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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 경질 항의한 차관까지 … 국무부 서열 1·4위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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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순방 중 켈리 실장이 전화

“빨리 그만두지 않으면 경질될 것”

언론 “최대 이유는 북한 문제 이견”

틸러슨 사임 회견, 주변에 감사 표시

트럼프 향해선 관례적 인사도 안 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전격 경질에 국무부 차관이 항명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에 트럼프가 다시 해당 차관을 즉각 경질하는 희대의 사태가 벌어졌다. 틸러슨은 사임 회견에서 관례적인 대통령에 대한 감사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8분 간의 회견 후 그는 손으로 십자가를 그리는 기도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어떤 기도였을까.

사임극은 지난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리카 순방 중이던 틸러슨은 지난 10일 새벽 2시30분 케냐에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켈리는 통화에서 “빨리 먼저 그만두지 않으면 경질당할 것이다. 후계자는 정해져 있는 데 언제 발표가 날지는 모르겠다”(AP), “트럼트 대통령의 트위터에 당신 관련 내용이 뜰 것”(뉴욕타임스)이란 내용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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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갑작스럽게 경질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국무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단상을 떠나고 있다. 틸러슨은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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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러슨은 10일 케냐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이어 12일 “내가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느껴 아프리카 순방을 하루 앞당겨 끝낸다”며 귀국 길에 올랐다. 이때만 해도 기자들은 북·미정상회담 준비 때문에 조기 귀국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틸러슨이 귀국한지 4시간 여 후인 13일 오전 8시 44분(현지시간). 트럼프의 트위터가 워싱턴을 들썩이게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새로운 국무장관이 된다. 그는 환상적으로 일할 것이다. 틸러슨 그동안 고마웠어!”

전광석화와 같은 해임 통보였다. 틸러슨은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30분 후 국무부의 4인자인 스티브 골드스타인 공공외교·공공정책 담당 차관이 이메일로 성명을 발표했다. “국가안보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어 틸러슨 장관은 내각에 더 남아 있으려는 의지가 확고했다. (중략) 틸러슨 장관은 오늘 아침 대통령과 (해임에 대해)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경질 이유도 알지 못한다.”

틸러슨이 먼저 물러나겠다고 밝힌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통보 받지도 않았고, 물러날 이유도 없다는 불만을 섞은 성명이었다. 성명이 나온 지 10분 뒤 트럼프는 지방 출장을 떠나기 전 백악관에서 틸러슨 경질에 대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북·미 정상회담 결정 당시 틸러슨은 해외에 있었다. 사실 난 그와 별로 의논하지 않았다. 틸러슨과는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여러 사안에서 의견이 달랐다. 폼페이오는 엄청난 에너지와 지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항상 마음이 맞고 케미스트리(궁합)가 좋았다. 그것이 내가 국무장관에게 필요한 것이다. 틸러슨은 앞으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틸러슨에 의례적인 감사를 표했지만 “마음이 안 맞았다”는 경질 사유를 확실히 드러낸 것이다.

이에 대해 CNN 등 미국 언론들은 "북한 이슈가 이번 결정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보도했다. 두 사람이 다른 어떤 현안보다도 북한 문제에 있어 가장 뚜렷한 불협화음을 냈다는 것이다.

이어 트럼프는 자신에 반발하는 듯한 성명을 낸 골드스타인 차관을 해임했다. 골드스타인은 차관으로 승진한 지 불과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날 사임극의 피날레는 틸러슨의 사임 회견. 그는 오후 2시10분 경 국무부 브리핑룸에 나와 자신의 이뤄낸 성과를 언급하며 동료들에 대한 감사를 이어갔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 등의 이름을 열거했지만 트럼프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트럼프’나 ‘대통령’이란 단어가 등장한 건 "(트위터 이후 4시간 가까이 지난) 오늘 낮 12시가 좀 넘어 대통령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한마디 뿐이었다.

미 언론들은 "미 국무부는 사실상 붕괴했다”고 보도했다. 국무부 서열 3위인 톰 새넌 정무차관도 지난달 개인적 이유를 들어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결국 1인자인 장관, 3·4위인 차관 두 명 모두 기능 정지 상태가 됐다. 고위직이라곤 존 설리번 부장관 1명만 남게 됐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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