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시진핑 역린까진 건드리는 트럼프…고조되는 G2 패권다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과 대만 간 공직자의 교류를 촉진하도록 하는 ‘대만여행법’에 서명하며 전면적인 대중(對中) 압박 공세에 들어갔다. 관세 폭탄, 투자 제한 등 초강경 조치를 잇달아 내놓은 데 이어 G2 무역 전쟁의 전선(戰線)을 전방위로 넓히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는 일단 자세를 낮추고 트럼프 측에 ‘진지한 대화’를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산 닭고기에 부과해온 반덤핑 관세를 8년 만에 철회하며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권은 공식 대화 채널까지 속속 끊으면서 무역 적자를 줄일 획기적인 방안이 나올 때까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올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불사할 태세를 거듭 밝혀 온 트럼프 정부의 공세는 미국의 중간 선거가 열리는 오는 11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① 미·중 수교 후 40여년간 고수해 온 ‘하나의 중국’ 원칙 건드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6일 최종 서명한 대만여행법은 미국과 대만의 공무원들이 모든 위치에서 상호 교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한편, 미국과 대만의 관계가 태평양 지역 안보와 경제적인 분야에서 핵심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안보 분야 장관급 인사들의 교류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대만 간 교류를 사실상 ‘국가 대 국가급’으로 격상시키려 하는 조치라 트럼프 정권이 발표한 그 어떤 조치보다 중국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의 역린(逆鱗)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드는 행보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과 차이잉원 대통령이 목소리를 키우는 가운데, 중국 지도층의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선일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상하이 코뮤니케 합의 후 저우언라이 총리 등과 식사를 하고 있다. /게티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카드’를 어떻게 활용할 지는 미지수다. 그가 굳이 직접 대만에 방문하지 않더라도 차이잉원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허용하거나, 고위급 미국 공직자를 대만에 파견하는 방법 등을 통해 중국과 협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② 중국 겨냥해 관세 폭탄 속속 투하

트럼프 정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중국 정부에 압박을 가하는 수단은 ‘관세 인상’이다. 관세 인상은 의회와의 상의 없이 추진할 수 있는 데다, 자국 시장 규모가 클수록 상대방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이 큰 미국 입장에선 손쉽게 중국에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정상 회담을 전후로 중국산 알루미늄 호일과 목재 합판에 각각 162%, 194%의 고율 관세를 매긴 데 이어, 최근엔 중국을 겨냥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수입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각각 부과하기로 했다. 3월 말엔 최대 600억달러(약 64조원)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호혜세(reciprocal Taxes) 부과를 언급해 온 만큼 관세 부과 대상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상황이다. 무역 상대국이 자국 상품에 물리는 만큼 관세를 물리겠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호혜세의 기본구조이기 때문이다.

③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투자 제한

중국 기업의 미국 진출 장벽도 새해 들어 갑작스레 높아지는 추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미국 반도체 회사 퀄컴을 싱가포르의 브로드컴이 인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사(私)기업 간 인수합병(M&A)을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퀄컴은 무선통신 칩의 세계 최강자로, 중국 화웨이와 함께 5G 선도 기술을 보유한 양강 업체로 꼽힌다.

조선일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전격 불허했다. /브로드컴


올해 초엔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이 미국 머니그램을 인수하려 하자 안보 위협을 이유로 거부했다. 또한 미국 이동통신사인 AT&T가 미국에서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폰을 출시하려는 계획도 비슷한 이유로 승인하지 않았다. 미국 정치권은 최근 중국의 미국 기업 투자를 원천 봉쇄하려고 관련 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④ 反中 인사로 백악관 경제 사령탑 재편

‘미중 무역전쟁의 빌미는 중국이 제공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경제계 인사들이 백악관 경제 사령탑을 장악한 점도 미·중 무역 갈등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전망이다.

그동안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 ‘국제파(globalist)’로 불리는 자유무역자들이 후폭풍을 우려해 상당수 무역 보복 조치를 반대해왔다. 그러나 콘 위원장마저 백악관을 떠나게 되면서 백악관은 무역 강경파인 이른바 ‘국수주의(nationalist)’ 인사로 채워지게 됐다.

그의 후임으로 온 래리 커들로는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는 반대하고 있으나, 중국을 향한 무역 보복조치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 피터 나바로 무역위원장 등과 함께 발을 맞춰 무역 보복 조치가 한층 더 강경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⑤ 공식 대화 채널 속속 끊어 긴장감 높여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중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미국이 중국과의 물밑 접촉조차 거부하는 정황이 속속 표출되고 있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17일엔 공식 대화 채널인 ‘포괄적 경제 대화(comprehensive economic dialogue)’를 중단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

지난해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이 미중 포괄적 경제대화에 참석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블룸버그


중국과 미국의 경제 분야 대화 채널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됐다. 당시 치열한 논쟁을 거쳐 ‘중국의 부상은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으며, 중국에 대한 관여와 소통을 통해 미국 중심의 질서로 중국을 유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때부터 미국은 중국과의 외교·안보 대화와 경제대화를 별도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안보 문제와 경제 문제를 동시에 논의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공식 대화 채널에서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양국 간 공식 채널이 하나 둘씩 닫히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시진핑의 경제 책사인 류허 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은 지난달 말 대화 파트너를 물색하려 미국을 방문했으나,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한 채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민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