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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아베 스캔들 뒤엔… 日 관료 '알아서 기는' 손타쿠 풍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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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관리 인사권 틀어쥔 총리 "난 사학스캔들과 무관" 발표하자

무관하게 만들란 소리로 해석…관리들이 증거 조작했단 관측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총리 부부가 관련된 '사학 스캔들'을 덮기 위해 재무성 관리들이 조직적으로 국가 공문서를 조작한 사건과 관련해 관료 사회의 '손타쿠(忖度)'가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손타쿠는 '남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으로 권력자가 먼저 지시하지 않아도 공무원이 알아서 권력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이른바 '알아서 기는 것'이다.

'사학 스캔들'은 극우 사학법인 이사장이 총리 부부와의 친분을 들먹이며 국유지를 사겠다고 나서자 재무성 직원들은 "제로(0)에 가까운 금액이 되게 해주겠다"며 시가의 8분의 1로 값을 깎아서 매각한 사건이다. 이 일이 문제 되자 관련 공문에서 정치권이 관여한 흔적을 310곳 삭제했다. 이 과정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관료들의 '손타쿠'라는 것이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아베 정권 들어 고위직 인사를 총리 관저가 장악하면서 관료 사회에 '손타쿠'가 퍼졌다"고 분석했다. 아베 정권은 2014년 5월 내각 인사국을 만들어 고위 관료들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부처별로 심의관급 이상 인사안을 올리면 총리와 관방장관이 협의해 부적격자를 걸러낸다.

이후 총리 관저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한직으로 밀려나는 공무원이 여럿 나왔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관방장관이 "지방세를 확대하라"고 지시했을 때 총무성 고위 관리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브레이크를 걸었다가 다음 인사 때 좌천되기도 했다. '손타쿠' 풍조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공문 조작 사건이 터진 뒤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조작을 지시한 적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자민당 거물들조차 "말이 안 되는 변명"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최근 BS후지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사학 스캔들이 처음 터졌을 때) 아베 총리가 '아내가 관여했다고 밝혀지면 총리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한 게 모든 사태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인사권을 틀어쥔 총리가 "나는 무관하다"고 하자, 공무원들이 "무관하게 만들란 소리"라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아베 총리가 연관된 또 다른 사학 스캔들이 불거졌을 때 "총리 관저가 외압을 넣은 게 맞는다"고 폭로했던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차관이 아사히신문에 "2000년대까지는 정치가 정하면 관료는 따르지만 그래도 이상한 건 이상하다고 말했는데, 이제는 이견을 내는 것 자체가 봉쇄됐다"고 했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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