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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자수첩]국민청원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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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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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내부 작은 문제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청원이 올라와서 대응하기 힘듭니다. 익명이어서 실제 문제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내용을 두고 대기업 A사 담당자와 나눈 대화다. A기업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올린 내용은 근무 조건, 업무 부담 등이 골자였다. 문제 소지가 있지만 청와대까지 나서서 살펴볼 이슈까지는 아닌 것으로 생각됐다. 물론 해당 글을 올린 사람이 오죽 답답했으면 국민청원까지 했을까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A기업 관계자 이야기를 듣고 기업명으로 청원 내용을 검색해 봤다. 삼성, LG, 현대차, SK 등 주요 그룹 이름으로 검색하면 청원이 수백 건에서 많게는 수천 건까지 나온다.

청원 내용은 각양각색이다. 납품 단가 인하를 막아 달라는 얘기부터 제품 불만, 리콜 요청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상당수는 설득력이 없는 글들이었다. 개인 불만을 일반화하는 경우도 있고, 생트집을 잡는 사례도 있었다.

국민청원 사이트는 분명히 좋은 플랫폼이다. 국민 누구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의견이 공감을 얻으면 청와대가 직접 답변하는 혁신 제도다. 소년법 폐지 청원, 암호화폐 규제, 동계올림픽 '왕따' 주행 논란 등에서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청원이 난무해서는 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사회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좋지만 여론에 기대 정부 역할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다. 자칫 포퓰리즘으로 흘러 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하루에 수백건씩 청원이 쏟아져서는 청원의 정상 여부를 가려내기가 어려워진다. 좋은 청원을 보고 20만명의 국민이 공감해야 청와대가 답변을 할 텐데 수백건씩 쏟아지는 청원에 묻힐 가능성이 짙다. 무의미한 청원까지 대응해야 하는 행정력 낭비도 심각한 문제다. 마치 투서처럼 공격받는 기업과 기관도 대응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지금의 좋은 취지를 살리면서 무분별한 청원을 걸러 내는 묘안이 필요하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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