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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박종철 열사 아버지 찾은 검찰총장 “사과 너무 늦어 송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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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검찰총장, 과거사 피해자에 첫 직접 공식사과

박종철 열사 숨진 지 31년만에

부친 박정기씨 병실 찾아 손잡아

“고생 못 돌봐 죄송, 다음에 또 방문”

유족 “검찰, 과거사위 권고 받아들여”


20일 오후 1시50분께 부산 수영구 남천동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90)씨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창가에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보낸 “쾌유를 기원합니다”는 글이 적힌 꽃병이 보였다. 박 열사의 형 종부(60)씨와 누나 은숙(55)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겨레

문무일 검찰총장이 20일 오후 부산 수영구 남천동 남천사랑의요양병원에 입원중인 1987년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를 만나 사과 인사를 전하고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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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2시2분께 문무일 검찰총장이 병실에 들어섰다. 문 총장은 박정기씨에게 “번거롭게 해 죄송하다. 너무 늦게 찾아뵙고 사과 말씀 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워 있던 박씨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다”라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문 총장은 “긴 세월 정말 고생 많았다. 잘 가꾸어서 제대로 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혼자 고생한 것을 돌봐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다음에 또 방문해 성과를 말씀드리겠다”고 박씨의 손을 잡고 사과했다.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지 31년 만이다. 검찰총장이 과거사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직접 공식 사과하는 것은 처음이다.

은숙씨는 “아버지가 지난해 2월 척추 골절상으로 수술받은 뒤 입원했다. 지난 2월초 문 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비공식적으로 다녀갔다. 그때 아버지가 ‘먼 길 와줘서 고맙소.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일찍 왔으면 좋았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종부씨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사항을 검찰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진실화해위는 2009년 검찰도 박 열사 고문치사 축소 은폐 조작에 깊이 관여했다고 짚고, 검찰과 국가가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

김세균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장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를 대표해 검찰총장이 찾아와 공식사죄하고 새 다짐을 한 것에 감사한다. 이 공식 사죄가 검찰이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돼 과거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국민을 위한 정의의 보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약 20분간 문병한 문 총장은 1층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87년 시대정신을 기억하고 있다. 그 시발점이자 한가운데 박종철 열사가 있었다. 검찰도 새로운 다짐을 하려고 이 자리에 왔다. 지금은 민주주의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 성숙한 시민 민주주의를 완성해 국민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지가 우리의 과제다.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총장은 “이렇게 찾아뵌 직접 계기는 영화 <1987> 관련 박종부씨의 인터뷰 기사였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엔 검찰이 해야 할 구체적 조처가 있었다. 검찰이 좀 소홀히 했다고 생각해 박종부씨께 만남을 요청했다. 흔쾌히 받아줘 용기내어 (지난달 초 박정기씨 입원 병원을) 방문했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죄송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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