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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스브수다] 이순재 “상복(賞福)은 없지만 일복은 있지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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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l 강경윤 기자] 배우 이순재(84)는 인터뷰 약속시간 30분 전에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그래요, 잘 왔어요.”라고 따뜻하게 취재진을 맞았다.

이순재는 어떤 질문이든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예정됐던 시간의 갑절을 쓸 정도로 충실히 답했다. “고마워요.”라며 한 명씩 악수를 건넨 뒤에야 그는 인터뷰 자리를 떠났다. “활동하는 최장수 배우가 된 이유는 뭘까?”란 질문은 건네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이 그 답이 됐다.

이순재 배우가 영화 ‘덕구’의 주인공을 맡았다. “주인공으로서는 마지막 영화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연기 인생 62년 동안 100편이 넘는 영화와 그 이상의 드라마와 연극을 한 이순재. 그는 모든 작품을 유작이라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했다. 그에게 연기라는 예술은 끝내 이루는 것이 아닌 이루려고 했지만 끝내 멈추는 것이라고 했다.

Q. ‘덕구’란 작품은 참 따뜻한 작품인 것 같습니다.

“드라마, 극본, 연극, 희곡, 영화 등 뭐든 그 시나리오가 탄탄해야 돼요. 작품이 제대로 돼야 연기도 제대로 나올 수 있죠.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앞뒤가 잘 맞고, 정서적이고 참 따뜻한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모처럼 내가 90% 정도 나오니, ‘한번 해봐야겠다’ 결심이 선거죠.”

Q. 아역 연기자들과 함께 한 현장은 어땠나요.

“덕구 군(배우 정지훈)은 10살 정도 됐지만, 고 밑에 덕희(박지윤)은 5살, 6살 이란 말이에요. 아역배우들이 집에서 활발하다가도 촬영장 나와서는 분위기를 어려워할 수가 있어요. 과거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것들이 걱정이 좀 되었는데 두 아이가 아주 잘 적응을 해서 순조롭게 잘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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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장은 배우들의 분위기가 참 좋다고 합니다.

“드라마도 그렇지만 스태프들뿐 아니라, 연기자들이 상호 간에 서로 화합하고 화목해야 일이 잘되지, 갈등구조나 대결구조가 생겨서 불편해하면 잘 될 수가 없는 게 우리 직업이에요. 겨울에 촬영이 있어서 애들이 추워할 수도 있었는데 상당히 잘 적응을 해줬어요. 기특합니다.”

Q. 노개런티로 영화에 임했다는 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가 저예산 영화다 보니까. 많은 걸 기대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으니 ‘돈하고 상관없이 내가 좀 해봐야겠다’ 하는 욕심이 생겼지요. 다른 건 전제하지 않고 일단 시작하는 거예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좀 주겠지 뭐. 허허”

Q. 최근 노장 배우들이 주가 되는 작품들은 별로 많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글쎄, 뭐 이젠 그런 게 사실이지요. 드라마를 보게 되면 노인배우들은 ‘곁다리’가 되고 ‘병풍’처럼 지나가는 역할이고 그렇죠. 특히 영화 같은 곳은 노인을 다르는 작품이 그리 많지 않으니 그렇겠지요.”

Q. 그래서 ‘덕구’는 주인공으로 마지막이라고 하셨던 건가요.

“마지막이라면 아마 주인공으로서는 마지막이지 않겠느냐 했던 거죠. 아무래도 청춘배우들보다 출연빈도는 많지 않겠지만 외국에는 노인들이 출연하는 영화들도 얼마든지 많아요. 영화 ‘다키스트 아워’도 그렇고. 노인들이 할 수 있는 테마도 많이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시트콤”

Q. 시트콤이요?

“늙은이들이 오랜 인생경력을 쌓아서 거기서 생기는 상황의 문제점들이 상당히 재밌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가의 역량에 달렸겠지만 얼마든지 웃기고 울리를 수 있는 시트콤이 가능하단 얘기예요. 몇 가지 제안을 해봤는데, 아직 한다는 얘기가 없네요. 잘 몰라서들 그런 것 같아. 허허”

Q. 그래도 노장 배우들의 가슴을 울리는 연기는 감동을 뛰어넘죠.

“영화 ‘덕구’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부터 벌써 몇 번 울컥울컥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내가 너무 울어선 안 되지 않는가라고 해서 나름대로 절제했다고. 그런데 그게 참 어려웠어요. 우는 건 관객 몫으로 남겨야지 배우가 모든 감정을 다 쓰면 안 돼요. 우리는 궁극적으로 ‘사랑’을 찾기 위해 영화를 보죠. ‘덕구’의 테마는 사랑입니다. 따뜻한 영화예요.”

Q. 쉬지 않고 매년 적어도 한두 편 씩은 하셨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출연료를 받은 건 78년도 ‘세일즈맨의 죽음’이에요. 상당히 결과가 좋았어요. 그때 처음 연극 출연료라는 걸 받아봤어요. 얼마인지 기억도 안 나. 세어보지 않고 집사람 줬지. 큰돈은 아니었어요. 어쨌든 그게 연극으로 돈을 받은 처음이에요. 일주일 동안 5시간씩 자면서 20여 일을 열심히 다닌 거예요. 10년이 지나니 집 한 칸 마련했고. 우리 때는 그랬었다고. 뭐, 오늘 신문 봤더니 누가 주식으로 500억원을 벌었다 어떻다 하더라고. 아, 평생을 하는데 2층짜리 건물 하나 없는 사람 아니야. 허허”

Q. 격세지감 느껴지시겠어요.

“그렇지. 너무 일찍 태어났지. 우리도 요즘 태어났으면 좀 달랐으려니 생각이 들지요. 허허. 그런데 뭐 그건 상관없고. 우리가 어려운 시절에 배우를 선택한 게 무슨 돈을 벌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잖아요. 돈 못 버는 거 각오하고 시작한 거고, 내가 좋아서 미쳐서 한 짓이니까 이렇게 평생 동안 할 수 있었던 거요.”

Q. 혹시 연기자를 하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으세요?

“글쎄요. 나는 뭐 일찍이 돈 버는 재주가 없다는 알았어요. 인문학을 전공했으니 열심히 철학 공부 했으면 철학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죠. 철학과 출신들이 여러 갈레로 갈리더라고. 열심히 했으면 교수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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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외국어를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지금도 아쉬움이 있어요. 외국어를 좀 더 많이 공부했으면 어땠을까. 배우로서 작업에 집중하다 보니까 외국어를 공부하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요즘 친구들은 영어는 다 잘하니까 중국어라든지 일본어라든지, 좀 더 들어가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정도는 알아두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지요.”

Q. 훗날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나는 화려한 배우는 아니에요. 어디 정상에 올라가가지고 모든 걸 내려다보는 그런 위치에 서 본 적은 별로 없는 배우라고. 항상 따라 나가는 배우란 말이야. 우리가 60년대 이때만 해도 보게 되면 주마다 월마다 랭킹을 발표해요. 그러면 맨날 최고 랭킹은 최불암 씨가 항상 올라가 있더라고. 그러면 우리는 뭐 다섯째, 여섯째 뭐 이렇게 끼어 들어가고 아니면 겨우 둘째, 셋째 정도 끼어 들어가고 그런 경우야. 허허. 그리고 또 솔직히 내가 상은 못 탄 배우라고.”

Q. 아, 그런가요?

“많은 좋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상을 받은 적은 없어요. 영화도 100여 편 했지만 대종상영화제를 못탔어요. 연극도 괜찮게 했는데 내 주변 사람들 다 탔는데 나는 동아연극상을 못 탔어요. 상이라는 게 어떤 의미냐면 나보다 더 잘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가는 거지요. 사회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 아카데미에도 평생 스타로 빛나던 배우지만 못 탄 경우도 많아요. 상은 타이밍도 운도 있어야 하고, 그때마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못 타는 거지요. 그것이 지금의 나로서는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어요.”

Q. 중요한 상은 놓쳤더라도 많은 후배들과 관객들이 이순재 배우님을 좋은 배우로 생각하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 거고, 상을 통해서 그 배우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도 하죠. 트로피를 받은 배우들이 감동하는 이유는 이게 평생 자신의 명예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수상과 관련해 클리어하지 못한 관행도 있었어요. 한번은 후보에 올랐는데 위원장을 만나보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왜 그래야 하냐니까 그게 관행이라는 거예요. ‘형님, 우리가 그런 수준은 아니지 않소’라고 하고 만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당시 대상 후보에 올랐던 사람이 참 대단한 배우였어요. 감히 따라갈 수도 없는 선배였지요. 정상적으로 그분이 수상을 했어야 하는 거지요.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기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Q. 후회 없는 선택이었네요.

“그렇지요.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내가 탈 입장이 아니고 이제 얼마든지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으니까.. 신경 안 써요.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어떤 그 좋은 의미에서 각인이 되면 그거로 만족하는 거지. 상이라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Q. 배우로서 꼭 가져야 할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직업에 귀천이 있었어요. 일반적 인식이 우리 직종은 최하위 직종이었어요. 집안에 90%가 반대하는 직종이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돈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만만하게 보는 게 우리였어요. 중매쟁이 불러가지고 신인배우들에게 오라가라 하기도 하고, 지금이라면 전부 미투에 해당되는 것들이야. 그런 상황이 상시적으로 벌어지는 게 우리 직종이었다고. 그런 가운데서도 타협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나온 사람들 덕분에 오늘날 유지된 거지요. 이제 사회에서 배우의 인식이 그렇지 않잖아요. 이제는 모든 직종과 동등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절대로 비하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용기를 가져야 하고. 대신 공부를 해야 해요. 여기에 인성도 있어야지요. 상당한 수준의 인물들이 어느 날 망가지는 걸 보면, 능력은 최고인데 사람 바탕이 안 되어 있는 거지요. 인격 형성이 안 된 채였기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간수를 못 하니 사회적 패악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

Q. 올해도 참 바쁜 활동을 하고 있으시지요?

“ tvN ‘라이브’ 드라마와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지방공연이 쭉 잡혀 있어요. 연극 ‘사랑해요 당신을’은 4월 하순부터 한 달 동안 남아 있고 가을에 가면 연극 한두어작품 더 할 예정이죠. 또 학교 수업도 챙겨야 하죠.”

Q. 그렇게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수면도 줄이셔야겠는데요?

“뭐 잠은, 늘 6시 반에 깨니까요. 늦잠도 자고 차에서도 자는데 우리는 젊을 때 하도 밤을 새가지고 밤새는 데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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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62년 주년을 맞으셨는데요.

“요란하게 하지 말고 우리 차분하게 하자는 얘길 많이 해요. 매년 의미를 붙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요. 예술이라는 건 늘 하다가 끝나는 거지요. 그래서 계속 시대를 넘어서며 창작하는 거고요. 그 능력이 모자라면 끝나는 거고, 시간이 다 되면 세상을 떠나고 그런 거지요. 왜? 예술에는 완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항상 도전하고 완성해 나가려는 그 과정으로 끝이 나는 것이지요.”

Q. 출연하는 모든 작품을 유작이라고 하신다는 말씀의 뜻이 궁금합니다.

“사실 뭐 장담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니까. 아직은 내 스스로 ‘괜찮다’, ‘내일은 자신 있다’ 하지만 변수가 없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공연할 때도 원칙적으로는 혼자(원캐스트)로 해야 하지만 우리가 일정도 있고, 어떤 이상이 생겼을 때 배우 때문에 모든 걸 중단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같이(더블캐스트)를 할 기회를 만들 거고.”

“우리가 배우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하다가 죽는 것이에요. 회사는 좀 손해를 보겠지만요. 허허. 일을 하다가 죽는 게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사진=영화 ‘덕구’ 스틸컷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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