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편의점·주점도 심야영업 스톱… '밤도깨비'가 사라진다

댓글 30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4시간 문화' 벗어나는 한국사회, 삶과 일 균형 중시… 밤 일 줄여

최저임금 크게 올라, 인건비 가중… 야간 영업 수지타산 안맞는 탓도

'불 밝힌 심야(深夜)'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로 여겨졌다. 외국인들은 밤낮 구분없이 돌아가는 '24시간 문화'를 신기해하고 한국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간판과 네온사인 조명으로 빛나던 '한국의 밤'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24시간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편의점·패스트푸드점 등이 24시간 영업을 줄인다. 자정 무렵이면 문 닫는 술집이 늘고 있다. '밤도깨비'라는 이름을 붙여 성행하던 밤샘 쇼핑, 오락실·노래방·PC방 같은 놀거리, 약국·헬스장 등 건강 관련 업종까지 '24시간'을 표방하던 풍경이 사라지는 것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로운 균형)'을 중시하며 야간 활동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여기에 최저임금까지 오르면서 야간·밤샘 영업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다.

◇짧아지고 줄어드는 회식

서울 광화문의 한 치킨집. 밤 11시 30분에 들어서자 직원이 "영업 끝났다"고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벽 1시까지는 문을 열던 곳이다. 주변에 있는 선술집과 횟집 등도 밤 12시가 넘어서자 식탁을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회사가 밀집한 직장가 근처의 술집과 음식점은 영업시간을 점점 줄이는 추세다. 밤늦도록 2차, 3차로 이어지는 회식 문화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테헤란로 인근의 한 고깃집은 "3~4년 전엔 새벽 1시까지 영업했다. 그땐 술 취한 손님이 밤 12시에 와서 고기를 먹었다. 지금은 밤 11시만 넘으면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근처 횟집은 "1시간 미만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만 하고 끝나는 단체 예약이 많아졌다"며 "밤에는 문을 일찍 닫고, 얼마 전부터 점심 영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최근에는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단체 회식이 더 줄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숙집 주인은 "월말마다 우리 가게에서 회식을 하던 회사가 최근에는 단체 예약을 저녁이 아니라 점심시간에 잡았다"며 "2차로 오는 손님이 없어 밤 10시에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마진 안 맞아" 손 놓는 자영업자들

최저 시급 상승이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킨 측면도 있다. 가게들은 어차피 똑같은 임대료를 지불하는 상황에서 전기세·인건비 등과 같은 고정 비용보다 많은 매출을 올리면 밤새 문을 여는 게 이익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1000원 넘게 오르면서 운영비가 매출을 역전해 감당하기 버거워진 것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헬스장은 지난 1월부터 인건비를 줄이려 '24시간 영업'을 접었다. 1명씩 심야 시간에 트레이너를 두고 운영해 왔지만 지금은 그 시간에 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

조선일보

서울 마포구의 한 술집은 지난달부터 마감을 새벽 3시에서 밤 11시 30분으로 앞당겼다. 술집 주인은 "최저임금 인상 후 아르바이트생 야간수당 등을 챙겨주다 보면 늦게까지 영업할수록 손실이 커져 영업시간을 줄였다"고 했다. 초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만 문을 열어 '올빼미 콘셉트'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술집은 최근 전국 40개 점포 중 4곳이 "영업시간을 자정까지로 대폭 줄여 달라"고 본사에 정식 요청했다. 한 점주는 "방학 기간 손님들이 많지 않을 때 아르바이트생에게 지급하는 '야간수당'이 '야간 매출'을 역전했다"며 "아르바이트생 수를 줄여봤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 불가피하게 영업시간 단축을 요구했다"고 했다.

심야 영업을 하더라도 직원은 두지 않고 무인(無人)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서울 강남구의 한 주유소는 새벽 시간대에 아르바이트생을 두는 대신 인력을 '셀프 주유 기계'로 대체하려 한다. 주유소 주인은 "심야 손님을 포기할 순 없다. 기계를 들이는 데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인건비가 나가는 것보다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김홍준 한국자영알뜰주유소협회 사무국장은 "셀프 주유 기계 1대가 1800만원 정도로 비싸지만 형편이 괜찮은 사장들은 '아르바이트비 나가는 것보다 낫다'며 셀프 주유소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 점포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삶을 즐기려는 점주가 많아진 영향도 있다. 요즘 편의점을 창업하는 사람들 중에선 '24시간 영업은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넣어 가맹 계약을 맺는 사람들이 많다. '이마트24 편의점'에 따르면 신규 가맹점 중 24시간 운영점 비율은 지난해 8월 28.7%에서 지난 2월에는 8.9%로 떨어졌다.

[박상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