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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울산 '생계형 일자리'에 조선업 실직 고급인력들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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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높은 일자리는 사치" 외면받던 공공근로 경쟁률↑
市, 현장형 일자리 확대 등 기술인력 유출 예방 총력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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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최수상 기자】 "어떤 일자리든 울산에서는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난 16일 오전 울산시 동구 방어동의 한 공원에서 공공근로 중이던 이모(52)씨가 잠시 일손을 멈춘 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다 짤막히 말했다. 이날 인터넷포털의 뉴스 사이트에서는 청년일자리 대책에 따른 정부의 추가경정예산과 이에 따른 '고용의 질'을 두고 여야가 다툰다는 기사가 가득했다. 하지만 조선업 불황으로 대량의 실직자가 양산된 울산 동구에서는 이러한 정쟁은 현실과 동떨어진 말싸움에 불과했다.

이 씨처럼 생계난에 직면한 조선업 실직자들 사이에는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당장의 일자리가 필요할 뿐, 고용의 질을 따지는 것은 사치"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울산에서는 조선업 호황기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저임금 공공 영역에 40~50대 전후반의 조선업 실직자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울산시와 기초단체들도 공공 영역 일자리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이번 정부의 추경 계획에 따라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한 상태다.

■ 외면받던 공공근로에 몰려드는 구직자

울산시 동구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간제 일자리인 공원관리작업단 13명을 뽑는 공모를 마감한 결과 165명이나 신청해 경쟁률이 10대 1을 넘어섰다. 또 월 153만 원인 공공근로자 모집에는 올해 1분기 60명 모집에 297명이나 응모했다. 임금이 낮아 호황기에는 인기가 없었던 공공영역에 구직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경쟁률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동구는 지난해 60명을 뽑았던 '희망일자리'를 올해는 220명으로 확대키로 하고 추경예산안에 30억 원(시비 27억, 구비 3억)을 편성했다. 실직자들에게 월 173만 원가량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4월 초 의회를 통과하면 곧바로 일자리 창출에 들어갈 계획이다.

동구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조선업 실직자들이 떠나면서 인구유출이 심화되자 이를 예방하고 지역경제도 살려보려는 목적으로 이런 공공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동구청 정혜영 일자리주무관은 "생계나 고용의 위협을 느끼고 있으니까 이런 일자리를 통해서 한시적으로나마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조선업 실직자들이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현장형 일자리를 최대한 많이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 경쟁력 위해 조선업 기술인력 보호 필요

동남지방통계청이 지난 14일 발표한 올 2월 울산지역 취업자 수는 총 58만 명으로, 1년 전 57만5000명에 비해 0.8% 증가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임시근로자는 10만 2000명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 명(10.2%)나 폭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제조업의 부진으로 조선업 실직자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울산 동구청이 우려하듯 선박제조에 몸담았던 유능기술인력들이 보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울산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

조선업종에서는 용접기술이 주로 많이 쓰인다. 숙달된 용접공의 확보는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하지만 현장투입이 가능한 숙련공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한 용접학원 관계자는 "용접은 최소 1000시간의 기본훈련이 필수고 선박제조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TIG 배관용접 등 전문기술과 소재별 자격증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울산발전연구원 황진호 박사는 "생계형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하는 용접기술자들이 울산을 빠져나갈 경우 일감이 생겨도 기술자가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 박사는 "현재 울산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추진 중인 다양한 고용정책이라도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힘을 모으면 조금이나마 기술인력 유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일감 생길 때까지 어찌되든 버텨야

조선업 실직자의 증가는 고용노동부가 울산지역 대규모 실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16년 6월 조선업희망센터를 개소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 에 따르면 조선업희망센터 개소 당시만 해도 울산지역 조선업 사업체수는 1160개사, 5만7618명이 취업 중이었으나 1년 6개월이 지난 올해 1월에는 917개사에 3만6096명만(고용보험 피보험자수 기준) 남았다. 37.3%인 2만1522명은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행히 현대중공업이 올 들어 총 29척, 20억 달러의 선박을 수주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총 21척, 19억 달러를 몰아 수주한 바 있어 최근 수주절벽에서 벗어나는 모양새에 있다. 하지만 실제 선박제조에 들어가는 시점은 빨라도 올 하반기 또는 1~2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때문에 조만간 일감이 다시 생길 것으로 기대하며 울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실직자들은 그 때까지 버텨내기 위해 공공 영역 외에도 최근 울산시가 추진 중인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고용 알선을 기대하고 있다.

앞서 조선업 실직자 1142명은 S-OIL 울산공장 석유화학복합시설 건설현장에 재취업해 있는 상태다. 이모(49)씨는 "4월 중 S-OIL공사가 마무리된다"며 "조선업이 정상화될 때가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공사에 재취업해 버텨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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