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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BBC 또 임금차별 논란… '테니스 전설'도 남성 임금의 10분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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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영방송 BBC가 또다시 임금 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이자 BBC의 윔블던 테니스대회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62)가 남성 해설위원 존 매켄로(59)가 받는 임금의 10%만 받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다.

나브라틸로바는 19일(현지시간) 선공개된 BBC 파노라마와의 인터뷰에서 “윔블던 남성 해설인 매켄로는 최소 15만파운드(약 2억2418만원)를 받는 반면, 여성인 나는 1만5000파운드(약 2241만원)를 받고 있다”며 “만약 존 매켄로가 윔블던 중계 외 다른 일을 하지 않는 한, 그는 나와 굉장히 비슷한 일을 하고도 최소 10배를 더 버는 셈”이라고 말했다. 나브라틸로바는 이러한 임금 격차에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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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브라틸로바는 1970년대 여자 테니스계를 호령한 전설이다. 메이저 대회 여자단식 우승 18회를 비롯해 31번의 메이저 대회 여자복식 우승, 10회의 혼합복식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윔블던 9회 우승, US오픈 4회 우승을 비롯해 332주간 세계랭킹 1위(여자 단식)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그는 BBC 측에 “동일한 노동을 하는 남성과 동일한 임금을 받는지” 문의한 적도 있다고 했다. 당시 BBC의 대답은 ‘그렇다’였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공개된 BBC 임금 보고서에 따르면 사측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나브라틸로바는 “진실을 듣지 못했던 건 확실하다”며 “여전히 남성의 목소리가 여성에 비해 더 ‘가치있다’고 여겨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나브라틸로바는 BBC 내 다른 여성 직원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나브라틸로바 본인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윔블던 대회가 열리는 기간은 1년에 2주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저에게 이 일은 파트타임 일자리”라면서도 “이곳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의 경우, 임금 격차가 아주 크지는 않더라도, 평생 받을 액수로 따져보면 아마 엄청난 차이가 날 것”고 말했다. BBC가 지난해 7월 자사 임금구조를 분석한 결과 남성 방송인의 평균 임금은 여성보다 9.3%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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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스포츠는 임금 격차가 ‘업무 상의 차이’에서 비롯됐을 뿐 ‘성별의 차이’ 때문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업무 강도와 범위, 노동시간 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는 것이다. 실제로 메켄로의 노동시간은 나브라틸로바보다 길었다. 지난해 윔블던 기간 중 BBC에 출연한 횟수는 매켄로가 약 30회, 나브라틸로바가 10회였다.

BBC 대변인은 “존 메켄로는 BBC 윔블던 중계의 간판”이라며 “그의 계약은 BBC의 허락 없이 다른 영국 방송사와 일할 수 없다는 독점적 계약권을 포함하기 때문에 임금 수준이 높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다만 나브라틸로바는 실 노동시간을 고려하더라도 10배 차이는 과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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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가 임금차별 문제로 설화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발단은 지난해 7월 공개된 BBC 임금 보고서였다. 당시 자료를 보면, BBC 내 15만 파운드 이상을 받는 고액 연봉자 3분의 2가 남성이었다. 최상위 7명도 모두 남성이었다. BBC 뉴스 및 현안 담당자 프란 운스워스는 “동일임금과 관련해 법 위반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불평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고 애매한 해명을 내놓았다.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임금 보고서가 공개된 직후, BBC 고위직 여성 40명은 토니 홀 사무총장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며 변화를 촉구했다. 지난 1월에는 BBC 중국 편집장 캐리 그레이시가 조직 내 남녀 임금 차별에 항의하며 편집장 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그레이시는 당시 사측에 임금 격차를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 설명’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책임있는 설명 대신 파격적인 임금 인상을 제안하며 답변을 피했다고 회고했다.

BBC가 촉발한 임금차별 논쟁은 이제 영국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7년간의 논쟁을 끝내고 기업의 남녀 근로자 평균 임금을 공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영국 내 직원 수 250명 이상의 기업은 오는 4월 4일까지 남녀 직원의 임금·보너스 격차를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가디언이 지난달까지 보고를 마친 1290개 기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950개 기업(74%)에서 남성의 중위임금(임금을 낮은 순에서 높은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임금)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바클레이스 은행, 골드만삭스, 이지젯 등 유명 기업들도 다수 포함됐다.

영국은 1970년 평등임금법(Equal Pay Act 1970) 도입한 이래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남녀 근로자에 대한 차등적 임금 지불을 금지하고 있다. 2010년 영국평등법(Equality Act 2010)을 제정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재확인했지만, 남녀 임금 격차 문제는 5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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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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