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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정리뉴스]이건희 ‘차명’ 과세, 뒤늦은 속도내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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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키로 한데 이어 차명계좌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과세 절차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2008년 삼성특검에 의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 회장 차명계좌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그동안 뭐 했길래?’란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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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를 계기로 출범한 조준웅 삼성 특검은 2008년 4월 486명 명의, 1199개 차명계좌에 약 4조5373억원 상당의 이건희 회장 차명재산이 예치돼 있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은 삼성 특검 직후 차명계좌를 모두 실명전환하고 차명재산 중 일부 주식 등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사회에 전부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이 회장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으며 차명계좌 논란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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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차명계좌를 해지해 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징금과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이 회장이 2008년 삼성특검으로 드러난 1199개의 차명계좌(총 4조5373억원)에서 주식과 예금 대부분인 4조4000억원을 이미 찾아갔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 회장 차명계좌 문제는 지난해 대기업 회장들이 자택을 수리하거나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과정에서 회삿돈을 유용했다는 혐의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참여연대는 “이 회장이 불법 차명거래를 했다”며 검찰에 이 회장을 고발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삼성 차명재산 논란 속 ‘마이웨이’ 가는 이재용

박근혜 정부의 정경유착 폐해를 목격한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그대로 덮고 넘어가긴 어려웠다. 더불어민주당은 금융당국과 국세청과 당정협의를 열어가며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철저한 과징금 부과와 과세를 촉구했다.

금융당국은 당초 과징금 부과대상이 아니란 입장이었지만 법제처 유권해석을 통해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되는 이 회장의 차명계좌가 27개에 이른다고 이달 초 발표했다. 법제처는 금융실명제 실시(1993년 8월12일)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로서 실명전환의무기간 내에 실소유자가 아닌 예금 명의인 이름으로 형식적으로만 실명전환을 했던 계좌가 사후에 차명계좌로 밝혀진 경우, 실소유자는 자신의 명의로 차명계좌를 실명전환 해야하고 과징금을 부과해야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구멍난 법을 20년 넘게 방치한 탓에 과징금 규모는 30여억원에 불과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993년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시행된 금융실명제가 1997년 법제화될 때, 1993년 이후 만들어진 차명계좌에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만들지 못한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이건희 차명재산 또 발견, 재벌 불법 감시 손 놓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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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금융실명제법은 차명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을 사실상 전액(지방세 포함 99% 세율) 몰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그동안 정부가 소극적 유권해석을 고수하다가 지난해 하반기에 와서야 뒤늦게 과세 절차에 착수했다. 아어 국세청이 지난 2∼3월 두 차례에 걸쳐 삼성증권 등 금융기관에 이 회장 등이 운용한 차명계좌의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세액을 고지했다는 소식이 19일 알려졌다. 금융실명법 제5조에따라 부과해야 하는 이 회장 비실명재산의 이자 및 배당 소득에 대한 차등과세 과세 시한은 이달 10일이었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액은 1000억 원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세 대상은 2008년 이후 해당 계좌에서 발생한 소득이다. 국세기본법상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제척 기간이 10년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국세청, 이건희 차명계좌에 세율 90% 과세 고지

2008년 조준웅 특검이 애초에 명명백백하게 밝혔어야 할 사안이 10년이 지난 이후에야 처리되고 있는 것은 당국의 책임이 크다.

금융위원회는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후 개설된 계좌를 활용한 탈법 목적 차명 금융거래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지 수십년이 흘렀고, 조준웅 삼성특검이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발표한 지도 10년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시지탄이란 지적이 많다.

<오관철 기자 ok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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