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Why] 정봉주는 왜 성추행 폭로 여성 대신 언론사 기자만 고소했을까

댓글 7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Why 모의법정] 안희정·정봉주 어떤 처벌받나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9일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지난 5일 비서였던 김지은(33)씨가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지 나흘 만이다. 정봉주(58) 전 의원은 13일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 기자 등을 고소했다. 두 건 모두 양측 주장이 달라 진실 공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법정에서 이들은 어떤 판결을 받게 될까. 진행될 수사와 재판 상황을 형사 사건 전문인 서정욱(48) 변호사와 미리 엿본다.

안희정 사례

―안 전 지사의 검찰 출석은 형식부터 이례적이었다. 소환 전 자진 출석했다.

"매우 드문 일이다. 보통 절차라면 검찰이 안 전 지사에게 소환을 통보하고, 조율해서 출석 날짜를 정하게 된다. 이런 식의 출석에는 몇 가지 의도가 엿보인다. 일단 자진 출석함으로써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체포나 구속을 피하는 전략이다. 현재 안 전 지사에게 최악은 구속 상태에서 조사받는 일이다. 또한 이미 폭로된 사실에 대해 앞장서서 조사받음으로써 검찰의 질문을 무디게 한 측면도 있다. 피해자인 김씨를 먼저 조사한 후 이를 바탕으로 조사가 진행될 경우, 피해자 위주의 진술과 정보가 수사의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 다툼을 염두에 뒀다는 것인데, 조사 후엔 김씨를 향해 '미안하다, 마음의 상실감, 배신감, 여러 가지 다'라고 말했다.

"성범죄는 피의자가 어떤 뉘앙스로 말하는지가 중요하다. 합의로 성관계를 했다면 미안할 이유가 없다. 안 전 지사의 말을 뜯어보면 '미안하다'는 말 뒤에 '마음의 상실감과 배신감 여러 가지 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안 전 지사는 성관계는 인정했지만, 강압은 없는 합의된 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 역시 적절하지 못한 관계에서 이뤄진 합의에 의한 성관계 등이 미안하다는 말로 이해된다.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표현이다."

안 전 지사에 대한 고소장에 적시된 혐의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이다. '위력(威力)'이란 폭행과 협박은 물론 지위나 권력으로 상대방 의사를 제압하는 행위다. 김씨 측은 안 전 지사가 정치적 지위를 이용해 간음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우리 형법은 위력으로 간음한 이는 5년 이하 징역과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위를 이용하거나 강압이 있었다는 판단 기준은.

"판례에 따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지위, 나이, 이전부터 맺은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가해자가 행사한 정신적 고통의 내용과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검찰은 이를 위해 두 사람 직접 조사 외에도 이들이 드나든 곳의 CCTV, 주변 인물의 증언 등을 확보할 것이다. 안 전 지사는 대화 자동 삭제 기능이 있는 메신저'텔레그램'을 통해 김씨에게 '머하니'라고 물은 뒤 '미안. 내가 스스로 감내해야 할 문제를 괜히 이야기했다'고 사과한 것으로 돼 있다. 이어 '괘념치 말거라' 한 데에 김씨가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안 지사는 '거기 있니? 왜 아무 말도. 전화 안 받네'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둘 사이의 성관계를 완전한 합의나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게 한다. 위력에 의한 간음의 중요한 정황 증거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강간죄 성립 여부는.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전제돼야 한다. 여기에서 폭행과 협박 정도는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게 판례다. 이 건에서는 안 전 지사가 그 정도 폭행이나 협박을 행사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피해자의 고소장에도 위력 등에 의한 간음 혐의로 고소했다는 점에서 적용이 어렵다고 본다."

―반대로 4차례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점 등을 들어 합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성관계 기간과 횟수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업무상 지위로 한쪽이 압도적이라면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두 사람이 상하 관계로 보기 어려운 대화를 나눈 증거가 드러난다면 국면이 달라질 수 있다."

―김씨 외에 또 다른 피해자 고소도 이어졌다.

"안 전 지사의 유무죄 판단 여부에 절대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다. 피해자 수는 중요한 양형 요소일 뿐 아니라 안 전 지사와 피해자 말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도 결정적 영향을 주는 요소다.

―피해자 숫자는 형량 자체에 영향을 주는 일인데.

"성범죄는 흔히 수사나 재판 도중 합의가 이뤄진다. 합의가 양형(量刑)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전 지사가 범행을 계속 부인하고 합의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죄가 인정된다고 가정할 경우, 피해자가 1명이라면 2년 실형 정도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 2분의 1을 가중하게 돼 징역 3년도 나올 수 있다."

정봉주 사례

―정봉주 전 의원은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 기자 등을 형사 고소했다. 그런데 성추행이 없었다면서도 이를 언론에 제보한 피해자 A씨는 고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법조인 눈으로 보면 수긍할 만한 판단이다. 정 전 의원이 A씨를 고소하면 당시 성추행이 있었는지 아닌지 사실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성추행이 있었는지가 핵심 사안이 된다는 얘기다. 성추행이 있었다면 정 전 의원은 A씨에게 무고죄로 역고소당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사만 고소하면 부담이 줄어든다. 정 전 의원과 A씨 사이에 있었던 일보다는 언론이 이를 보도한 경위 등이 주요 수사 대상이 된다."

―조사 과정에서 성추행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은.

"검찰은 언론이 피해자 A씨의 이야기를 진실로 믿은 이유 등 전반적 취재 과정을 조사하게 된다. 언론으로선 폭로가 구체적인 데다 이메일 등 증거가 있고, 다른 이들의 증언도 있었기 때문에 보도한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이런 경우엔 언론사와 기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고소 자체가 각하(却下)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실체에 대한 조사는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가리려면 A씨에 대한 고소가 있어야 한다."

―정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 사건은 2011년 12월 발생했다.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10년)에는 문제가 없지만, 2013년 6월 친고죄(피해자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가 폐지되기 전 일이다.

"형사법에는 형벌 불소급의 대원칙이 있다. 사후에 만든 법으로 과거 일을 처벌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친고죄에서 이미 고소 기간(성범죄는 1년)이 지났다면 이후 친고죄가 폐지돼도 소급해 처벌할 수 없다. 따라서 당시 추행이 한 번만 일어났다면 피해자 말이 맞는다고 해도 처벌이 어렵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

―정 전 의원의 고소로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불거졌다. 피해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명예훼손죄는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하는 사실 또는 허위 사실을 공공연히 지적해 성립하는 범죄다. 선진국 대부분에서는 사실을 지적하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데 우리는 사실을 말해도 처벌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우리 형법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고 예외로 한다. 이 경우에도 피해자의 폭로가 진실이라면 가해자들이 공인이므로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회에선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처벌 대상에서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는 경우를 제외하자는 내용의 법안도 만들어졌다.

"이런 식의 명예훼손죄가 피해자 고백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있는 것은 맞는다. 그러나 형법에 이미 공익을 위해 진실한 사실을 고백한 경우 이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 있어 추가 입법 조치는 효용성이 높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백 자체는 원칙적으로 공익적이기 때문에 현행법에 따라서도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아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