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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한반도의 봄’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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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중재 외교로

북·미 회담 합의 이끌어내

분위기 반전에 기여했지만

성과 없으면 위기 올 수도

“북한의 ‘핵 드라마’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변덕스럽고 매혹적인 스타라면, 이 드라마를 실제 연출하는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디 애틀랜틱’의 진단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한반도 운전자론’을 꺼내 들었을 때 전 세계가 비웃었지만 결국 남북,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분석이다. 한반도 운전자론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세계일보

원재연 논설위원

맞는 얘기다. 남북, 북·미 사이의 연쇄 정상회담이 성사된 데는 문 대통령 역할이 컸던 게 사실이다.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한반도 정세가 급반전한 데는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는 문재인정부의 중재 외교가 큰 몫을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통 큰 결단도 빼놓을 수는 없지만. 문 대통령에게 찬사가 쏟아진다. 영국 BBC방송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와 김정은 회동이라는 ‘엄청난 도박(a huge gamble)’을 중재했다고 보도했으며, 미 CNN방송은 북·미 대화의 공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고 평가했다.

국제사회의 대접도 확 달라졌다. 중국과 일본은 방북 결과를 설명하러 찾아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환대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서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이날 면담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 이상 진행됐다. 자신의 의자보다 낮은 의자를 우리나라 인사들에게 내놔 논란이 됐던 아베의 ‘의자 차별 의전’도 사라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대 정치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개회 중임에도 정 실장을 만났다. 한반도 대화 분위기에서 소외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문재인정부의 북·미 회담 중재로 ‘코리아 패싱’이 ‘차이나 패싱’, ‘재팬 패싱’으로 반전된 것이다.

빛의 속도로 전개되던 한반도 정세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미국은 세기의 담판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는 분위기다. 트럼프는 대화파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코드가 맞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기용했다. 김정은과의 회담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실패할 경우 군사옵션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폼페이오가 누군가. 김정은 정권 교체가 북핵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소신을 가진 대표적 대북 강경파다. 북한도 북·미 정상회담 소식은 전하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회담 전략을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북핵 문제에서 성과를 내야 할 처지다. 김정은도 북·미 담판에서 빈손으로 돌아서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지 모른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BBC의 표현처럼 엄청난 도박이다. 내달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에 열린다고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비핵화의 단계와 방식을 어떻게 할지,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 방법이 무엇인지 등은 오리무중이다. 이제 겨우 만날 수 있다는 의지를 확인했을 뿐이다. 변수와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더 이상 연출자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면 미국과 북한이 전쟁의 벼랑 끝에 서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번과 같은 극적인 외교행위가 모두를 전쟁으로 더 가까이 가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상회담이 실패하면 다른 외교수단이 없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북·미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온다면 한반도 평화는 물론 세계사적으로 큰 획을 긋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트럼프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는 직감에 의존해 성급하고 충동적인 선택과 결정을 한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수장을 트위터로 날려버리는 게 트럼프다. 그의 시선이 우리를 향할지도 모른다. 김정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북·미 회담을 이끌어냈다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든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두 달에 우리의 운명이 달렸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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