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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우리는 충분히 '돌봄' 받고 있는가](5)정신질환자, 증상 발현서 병원 찾기까지 1년6개월…의료기관들은 경영 악화에 혐오시설 낙인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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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청량리정신병원 “운영 어렵다”…이달 폐업

경향신문

입원환자들은 영양이나 위생 상태가 잘 관리되지 않으면 병원 내 감염 등으로 오히려 큰 병을 얻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200병상 규모의 정신의료기관(G2)에 입원해 있던 50대 초반의 의료급여 환자는 약은 꼬박꼬박 먹었지만 식사를 거의 남기다시피 해 의료진의 걱정을 샀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이 환자에게 결핵이 발병한 것이다. 환자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2주간 입원 치료를 받고 약물 처방과 함께 퇴원했다. 보통 2주 정도 결핵약을 먹으면 관해(질병을 옮기지 않을 정도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제압한 상태)에 도달하는데, 이 환자 역시 주변에 결핵을 옮길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퇴원 이후 다시 돌아갈 병원이 마땅치 않았다. 원래 입원했던 병원에서 의료진과 직원들이 검사를 받았는데, 의료진 3명·직원 2명이 활동성 결핵으로 판정돼 치료를 받았다. 치료받은 의료진의 가족과 주변 접촉자들까지 검사를 받는 소동이 빚어졌다. 결국 이 환자는 이 병원에서 입원을 거부하는 바람에 등급이 더 낮고 환경이 열악한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질환자들은 원하지 않는 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여러 장벽에 맞닥뜨리고 있다. 증상 발현에서 병원에 오기까지 평균 1년6개월이나 걸린다는 분석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입원절차가 까다로워 포기한 경우도 적지 않고, 진료나 입원생활에 차별이 현존하며, 사회적 편견 탓에 자꾸 음지로 숨어든다. 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될 위험성이 상당히 높은 것이다.

지난달 23일 만난 정신의료기관 봉직의 ㄱ씨가 근무하는 병원은 매달 1000만원 이상 적자를 보고 있다. 의료진과 직원들의 급여를 삭감하며 버티고 있지만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한다. 자신도 관두고 싶지만 병원장이 고생하는 것을 차마 저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이후 환자 수가 줄었고, 의료급여 환자들에게서 발생하는 부담을 갑자기 없애기도 쉽지 않아 병원은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G2등급(4점 또는 3점) 중 4점은 G1.5등급으로 해 수가를 높여줘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국내 첫 정신의료기관인 청량리정신병원이 이달 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신의료기관들의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혐오시설이라는 주민들의 질시를 받아온 데다 경영악화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의료계에서 존경받는 고 최신해 박사(1919~1991)가 1945년 설립한 이 병원은 한국 정신의료기관의 살아 있는 역사다. 최 박사는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의 아들이다. 1956년 화가 이중섭이 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당시 원장이던 최 박사가 “정신질환이 아니다”라는 판정을 해서 퇴원한 일화, 시인 천상병이 1960년대 후반 거리를 떠돌다 행려병자가 돼 이 병원에 입원한 일화 등이 전해지는 곳이다. 병원 측은 “간호인력과 영양과 직원 등을 뽑기가 어려웠고, 최근에는 병상이 많이 비어 더 이상 운영하기 힘든 상황까지 몰렸다”고 밝혔다. 현재 청량리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200여명은 자신들을 돌봐줄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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