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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MT리포트] 태움피해 미국간 간호사 "주3일 근무, 연봉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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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이동우 기자, 방윤영 기자, 안재용 기자] [편집자주] 간호사들이 떠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력유출의 문제가 아니다. 간호 인력의 부족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국민 건강 저하→의료 관련 사회비용 증가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국민경제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메르스의 급속한 전파와 신생아 집단감염이 대표적이다. 좌시할 수 없는 간호사 유출의 현장과 문제, 대책을 짚어봤다.

[간호사 떠난다, 한국을](종합)]

"한국에 미련없다"…격무·폭력에 떠나는 나이팅게일

[간호사 떠난다, 한국을]①美 간호사 면허 응시 지난해만 1231명…4년만 약 2배 증가…태움에 삶 잿더미 살길 찾아 떠난다

머니투데이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간호사들이 환자를 대할 때 윤리와 간호원칙을 담은 나이팅게일 선서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불규칙한 교대, 심각한 감정노동,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과 같은 직장 괴롭힘 문화, 인력 부족에 따른 임신순번제…입사와 동시에 사직을 꿈꾼다.

10년 차 간호사 박모씨(32)는 지난해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높은 근무 강도는 물론 간호사 조직의 괴롭힘 문화 '태움'을 더는 견딜 수 없어서다. 박씨는 신규 간호사 시절 선배에게 '머리에 똥 찼냐', '벽에 머리 박고 죽어라' 등 갖은 폭언을 들었다. 머리나 허벅지를 맞는 일도 일상이었다. 이제는 선배로서 또 누군가를 괴롭혀야 할 판이다. 업무와 이민 준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지만 박씨는 현재 생활을 벗어나고자 이를 악물고 공부 중이다.

과중한 업무와 경직된 조직문화에 지친 국내 간호사들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19일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간호사 면허 '엔클렉스'(NCLEX-RN) 응시자 수는 1231명으로 2013년 715명보다 약 2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최근 미국의 이민 수속 기간이 짧아지면서 부담을 덜었다. 미국은 2013년 오바마 케어 실행으로 의료서비스 종사자가 부족해지면서 의료계통 이민 시장이 활황을 맞았다.

미국 간호사 취업이민 전문 컨설팅 회사 커리어랩 관계자는 "최근 이민 준비 기간이 1년 내로 짧아지면서 참고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많은 간호사들이 '한국에서 평생 간호사로 일할 생각을 하면 엄두가 안 난다'며 취업 이민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국내 간호사들이 해외 취업을 계획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중한 업무다. 대한간호협회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국내 병동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2016년 기준 19.5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일본 7명, 미국 5.4명, 캐나다·호주 4명과 비교하면 업무량이 3~5배 높은 셈이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주당 근로시간 한도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간호사 등 보건업은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박씨도 매일 18명의 환자를 혼자 돌봤다. 밤 근무 때는 24명까지 책임졌다. 박씨는 "낮 근무 때는 퇴근 후 1시간 자고서 밤 12시까지, 저녁 근무 때는 퇴근 후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며 "잠은 물론 밥 먹고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했지만 태움에서 탈출할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5년 차 간호사 엄모씨(32)는 1년 안에 미국으로 취업할 예정이다. 엄씨는 "하루 기본 10시간, 응급상황 발생 시 12시간 근무도 각오해야 한다"며 "근무지가 바뀔까봐 육아휴직도 제대로 못 쓰는 곳을 평생 직장으로 삼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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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많은 업무량에 더해 열악한 복지, 군기문화인 태움, 각종 성폭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간호사들을 해외로 내몬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직장에서 태움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간호사는 응답자의 40.9%에 달했다. 또 응답자의 18.9%는 직장 내에서 성추행·성희롱 등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환자(59.1%), 의사(21.9%), 환자의 보호자(5.9%) 순이었다.

반면 미국 등 해외에서는 간호사가 '전문 의료인'으로 대우받고 처우와 복지도 우리나라보다 좋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간호사 연봉은 평균 6만8450달러(한화 약 7300만원)로 한국 간호사 평균 연봉(3176만원)의 2배가 넘는다.

근무 형태도 한국은 보통 주 5일 3교대인데 비해 미국은 주 3일 2교대 근무로 이뤄진다.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서 지난해 발표한 '미국 최고 직업 100선'에서 간호사가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간호인력 부족은 국민의 건강권 위협과 직결된다. 여러 연구 논문에서 간호사 배치 수준이 낮을 수록 수술 환자의 사망률 및 폐렴 발생률이 높았다고 보고됐다. 특히 중환자실의 사망률이 높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주요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전망’ 연구결과에 따르면 향후 2030년에는 15만8000명의 간호사가 부족하다. 본격 시행된 치매국가책임제 등에 간호 인력이 투입돼야 하지만, 현 상태가 방치되면 간호인력 대란이 불가피하다. 이는 곧 국가 경제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점점 확산하는 간호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근무환경의 질을 높이는 조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혜숙 청주대 간호학과 교수는 "인력이 부족하니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신규 간호사에게 간호사 한 명 몫을 요구하고, 이는 선배 간호사의 가혹한 채찍질로 이어진다"며 "병원 자체적으로 조직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신규 간호사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지숙 원광대 간호학과 교수는 "업무 강도와 업무량 등 간호사 근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탄력 근무제도 도입, 간호교육의 질이 전제된 간호대학 입학정원 확대 등 행정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병원은 간호사를 전문 인력으로 인정하고 근무환경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민, 이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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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치르는 '백의의 천사', 꿈도 태웠다

[간호사 떠난다, 한국을]②출근은 당기고…식사는 미루고…12시간 풀근무…신규 간호사 이직률 38.1% "근무환경 종합 개선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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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의 악습인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집단 괴롭힘)이 없어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연세의료원 노동조합에서 제작한 '태움 배지' / 사진제공=연세의료원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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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한 간호대학에 다니는 3학년 문모씨(22)는 최근 진로에 고민이 생겼다. 언론과 지인 등을 통해 간호사들의 악습인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집단 괴롭힘)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접하면서다.

문씨는 암에 걸린 할머니를 보살피며 간호사를 꿈꿨지만 그 꿈을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틈날 때마다 공무원 등 다른 길도 알아보고 있다. 만약 간호사를 한다고 해도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간호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간호사 지망생부터 현직 간호사까지 절망적 현실에 꿈을 접는다. 고질적 간호인력 부족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19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사 수(2016년 기준)는 한국이 3.5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9명의 38%에 그친다. 2030년에는 전체 필요 간호사 인력의 44.5%에 달하는 15만8554명이 부족할 것이란 예상이다.

정부는 간호인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다. 근본적인 업무 체계와 문화가 바뀌지 않은 채 수급에만 신경 쓰기 때문이다. 간호사를 많이 배출해도 그만둬버린다는 얘기다.

당장 간호사가 되자마자 이직하는 비율이 높다.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자격증을 땄지만 생각과 다른 현실에 좌절한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신규 간호사(경력 1년 미만)의 이직률은 38.1%(6437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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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시절 선배 간호사들의 태움과 과중한 업무량을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두는 식이다. 입사 1년 만에 간호사를 포기한 김모씨(26)는 "낮은 연차에 어려운 업무를 몰아주는 불합리한 체계를 견딜 수가 없었다"며 "간호사가 아닌 다른 직종으로 이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서 전문 자격증을 활용조차 못하는 '장롱 간호사'가 숱하다. 2016년 기준 간호사 면허소지자 35만5772명 중 보건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17만9989명(50.6%)에 그친다. 면허소지자 절반이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일하거나 집에서 쉰다는 뜻이다.

간호사로 3년간 일하다 제약회사로 이직한 이모씨(30)는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을 때를 생각하니 3교대 근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간호사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인력 증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새로운 인력을 늘리는 일보다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지 않도록 임금 인상, 근무 환경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며 "의료기관이 지켜야 할 간호사 인력 기준을 세부적으로 마련하고 보건복지부가 이를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전체 간호사 수가 증가해도 근무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병원들은 인력난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며 "처우 개선, 다양한 탄력근무제 도입 등 유휴간호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간호인력 문제는 환자 안전, 생명 보호 문제와도 직결된다"며 "충분한 인력을 확충해야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민, 이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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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동안 끼니는커녕 화장실도…간호사의 하루

[간호사 떠난다, 한국을]③불규칙한 교대·심각한 감정노동·과중 업무 밥도 제때 못먹어, 열악한 근무환경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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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3월의 새벽. 대학병원 5년차 병동간호사 이모씨(27)의 출근길은 고달프다. 16일 오전 5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기는 이른 시각이라 이씨는 택시를 타고 출근한다. 이씨가 들어선 병원 현관에서는 밤샘 근무자의 타자 소리만 들린다.

이씨는 정해진 일정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한다. 신규(수습) 시절 선임 간호사에게 "신규가 일찍 안 오고 뭐하냐"는 꾸중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밴 습관이다. 교대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간호사들에게 2시간 초과 근무쯤은 일상이다.

이씨의 첫 업무는 환자 파악이다. 컴퓨터로 담당 환자를 확인하고 환자에게 나눠줄 약을 점검하면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오전 7시 정식 근무 시작과 함께 이전 근무자에게 업무를 인계받는다.

교대시간은 신규 시절 이씨에게 두려움 그 자체였다. 선임과 가장 오래 마주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선임은 "난 신규 알레르기가 있다", "신규 다음 근무를 받으면 화가 나"라는 식의 면박을 줬다. 일부러 이씨의 퇴근을 늦추기 위해 인계를 받아주지 않는 일도 허다했다.

교대가 끝나면 이씨는 병동을 돌며 환자들을 만난다. 이씨가 담당하는 환자는 총 15명이다. 이들의 혈압과 체온, 징후를 확인한 이후 진료 차트에 기록을 남기고 약을 나눠준다. 퇴원 환자를 찾아가 퇴원 교육을 하고 나면 어느새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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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출근한 지 6시간째가 지나며 허기가 몰려 오지만 환자들의 식사부터 챙겨야 한다. 환자들의 식전 약을 돌리고 대소변을 점검한다. 정작 본인은 밥은커녕 화장실 갈만한 여유도 없다.

"야, 너 물 좀 떠와." 점심 약을 돌리던 이씨에게 한 환자가 말한다. 간호사를 하녀 부리듯 하는 환자나 보호자들은 흔하다. 의사 앞에선 고분고분 하다가도 간호사에게만 돌변한다. 간호사를 전문직으로 보지 않는다는 스트레스를 꾸역꾸역 삼키며 허기조차 잠시 잊는다.

간호사들의 점심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번갈아 점심을 먹어야 하지만 이씨는 오늘도 점심을 거른다. 수술을 마치고 오는 환자들을 만나 경과를 설명해야 하는 일이 더 급하다. 너무 바쁘다 보니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것이 항상 아쉽다.

어느덧 오후 5시. 출근한 지 12시간이 다 돼서야 이씨의 하루 업무가 마무리된다. 간호사들은 8시간 근무가 기본이지만 이씨는 오늘도 4시간을 훌쩍 넘겨 일했다. 이날 이씨는 40회 이상 환자들을 챙기며 화장실 한번, 말린 고구마 3조각으로 버텼다.

집에 돌아와 하늘이 어두컴컴해질 무렵에야 이씨는 첫 끼니를 간단히 때운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싶지만, 근무 때문에 아무래도 무리다. 다음날도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기절하듯 잠을 청한다.

숨 돌릴 틈 없는 과중한 업무의 연속은 이씨 뿐만이 아니다. 조성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정규 근무시간을 2시간 초과해 평균 10시간을 근무한다. 식사와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은 평균 21분에 그친다. 약 39%가 "식사를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영민, 이동우 기자

미국 이민간 男간호사 "군대 갈굼보다 태움 더해"

[간호사 떠난다, 한국을]④美간호사 해보니…주 3일 근무에 연봉 2배↑, "수평적 문화…전문성 키워 미래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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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부터 미국 뉴욕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장찬우씨(30, 사진 왼쪽)가 소속 병원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 사진=장찬우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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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알았지만 막상 와보니 차이가 크다. 미국에 오는 게 답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뉴욕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한 장찬우씨(30)는 확신에 가득 찬 말투였다. 장씨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간호사 이민을 위해 준비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장씨는 미국에 오기 직전 2년 동안 서울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했다. 남자 간호사인 그는 당시 생활을 군대와 비교했다. 오히려 군대의 갈굼(군기를 잡기 위한 고의적 괴롭힘)보다 간호사들의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집단 괴롭힘)이 한 수 위라고 혀를 내둘렀다.

장씨는 "바쁜데 선배들 눈치를 보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선배 간호사들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중증도 분류와 같이 경험이 쌓여야 할 수 있는 업무를 시켜놓고는 못 한다고 혼내기 일쑤였다.

미국의 문화는 달랐다. 간호사끼리는 물론 의사와도 동등한 관계로 일했다. 장씨는 "한국에서는 의사가 명령하면 무조건 해야 하는 상명하복 시스템이었는데, 미국에서는 의사가 진료할 때 간호사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도 한다"며 "전문직으로 인정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2년 동안 근무하고 올해 초부터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간호사 이석영씨(가명·35)도 비슷한 생각이다. 이씨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찾기에는 미국이 한국보다 좋다"고 말했다.

이씨가 느낀 양국의 근무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야간 근무를 하는 이씨는 병원에 출근하면 하루 6명의 환자를 돌본다. 오후 7시 출근해 5시간가량 환자 상태 점검 등 기본적인 업무를 본다. 자정부터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중간중간 환자를 살펴보는 정도다.

1인당 평균 19.5명의 환자를 담당해 숨 돌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한국 병동의 간호사보다 업무 강도가 현저히 낮다. 이씨는 "한국에서는 근무 중 끼니를 거르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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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일주일에 3일만 일하는 미국의 근무 시스템도 큰 장점이다. 이씨는 근무일 외에는 집에서 충분히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한다.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며 여가도 즐긴다.

한국에서 8시간씩 3교대로 일할 때는 상상도 못한 생활이다. 일주일씩 근무시간대을 옮기다 보니 불규칙한 생활에 시달렸다. 그나마 인력 부족으로 일주일에 하루 이상 쉬기 어려웠다. 이씨는 "한국에서는 내 생활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태움과 열악한 근무환경도 문제지만 이들이 이민을 결심한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미래'다. 장씨는 "10년차 간호사와 1~2년차 간호사의 업무와 처우가 같은 한국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장씨는 '전문 간호사'(Nurse Practitioner, NP)의 길을 꿈꾸고 있다. NP는 간호사지만 의사와 같이 진찰과 처방권을 갖는다. 충분한 경험을 쌓고 전문 교육을 이수하면 자신이 직접 클리닉도 운영할 수 있다.

한국을 떠난 이들은 국내 간호사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를 '교육의 부재'로 봤다. 한국은 교육 기간을 명분으로 2~3개월 동안 월급을 적게 줄 뿐,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신규 간호사를 현장에 바로 투입한다고 지적했다. 신규 간호사의 미숙한 일처리가 태움의 빌미를 주고 그 태움을 못 견뎌 일을 그만두게 된다는 얘기다.

장씨는 "미국은 신규 간호사 교육에만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며 "한국처럼 인력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신규 간호사를 현장에 바로 투입하면 결국 피해는 환자한테 돌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영민, 이동우 기자

이대론 '제2의 메르스·이대목동병원 사태' 또 나온다

[간호사 떠난다, 한국을]⑤복지부에 간호 전담과도 없어…"인력난과 열악한 처우·근무환경 등 다 뜯어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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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메르스 사태와 이화여대부속목동병원의 신생아 집단 감염 사건은 간호사의 인력난,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 부실한 교육시스템의 복합적인 문제가 바탕에 깔렸다. 이런 현실에 계속 눈을 감는다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나아가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소선 연세대 간호대 교수는 “간호사 한 명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시각으로는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건이 또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며 “간호사의 인력난과 더불어 훈련이 부족한 현실 등 간호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신규 간호사를 숙련된 경험·기술을 필요로 하는 중환자실 등에 무작정 투입하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도 1~2년차 밖에 되지 않은 신규 간호사가 투입됐다.

배경은 고질적인 인력난이다. 김 교수는 "수행능력이 준비된 뒤 중환자실에 배치하는 게 엄연한 순서"라며 "예컨대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의 경우 3년 이상 경력자에 한 해 지원하는 간호사만 중환자실에 투입한다"고 밝혔다.

또 병원 약제부의 인력난을 이유로 약제를 주사기에 나눠 담는 작업을 간호사에게 미룬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조사한 질병관리본부는 이달 4일 간호사가 지질영양제 1병을 개봉해 주사기 7개에 옮겨 담는 과정에서 신생아 사망 원인인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밝혔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중환자실 환아에게 제공될 약제는 반드시 병원 약제부에서 나눈 뒤 사용해야 한다"며 "하지만 약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균작업대인 클린벤치(Clean Bench)를 비롯해 감염방지 시설이 없는 환경에서 간호사들은 의사의 지시와 병원 지침에 따라 주사 약제를 직접 분할해 투여해왔다"고 밝혔다.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간호사 인력난 해소, 체계적인 교육, 직무환경 개선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먼저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는 임금 수준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병원간호사회가 2015년 발표한 '병원간호사 근로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 초임 평균 연봉은 2944만원(4년제 대학 출신 기준)이다. OECD 국가 평균보다 10% 낮다. 따라서 OECD 평균 수준으로 최소 연봉 3600만~4000만원은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간호사는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지만 저임금을 받는 게 현실"이라며 "OECD 평균 수준으로 최소 연봉 3600만~4000만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지방의 중소병원(300병상)에서 간호사 초봉으로 3600만원을 제시하자 입사 경쟁률이 3대1로 치솟은 사례도 있다. 연봉 인상은 수도권 인력 쏠림 현상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신규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실습교육도 필요하다. 전국 204개 간호대학 중 해당 대학의 교육과정과 일관된 실습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자대병원(의과대학 부속병원)을 갖춘 곳은 20%뿐이다. 나머지 대학은 실습 병원을 찾아다니며 해당 병원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교육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신규 간호사 교육으로 1년 과정의 표준화된 '간호사 레지던시 프로그램'(NRP·Nurse Residency Program)을 운영한다. 신규 간호사가 업무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맞춤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직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간호 인력 풀' 운영이나 1인당 환자 배치수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간호 인력 풀은 병가나 휴가 등 기존 간호사가 일시적으로 근무하지 못하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을 항상 대비해두는 방식이다. 예컨대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1대5'로 정했다면 이 조건을 항상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다. 우리나라는 최소 인력으로만 유지돼 병가나 휴가 등으로 인력에 구멍이 나면 1명이 2명 몫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조성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전체 공급 측면에서 간호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며 "미국은 간호사 1명이 환자 5.4명꼴로 담당하지만 한국은 종합병원 기준 16.3명으로 3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전국적으로 간호사 1명당 환자 배치를 줄여 업무량 등을 조절해야 한다"며 "그래야 빠져나가는 인력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간호 정책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는 현실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간호담당관제는 1973년 폐지됐다. 현재 보건복지부 전체 75개 과 중 간호과는 없다. 다른 의료 전문직종은 전담 부서가 있는 것과 대비된다. 간호 정책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방윤영 기자

"'태움' 악습 끊자"…법 개정 나선 국회

[간호사가 떠난다⑥의료기관 내 괴롭힘 처벌·신입사원 강제교육 금지..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제한도

머니투데이

국회가 '태움' 악습끊기에 나섰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파장이 커진 데 따른 움직임이다. 의료기관의 직장내 괴롭힘은 당사자의 피해 뿐 아니라 의료 행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지난 13일 의료기관 내 괴롭힘의 정의를 구체화하고 이에 대한 처벌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의료기관 괴롭힘(태움) 방지법'이다. ‘윤소하 안’엔 △의료기관 내 괴롭힘 행위 정의 △괴롭힘 발생에 따른 의료기관장 및 개설자의 조치사항 규정 △괴롭힘 예방교육 실시 의무화 △의료기관 인증기준에 괴롭힘 예방여부 추가 등이 담겼다.

‘태움’이란 간호사간 위계를 바탕으로 한 직장내 괴롭힘을 지칭하는 말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됐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도 지난달 23일 신입사원 괴롭힘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 놨다. 간호사의 '태움'뿐 아니라 다른 업종의 괴롭힘도 막자는 취지다. ‘태움’의 범위를 ‘괴롭힘’으로 넓혔다.

‘최도안 안’에 따르면 신입사원 교육과 훈련이 근로의 정의에 포함된다. 강제적인 교육과 훈련을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신입사원 괴롭힘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 의원은 "신입사원에 대한 폭언과 폭행은 불법이나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처벌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규정이 없었다"며 "신입사원 태움 금지법 도입을 통해 우리 모두의 가족인 '미생'들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장내 가혹행위에 대한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도록 한 법안도 나왔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정기적인 직장내 가혹행위 실태조사를 의무화하고 가혹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명문화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태움 문화 근절은 물론 정기적인 조사를 통해 재발 또한 방지하자는 취지다.

고질적인 인력부족을 간호사 태움문화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안도 발의됐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월 국가적 차원에서 간호인력 수급을 지원하고 처우 및 복지를 향상시키는 내용의 ‘간호인력 양성 및 처우개선에 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간호사 태움과 의료사고, 가혹행위 등의 근본원인이 보건의료인력 부족이라는 인식이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9일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수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토록 한 의료법 개정안을 내놨다. 태움문화의 원인이 간호사 개개인의 품성보다는 격무에 시달리는 근로환경에서 기인한다고 본 것이다.

신 의원은 "태움 문화는 간호사 개개인의 품성보다는 두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도록 하는 격무와 과로의 구조적 요인이 더 크다"며 "이에 1인당 적정 환자수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하고 위반시 벌칙규정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재용 기자

이영민 기자 letswin@, 이동우 기자 canelo@, 방윤영 기자 byy@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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