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43856244 0012018031443856244 09 0902001 5.18.4-RELEASE 1 경향신문 0

[역사와 현실]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글자크기
제주도는 지난 8일, 이미 보건복지부의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외국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의 설립 여부를 공론조사 방식으로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다. 바야흐로 공론조사,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시대로 가는 것인가.

경향신문
작년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 여부를 가리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라는 게 만들어졌다. 전국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471명의 일반시민이 89일간, 67차례의 회의와 토론을 거쳐 결국 59.5% 대 40.5%로 공사 속행을 결정했다. 이 시민들의 결정을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수용했다. 이에 대해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숙의민주주의로 대의민주제를 보완하는 것이라며 환영한 반면, 반대쪽은 국회의 권능을 무시하는 초헌법적 기구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박원호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는 “공론조사는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의 중간쯤에 놓인 미지의 영역”(2017년 9월20일 중앙일보 칼럼)이라고 조심스레 진단한 바 있다.

해방 후 한국 사회에는 대략 세 가지의 성역이 있었다. 반공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다. 이 중에서 반공이 제일 먼저 성역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민족주의는 지금도 위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 비판은 자유로워졌다(가장 경직된 것은 반일민족주의이나 이 역시 옛날과 비교하면 비판에 대한 억압은 완화되었다. 물론 수위 조절이 필요하지만). 그에 비해 민주주의는 여전히 신성한 그 무엇이다.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의 시) 갈구했던 민주주의는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성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적들로부터 지켜야 하는 최상의 가치였다.

사실 민주주의(democracy·용어의 의미 자체에 충실했다면 ‘다수지배’라고 번역했어야 한다. 너무 멋있게 번역되었다)가 동아시아에 들어왔을 때 많은 정치가, 지식인들은 시큰둥하거나 경계했다. 중국에서는 국회의원을 개·돼지라고 불렀고, 미국의 선거제를 불신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일본의 지식인들도 다수결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방식에 회의적이었다.

사실 민주주의라는 말을 만든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 중 많은 이들은 이 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신해혁명과 군벌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중국을 가리켜 ‘민주적 전통’이 강한 나라여서 저렇다는 식으로 조롱했다. 1980년대 격렬해진 학생운동을 바라보며 많은 어른들이 “밥 먹기도 힘든데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민주주의냐”라고 내뱉던 심정도 아마 이런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게 아닐까.

일본이 19세기 후반 이래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나,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여야 하나 등등의 문제를 하나하나 고민해 온 데 반해, 한국은 해방 후 미국의 영향으로 민주주의는 무조건 정당하다는 생각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우리 사회를 이만큼 민주화시켰지만, 그만큼 그것은 사색과 성찰의 대상이기보다는 열정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민주주의도 역사적 산물에 불과한 것이고, 상대적인 가치이며, 많은 결점을 가진 사상이고 제도라는 데에 좀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1987년 민주화 후 우리 사회는 여러 면에서 큰 진전을 이뤘지만 정치지도자와 정부의 리더십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것도 사실이며, 이 때문인지 민주주의의 과잉, 민주주의 피로증 등의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일본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속에서 성장한 정당과 의회가 능력 부족, 부정부패로 지리멸렬하자 대중들은 환멸을 느꼈고, 지식인들은 잘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히틀러의 나치즘과 스탈린의 볼셰비즘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군국주의의 도래를 허용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국회나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이미 한계점에 와 있다. 국회의 대의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대신 헌법재판소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그리고 공론화위원회로 몰려간다. 국회에 대한, 대의제에 대한 절망 때문인지,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중국의 정치제도에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노골적으로 선거제와 대의제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논자들도 있다. 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결정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적 선거의 충격은 이런 흐름을 더 빠르게 할지 모른다.

하늘에서 떨어진 민주주의를 타는 목마름으로 갈구해 왔던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지적으로 사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우리들의 가장 강력한 화두 중 하나다. 지금이야말로 서구 사회과학의 분석틀, 우리와 동아시아의 역사적 경험들을 총동원하여 미로에 빠지려고 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사색할 때다. 거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지금의 정당·선거·의회 제도, 여론 조달의 프로세스(여론조사의 남용, 인터넷의 위력), 헌재를 포함한 유식자 회의의 역할, 대중 집회의 효과와 문제점, 심지어는 다수결의 정당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를 탐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훈 서울대 교수 동아시아사>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 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