2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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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려워 한 번 정해진 임금과 처우가 굳어진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통로는 사실상 막혀있다.

국회를 첫 직장으로 4년째 행정보고 업무를 하는 한 모 씨는 "공무원 시험이 아니고서는 국회에서 쌓은 경력으로 정규직이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자리를 옮긴 직장인들의 고용형태 변화는 이직 전 정규직 직장인들의 경우 다시 정규직으로 이직한 비율이 90.2%로 높았지만, 비정규직 직장인은 정규직으로 이직한 비율이 45.3%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정규직, 비정규직 간 차별 줄여야

전문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개선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화하는 정책은 사회적인 부담이 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굳어져 있는 임금, 복지 등 차별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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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다. 우리는 하나다' 독일 노동절 집회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실제로 유럽 국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이를 줄이려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고용불안과 저임금 노동을 동반한 비정규직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유연화한 독일과 영국은 각각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하거나 최저임금지급 대상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막을 강화했다.

프랑스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탓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작다. 비정규직도 산업별·기업별 단체협약을 대부분 적용받고 사회보험에서 배제되지 않는 등 보호장치가 강하다.

네덜란드는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현상이 강하다. 특히 정규직과 파트타임 종사자가 임금, 휴무, 사회보장에서 차별을 받지 않기 때문에 근무 형태에 따른 갈등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도 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원은 "공공부문에서라도 청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시해야 한다"며 "역차별 문제는 기간을 두고 채용시험을 보게 하거나 비정규직 경험을 인센티브로 주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양질의 일자리 확충 노력과 함께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위한 대책을 지속해서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포그래픽=이한나 인턴기자

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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