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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AI 반도체의 산업화 성공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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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분야 美·中보다 뒤처져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선점 중요

韓, 메모리·신경모방 분야엔 강해

산·학·연 개발전략 머리 맞대야

세계 각국의 테크(기술) 기업이 사람 뇌를 모방한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이에 우리도 뒤질세라 정부가 AI 반도체 분야 개발에 약 2조5000억원의 연구개발 자금을 향후 10년 동안 투입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이 강한 반도체 기술을 이용해 AI 분야에서 선두를 쟁취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보인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AI를 적극 도입할 것이므로 AI 반도체를 잘 만들면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가 강해질 것이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스템 반도체뿐만 아니라 AI 기초 및 응용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전문가조차도 AI 반도체의 산업화 성공을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AI 분야 자체가 낯설고, 반도체 AI 분야는 더욱 낯설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AI 반도체 산업화가 이미 진전되고 있다. 그동안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에 빼앗긴 반도체의 주도권을 되찾자고 하는 향수와 함께 산업화 성공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이 확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반도체 분야에서 성공을 위한 요인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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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전 서울대 교수 전기정보공학

첫째, AI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 없이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드는 방안이다. AI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 양이 점점 늘어나고, 응용되는 분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메모리 수요가 어차피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보험, 금융, 에너지, 사이버 보안, 경영 등에서도 AI가 경쟁력 결정의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이미 AI 시스템이 요구하는 데이터 영구저장이 가능한 3차원 낸드플래시 메모리칩 분야에서 한국은 최고이다. 그러므로 메모리를 추격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잘하는 것이 AI 반도체를 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둘째, 미국과 중국처럼 AI 반도체를 만들어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는 방법이다. 이 게임에 시스템 반도체를 주도하는 인텔·퀄컴·브로트콤이 뛰어들었고, 반도체 업계는 아니지만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화웨이·바이두 등 시스템 회사가 가세했다. 특히 중국은 지금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인력과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셋째, 새로운 소자를 창안해 기존 반도체(CMOS)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갖는 AI 소자를 만드는 것이다. 흔히 뉴로모픽(신경모방) 소자로 불리는 분야로서 뇌를 모방해 AI 성능을 획기적으로 올리려는 전략이다.

미국, 중국과 달리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뉴로모픽 소자 분야가 강하다. 메모리 반도체와 뉴로모픽 소자 분야가 대기업·대학·연구소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본다면, 벤처가 클 수 있는 분야는 AI 반도체를 개발해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다. 이는 정부나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나 AI 반도체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힘들고 험한 길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좋은 AI 반도체를 만들어도 대기업이 수용해야 하고,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돼야 한다. AI 반도체 고객은 AI 반도체 칩만 보고 사지 않는다. AI 반도체를 이용해 만들고자 하는 전체 시스템 개발에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원한다. 구글의 텐서 플로가 시장에서 강한 이유는 바로 이 요구를 충족시켜 가능한 것이다.

AI 반도체 하나만 갖고 사업화에 성공할 수 없다. AI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이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시장이 넓고 정부가 일관성 있게 지원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의 많은 시스템 국가 프로젝트가 사업화에 실패한 이유는 이러한 생태 시스템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 주도로 산업화에 성공하기가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따라서 메모리 반도체와 뉴로모픽 소자 분야는 대학과 연구소 중심으로 개발하되, AI 반도체 분야는 컨소시엄을 통해 개발 시스템을 가진 회사나 연구그룹이 함께 AI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 더 늦으면 안 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박영준 전 서울대 교수 전기정보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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