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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협력 하자" vs "못한다"…더 커지는 현대·SM상선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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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이 공무원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안 망할텐데 왜 SM상선과 협력해야 하냐는 것이다.” (한종길 성결대 교수)

“개인 회사는 자기 판단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 SM상선이 할 수 있다고 시작한 사업인데 왜 현대상선이 도와줘야 하나.” (전준수 서강대 교수)

정부가 한국 해운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준비 중인 가운데, 현대상선(011200)과 SM상선이 협력의 필요성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대립하고 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두 회사의 갈등은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SM상선은 지난 1월 미주 서안(西岸) 노선에서 공동 운항 등 협력을 추진하자고 공식 제안했고, 현대상선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다며 거절한 바 있다. 이후 SM상선이 독자적으로 미주 서안 북부에 신규 노선을 개설하기로 하면서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일각에서 두 회사가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현대상선이 발끈하며 SM상선과 협력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공개했다.

조선비즈

부산신항 3터미널 현대부산신항만 전경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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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상선 “미국, 선사 간 협력 엄격하게 제한”

현대상선이 협력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는 미국 경쟁금지법이 선사 간 협력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해외 화주들이 SM상선 배에 화물을 싣는 것을 기피하고, SM상선이 운임 덤핑을 하기 때문에 협력할 경우 운임률이 함께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SM상선 흡수합병론’에 대해서는 SM상선의 구조조정 비용을 현대상선에 전가하면 국민 혈세가 추가로 투입돼야 해 채권단 반발이 예상된다고 했다.

SM상선은 현대상선 주장에 대해 “미국 경쟁금지법에는 선사 간 협력을 제한한다는 내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최근 글로벌 화주들의 이용 비중이 늘고 있으며, 대형 화주와의 계약 운임 수준이 해외 경쟁사 대비 높다고 주장했다. SM상선은 “협력을 제안하는 이유는 경영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해운 재건을 위한 것”이라며 흡수합병설을 일축했다..

국내 해운사가 경쟁사를 직접 언급하며 대립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016년 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극한의 생존 경쟁을 펼칠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첨예하게 갈등을 빚는 이유는 정부 해운 구조조정 방향이 현대상선 한 회사에 집중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해운업계에서는 정부 지원이 현대상선에 집중되면서 다른 선사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반면 현대상선은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초대형 선박 발주를 준비하기도 바빠 다른 회사와 협력을 논의할 시간이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비즈

SM상선 컨테이너선 /조선일보DB



◇ “협력으로 경쟁력 키워야…현대상선 혼자로는 어려워”

현대상선이 SM상선과 협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미 수조원 규모의 정부 지원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SM상선이 무너지면 정부 지원을 독점할 수 있는데, 협력을 통해 굳이 SM상선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도 있다. 한진해운 사태를 지켜본 정부가 현대상선을 절대 망하게 두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두 회사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측에서는 현대상선이 초대형 선박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회복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해운은 선박 확보 뿐 아니라 화주 영업, 노선 개설 등 수많은 운영 노하우가 필요하다. SM상선은 현대상선보다 규모가 작지만, 과거 한진해운의 우수한 운영시스템과 인적자원을 갖고 있다.

두 회사 간 협력을 넘어 정부가 나서서 지원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고려해운 등 일부 선사를 제외한 중소형 선사들 대부분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선사는 몇 달치 운영자금도 마련하지 못 하고 있다. 결국 근해선사들이 줄줄이 무너지면 현대상선 혼자 규모를 키우더라도 한국 해운 전체 경쟁력은 떨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상선과 SM상선을 포함한 모든 원양, 근해 선사를 하나로 합쳐 정부가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화주들은 아직도 한국 해운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정부가 확실히 책임진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합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종길 교수는 “한국 선사끼리도 손을 안 잡으면 어떻게 되겠냐”며 “구조조정을 하고 힘을 모아서 규모를 키워 글로벌 선사와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 “선박 경쟁력 확보가 우선…현대상선 키운 뒤 지분 참여로 이익 공유해야”

SM상선이 현대상선과의 협력에 목을 매는 이유는 지금 상태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주 등 원양 노선을 늘려야 회사 규모를 키울 수 있는데, 많은 선박이 필요한 원양 노선을 혼자 띄우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하지만 현대상선과 SM상선의 협력을 반기지 않는 쪽에선 해운업 재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의 협력보다 초대형 친환경 선박 확보라고 말한다.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를 앞두고 2만2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확보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상선을 제외한 다른 선사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지만, 국가 해운 위상을 위해서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머스크, MSC와의 협력관계가 2020년이면 끝나기 때문에 정식 멤버로 2M 얼라이언스(해운 동맹)에 합류하기 위해서라도 늦지 않게 선박 발주를 해야 한다. 선박만 확보되면 2M 얼라이언스가 아닌 디얼라이언스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린다.

무엇보다 국민 혈세가 투입된 현대상선에 추가 부담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크다. 현대상선은 7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2016년에 8333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작년에는 406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준수 교수는 “오합지졸은 모여도 오합지졸이기 때문에 국내 모든 선사를 하나로 뭉치는 것보다 선박 경쟁력 확보가 우선이다”며 “현대상선을 국가 해운 회사로 만든 뒤 다른 선사와 국내 화주들이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조지원 기자(jiw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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