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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미 CIA-북 정찰총국 ‘스파이 채널’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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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美국무 내정자, 북미정상회담 준비 협상 착수

외교채널 대신 물밑채널 협상 ‘실험’

외교관들 2선으로… 기대ㆍ우려 교차

최강일, 핀란드서 북미 1.5트랙 대화
한국일보

김영철(왼쪽)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 한국일보 자료,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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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앙정보국(CIA)을 통해 북한과의 물밑 채널을 직접 가동하며 협상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외교 채널 대신 정보당국간 일명 ‘스파이 채널’로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외교실험에 나선 것이다. 정상회담부터 먼저 여는 전례 없는 북핵 담판에 맞춰서 협상 방식 역시 양측 지도자의 의지와 결단이 실린 정보 당국간 비밀 접촉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어서 깜짝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가 CIA와 북한측 상대인 정찰총국 사이의 채널을 통해 북한 대표들과 협상을 벌여 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서훈 국가정보원장) 중재 아래 폼페이오 내정자와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간접 소통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나, 북미가 직접 채널을 가동하며 막후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여러 기관에서 파견된 인사들로 실무 그룹을 만들어 지난주 첫 회의를 가졌다고 NYT는 전했다.

폼페이오 내정자는 CIA 국장으로 재직하며 진작부터 북한 문제를 주도하고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도 깊이 관여해왔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난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일행을 만날 계획을 세웠던 것도 북한이 펜스 부통령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CIA 작품이었다. 다만 이 정보가 한국 국정원을 통한 것이었는지, CIA 독자 채널이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미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 엇갈린다. CIA가 언제부터 독자 채널을 가동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미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주 초에는 북한과의 직접 접촉은 없다고 밝혔으나 16일에는 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고 NYT는 전했다. CIA 대변인도 백악관에 물어보라며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5월말 안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백악관은 특히 성명에서 “양 지도자는 최근 진전에 대해 조심스런 낙관론을 표현하면서 북한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더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공식 성명에서 대북 문제를 두고 ‘낙관론’이란 용어를 쓴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의 대북 특사단 발표 외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비핵화에 대해 직접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자체 채널로 이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신호다.

북미 ‘스파이 채널’은 정상회담 개최 때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폼페이오 내정자가 상원 인준 절차를 마치고 국무부 인력을 정비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나 해스펠 CIA국장 내정자도 한국 대북 특사단이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할 당시 동석하는 등 북한 문제에 집중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스파이 채널’이 구축되면서 그간 비핵화 협상에서 중심 역할을 맡았던 외교관들은 2선으로 밀려났다. 한국의 ‘외교부 패싱’ 논란처럼 미국에서도 ‘국무부 패싱’ 논란은 진작부터 제기됐다. 조셉 윤 전 대북정책특별대표 사임에다 수전 손턴 동아태 차관보 지명자의 상원 인준도 미뤄져 국무부 대북 라인은 와해되다시피 했다. 윤 전 대표가 맡았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와의 뉴욕 채널도 사실상 비어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정보 라인을 통해 정상간 큰 틀의 담판이 이뤄지면 외교관들은 6자 회담 등을 통해 후속 조치를 조율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보 채널을 통한 접촉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거론된다. 비밀 유지로 여러 억측을 막는 동시에 정상간 파격적 결단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외교 전문가들의 검증과 비판 과정이 생략돼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졸속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북한은 리영호 외무상이 스웨덴을 찾은 데 이어 이날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을 핀란드로 보내 미국측과 ‘1.5트랙’(반관반민) 대화를 벌이는 등 대미 외교의 외연을 넓히는 모습을 보였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 및 협상전략을 파악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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