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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미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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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아버지' 한승원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팔순 바라보는 거장 한승원 작가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통해

나이 듦과 삶에 대한 철학 소개

딸인 소설가 한강에 대해선

“아버지 뛰어 넘어 큰 효도 했다”
한국일보

한승원 작가. 불광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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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간은 지금 시속 팔십 킬로미터로 달려가고 있어요, 하던 소설가 딸의 말을 떠올린다. 내 속에 물이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무단히 울고 싶어진다. 철없는 나의 몸은 봄을 노래하는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다.”

소설가이자 시인 한승원(79) 작가는 새로 낸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불광출판사)에서 나이 듦의 애절함, 그러나 굴복하지 않는 기개를 펼쳐 놓는다. “소설가 딸”은 한강 작가. ‘한강의 아버지’이기 전에, 장편소설 30여편, 중단편소설 80여편, 시집 6권, 산문집 10권을 낸 ‘거장 작가’의 철학을 꾹꾹 눌러 담은 짧은 글 80여편을 실었다. 한 작가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젊어서는 수필, 에세이 등을 잡문이라 생각했는데 덜 떨어진 생각이었다”며 “맨살, 맨몸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가장 솔직한 자기 언어가 산문”이라고 말했다.

한 작가는 스스로를 “늘 나의 낙화 시기를 생각하며 이별연습을 하는” 사람인 동시에 “죽음을 살겠다는 심산인,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고백한다. 그리고 “늙은 흰나비에게 귀띔을 한다, 이 푸르고 아름다운 세상을 아직은 더 누려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의 생명력은 ‘글’이다.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고, 살아 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 그게 내 인생 신조입니다. 시시포스처럼 도전과 실패를 무수히 반복하며 살아 왔어요.”

한 작가는 흰 종이에 한자로 ‘광기(狂氣)’를 써 보였다. “젊은 시절부터 내내 서재 바람벽에 ‘광기’라는 표어를 붙여 놓고 지냅니다. 광기로 산다는 얘기, 예술가로서 미친다는 얘기죠. 미치지 않고 이룩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글쓰기에 미친’ 그는 또 다른 장편소설을 최근 탈고해 가을에 낸다. 그는 고향인 전남 장흥에 25평(약 83㎡) 크기의 한옥을 지어 22년째 산다. ‘해산 토굴’이라 낮춰 부르는 집이다. “자연 속에 살면 원초적 힘이 작가에게 더해져 훨씬 빛나는 작품을 쓸 수 있어요. 서울 사는 작가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각 지역으로 흩어졌으면 좋겠네요.”
한국일보

2005년 단편소설 '몽고반점'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한강(오른쪽) 작가의 시상식에 참석한 한승원 작가. 한국일보 자료사진

부록으로 실린 ‘병상일기_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는 뭉클하다. 지난해 지독한 독감을 3개월이나 앓으면서 쓴 ‘나약해진, 그래서 근심하는 아비’의 유언 같은 글이다. “너희 자신만의 독특한 슬픈 눈빛을 지니도록 하여라. 그 눈빛으로 너희들만의 풍경을 창조하도록 하여라.”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하고 다짐하며 즐겁게 놀이하듯 살아라.” “이념이나 정의를 위해 글을 쓰지 말고 진리를 위해 써야 한다. 그 어떤 정의도 진리를 이길 수 없다.” 소설가∙동화작가인 한규호, 만화작가인 한강인이 그의 아들로, 2남 1녀가 모두 작가다.

간담회 직전 한강 작가가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다시 한번 오른 소식이 들려왔다. “강이가 이미 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가장 큰 효도는 승어부(勝於父), 아버지보다 잘한다는 뜻이죠. 우리 세상이 그렇게 되어야 싹수가 있는 세상이겠죠(웃음). ‘헬조선’이라고 하는데, 그 속에 자신을 빠뜨리는 것도, 극복하고 새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도 자기입니다. 도전적으로 살아야 해요. 물도 도전적으로 흐릅니다. 꽃나무도 겨울 내내 도전적으로 봄을 준비했지요.”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한국일보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한승원 지음∙김선두 그림

불광출판사 발행∙352쪽∙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