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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국악 꿈나무들, 선배 군기잡기에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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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중학생들, 선배에 의한 군대문화 고발
-졸업생도 동참
-미투, 부당한 권력관계 꼬집는 운동 확산되나


파이낸셜뉴스

지난 11일 페이스북 페이지 ‘예술계 미투: 알지만 모르는 것들’에는 중학교 내 군대문화를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사진=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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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는 악기케이스에 끈을 매지 못하고 2학년 때는 끈을 맬 수는 있지만 색깔 있는 악기케이스는 안돼요. 3학년이 돼야 색깔도 있고 맬 수도 있는 악기케이스를 갖고 다닐 수 있습니다”
14일 학교, 학생 등에 따르면 미투(MeToo, 나도 말한다) 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11일 페이스북 페이지 ‘예술계 미투: 알지만 모르는 것들’에는 중학교 내 군대문화를 폭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 강남의 국악계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외친 것이었다. 미투는 성폭력 피해 뿐만 아니라 부당한 권력관계를 고발하는 양상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일반학교로 전학도
재학생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느 학교보다 예의 바르고 완벽한 학교지만 선후배 관계는 누구보다 힘든 학교”라고 전했다. 재학생 A군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당하는 것은 인사 강요”라며 “적당한 각도가 아니라 허리부터 120도로 숙이는 인사를 선배 한명 한명에게 해야 하고 눈도 마주치면 안된다”고 털어놨다.

재학생들은 선배가 만든 암묵적 교칙이 후배를 ‘(군기) 잡는다’고 표현했다. 교칙 외에 선배들이 만든 규칙을 전통처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복 셔츠 가장 위 단추를 풀면 선배들이 지적한다고 하소연했다. 머리를 묶는 각도도 선배의 감시대상이다. 옷 입는 것부터 사소한 행동까지 나이 한 살 더 먹을수록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정해진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학교가 정한 교칙을 지적했다. 교칙 ‘교우관계에 대한 예절’ 조항에는 등하교시 만나면 하급생은 상급생에게 먼저 “안녕하셔요?”라고 인사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이를 근거로 후배가 인사를 하지 않으면 욕을 한다고 한다.

재학생과 졸업생은 교내 군기문화가 수년간 지속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졸업한 지 10여년 됐다는 B씨는 “과거에도 선배 앞에서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소풍 때 튀지 않는 색깔의 옷을 입으려고 애썼다”며 “특정한 몇 명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라 수직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구조적인 문제"라고 밝혔다.

■"일부 학생의 불만사항"
교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일반학교로 전학을 한 사례도 있다. C씨는 “SNS에 (선배들 군기문화가) 부당하다고 항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며 “선배들이 몰려와 프로필 사진에 왜 화장한 사진을 올렸느냐며 좋지 않은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와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국악을 포기하고 전학을 갔다”며 “국악의 길이 좁기 때문에 저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그대로 올라가 더 이상 (국악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문화예술계 권력 문제가 초기 공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우려했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예술 분야는 도제식 학습과정이 있다. 위계가 강하고 권력관계가 투영될 수 있다”면서 “선배들 역시 학교에서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후배를 지적하고 단속하는 문화가 올바른 교육방식으로 잘 못 이해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학교 측은 이번 폭로가 ‘일부’ 학생의 의견이라고 해명했다. 학교 관계자는 “미투라고 올라온 글은 몇몇 불만이 있는 상황을 뭉뚱그린 게 많다”고 반박했다. 그는 “전통음악을 공부하기 때문에 예절을 가르치지만 그 점이 위계질서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면서 “학생들에게 후배를 직접 지적하지 말라고 지도한다”고 말했다.

해당 학교를 관리하는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학교 문화가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측면을 볼 때 학생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며 “국악계만의 문제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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