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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미투 운동을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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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점부터 나는 ‘막살기’ 시작했다. 남의 눈치를 거의 안 보고 살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스스로 새긴 원칙은 있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자’는 것. 귀엽고 사려 깊고 예의 바른 이들에게는 미소로 환대하지만, 스스로의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은 채 독선적이고 권위적이며 찌질하기까지 한 인간들에게는 윗니 여섯 개쯤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어떤 이는 나와 보낸 시간에 대해 “즐거웠다” “매료됐다”고 전하고, 또 누군가는 “그 여자 좀 미쳤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유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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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걱정된다. 나, 회사에는 평생 들어가지 못하게 돼버린 것 아닐까…. ‘스스로의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은 채 독선적이고 권위적이며 찌질한 인간들’은 대개 한 줌의 권력이라도 쥐고 있을 때가 많았다. 회사의 권력자가 그런 인간이라면 나는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평생 ‘알바’ 혹은 자영업자로 살 것이라는 어렴풋한 지향을 품는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식구는 나 자신뿐이니 불규칙한 수입으로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미투 운동을 지켜보는 일은 회사를 비롯한 ‘견고한 조직’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다. 이제는 다 회복됐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잇따른 여성들의 고백을 보며 눈물 나고 가슴 조였다가, 우울하고 멍했다가, 참을 수 없는 분노로 파괴적 욕망에 휩싸였다. 누군가의 비극이 선정적 가십으로 소비되는 세태에 큰 환멸을 느끼기에 자세한 이야기를 쓰지는 않겠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별것도 아닌 인간들에게 (그런 상황에서도) 너무 예의 있게 대했음이 회한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회한은 의구심을 동반했다. 왜 한국 사회에서 ‘조심’하는 일과 예의 있는 행동은 일방에게 요구되는가? 그것은 나를 어느 한 쪽만 조심하는 것이 당연한 질서인 장소로부터 도피하게 했다. 그러나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기에, 이미 지어버린 빚이 있기에, 좀 더 원대한 목표가 있기에 조직에서, 공동체에서, 회사에서 뛰쳐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모두가 조직 바깥의 삶을 살 수는 없다. 미투 운동이 조직문화 개선 요구로 이어지는 이유다.

‘펜스룰’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최대의 선의를 베풀어, 그 감정은 헤아려볼 여지가 있다. 나는 성희롱, 성추행, 강간을 각각 다른 수위로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사회 분위기는 ‘성폭력’을 단죄할 때 큰 차이를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그 때문에 다수 남성이 패닉에 빠질 수 있음을 고려한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도 될지 몰라서 간단한 매뉴얼을 만들어 그것만 좇겠다고 선언하는 일은 스스로를 갱신하는 태도도,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방안도 아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는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르는 모자란 인격체다(물론 세상에는 도저히 ‘실수’로 볼 수 없는 흉악범죄들이 있다. 이를 포함하지 않는다). 방점은 ‘배움’에 찍혀야 한다. 실수를 통해 배움을 얻는 것. 배우기 위해 서로의 실수를 기탄없이 지적할 수 있어야 하고, 지적받은 사람은 “너 ‘메갈’이냐?” 따위로 방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젊은 여성이 면전에서 실수를 지적해도 옹졸하게 앙심품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과한 뒤 행동을 교정하는 구성원으로 이뤄진 수평적 조직이라면 나도 일할 수 있겠다는 낙관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의 아저씨들은 그동안 어땠는가? 펜스룰이 (이미 그러고 있지만) 여성을 배제한 자리에서 ‘마음 편하게’ 품평회 여는 것을 더욱 정당화하고, 사내 정치로 여성의 승진 기회를 박탈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적이다.

아픔에 공감하고 고요히 자성하며 배움을 수행하는 것이 미투 운동을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지적이나 설명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페미니즘·인권 책을 찾아 읽고 공부모임에 참석하면 더 좋을 테다. 그런데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인간들이 ‘미투’의 본질을 단정하고, 모든 음모를 꿰뚫어보는 척, 통찰력 지리는 척 맨스플레인하고 있다니…. 그 모든 해로운 소음에 몸살을 앓다가 결국 나도 미투 운동에 대한 글을 쓰고야 말았다. 윗니 여섯 개 드러낸 채로.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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