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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통념 거부한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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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전 교수 "세종은 노비제 확대한 군주…성군이라는 생각 버려야"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강점기에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가 발전했고 제도적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유명한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또다시 학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번에 한국인에게 두루 존경받는 인물인 세종(재위 1418∼1450)에 대한 환상을 깨는 시도를 한다. 세종 앞에 '성군'(聖君)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캐묻는다.

신간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저자는 세 가지 근거를 들어 세종을 성군이라는 명예로운 지위에서 끌어내린다.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노예제 확대, 기생제 확충, 사대주의 강화다.

저자의 연구방법은 이전과 동일하다. 경제학자 출신답게 방대한 자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치와 사실을 토대로 역사를 해석한다. 실록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문서가 연구 대상이다.

그는 우선 조선시대에 노예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을 추론한다. 17세기 경상도 산음현, 단성현, 울산부 호적과 도성이 있던 한성부 호적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초기 노비가 전체 인구의 40%에 달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3품 관직인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이맹현이 1494년 재산을 분배한 문서 '분재기'를 보면 노비가 758명에 이른다. 정승이나 판서는 적어도 1천 명의 노비를 부렸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저자는 세종이 시종일관 노비의 인권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종 연간에 노비에게서 고소권을 박탈한 '노비고소금지법'과 계집종이 양인 남성과 결혼해 얻은 자식을 노비로 규정하는 '종모위천법'이 제정됐다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노비는 주인의 완전한 사유재산으로 변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고려의 노비들은 주인의 불법 행위를 고소할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죽은 상태가 아니었다"며 "노비고소금지법은 사회적 생명으로서의 권리, 상징, 기억을 빼앗았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세종이 기생제에 대해 보인 전근대적 면모도 지적한다. 세종은 1431년 관비가 양인 남성과 낳은 자식 중 딸은 기생, 아들은 관노로 삼자는 형조의 건의를 수락했다. 또 1437년에는 국경지대의 군사를 위로할 목적으로 기생을 두라는 지시도 내렸다.

저자는 "세종에게 노비와 기생은 피가 천하고 성적으로 난잡해 소생의 부계를 인정할 수 없는 금수와 같은 존재였다"며 "천민에게 인권은 없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에 더해 그는 세종이 하늘에 올리는 제사인 천제를 스스로 폐지하면서 국가 체제를 제후국으로 정비했고, 사대주의가 더욱 강화됐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세종에 대해 "드센 일에는 결코 무리하지 않는 온건한 성품의 소유자로 학술, 예제, 외교에서는 업적을 남겼다"고 인정하면서도 세종은 당대 양반들에게나 성군이었을 뿐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책은 저자가 2016년 인터넷 매체에서 했던 강의를 토대로 작성됐다. 그는 이 책을 필두로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시리즈를 12권 출간할 예정이다.

백년동안. 244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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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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