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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좋아요' 눌렀다가… 페북 5000만명 성향 정보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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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트럼프 캠프 업체, 이용자 정보로 정치 심리전 벌인 사실 드러나

외신 "소셜미디어의 정치 무기화"… 美·英의회 "저커버그 청문회"

소비성향·종교 등 맞춤형 정보, 성격 검사 가장해 빼돌린 뒤

트럼프 대선전략 세울 때 활용… 브렉시트 투표때도 정보 도용 의혹

업체 前직원 "페북, 알고도 묵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정치 컨설팅업체가 페이스북 이용자 5000만여 명의 개인 정보를 유용해 '정치 심리전'을 진행한 사실이 폭로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컨설팅업체는 영국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 탈퇴) 투표 때도 영국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정보를 활용해 국민투표에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외신들이 '사상 최악의 데이터 스캔들'(가디언) '소셜 미디어의 정치 무기화'(파이낸셜타임스)로 표현한 이번 사건을 놓고 미국과 영국 의회는 각각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33)를 청문회에 출석시켜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18일(현지 시각) 예고했다.

1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의 데이터 분석 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페이스북과 그 이용자들에게 소정의 대가를 주고 'thisisyourdigitallife'라는 '성격 검사 앱'을 다운받도록 유도했다. 표면적으로는 성격 검사 앱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목적으로 교묘하게 설계된 개인 성향 분석 알고리즘(프로그램)이었다. 이 앱을 만든 이는 데이터 과학 전문가인 케임브리지대학 심리학과 코건 교수였다. CA는 페이스북 측에 27만명에게 동의를 받아 성격 검사 서비스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5000만여 명의 정보가 CA 측에 넘어갔다.

CA 측은 페이스북 이용자의 '친구' 목록이나 '좋아요'를 누른 항목 등 다양한 활동을 분석해, 그들의 소비 성향에서부터 관심 있는 사회 이슈, 정치·종교적 신념 등을 파악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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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근무했던 데이터 과학자들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가 당신의 아버지나, 애인이 당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평가했다.

5000만여 명에 대한 성향 분석을 토대로, CA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약점을 캐는 기사나 광고를 누구에게 보낼지, 특정 유권자가 어떤 선동 문구에 반응할지, 수백만달러짜리 TV 광고를 어떻게 만들지, 트럼프가 어느 지역에서 유세를 해야 효과가 클지 등의 맞춤형 전략을 마련했다. 이런 최첨단 정치 심리전이 미 유권자 2억여 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이 작업에 공화당의 큰손인 헤지 펀드 거물 로버트 머서(72)가 620만달러(약 66억원)를 댔다. 인공지능 연구자 출신인 머서는 이미 2014년 미 중간선거 때부터 신생 기업인 CA에 1500만달러(약 160억원)를 투자, 공화당 후보들을 지원해 당선시키면서 그 효용성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전직 CA 직원인 크리스토퍼 와일리(28)가 NYT와 가디언에 이 사실을 폭로했다. 미 대선, 브렉시트 투표 등 찬반이 팽팽한 정치 사안에서 개인 정보가 무단 이용되는 것을 본 와일리는 페이스북에 먼저 "CA가 수천만 명의 정보를 도용하고 있다"고 알렸으나 묵살당했다고 했다.

미국 검찰과 의회 등은 페이스북이 주요 광고주인 CA의 불법을 알면서도 방치했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그러나 CA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해당 정보가 페이스북 정책을 위반해 얻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모두 폐기했으며, 미 대선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연 매출 406억달러(2017년 기준·43조5000억원)인 페이스북의 주요 수입원은 개인 정보를 활용한 기업·기관의 '맞춤형 광고' 수익이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21억명의 이용자가 '제3자 정보 제공'에 동의한 뒤 페이스북에 가입, 내밀한 사생활을 자발적으로 올리고 '친구 맺기'와 '좋아요'를 통해 이 정보를 무한대로 공개하고 있다.

영미 언론들은 페이스북의 이용자들이 단순히 상품 광고의 대상이 된 것을 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거대 정치 자본의 여론 조작 대상이 됐다는 점에 경악하고 있다. LA타임스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의 사업 모델 자체가 철퇴를 맞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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