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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미투의 딜레마…감추면 '음해', 밝히면 '2차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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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내 고백해도 공감 대신 '공격'…"2차 피해, 성폭력 만큼 피해자 힘들어"]

머니투데이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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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용기를 내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에 참여한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가 심각하다. 성폭력 사실을 의심하고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식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직접 성폭력을 당하는 것만큼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고 익명에 숨으면 가해자가 발뺌하거나 각종 음해론이 고개를 든다. 딜레마다. 피해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얼굴·실명' 드러낸 미투, 2차 피해 심각= '미투'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2차 피해에 전방위로 노출돼 있다. 특히 얼굴·실명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호받기가 힘들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의 성폭력을 폭로한 김지은씨(33)가 대표적이다. 지난 5일 JTBC 뉴스룸에서 공개 인터뷰를 한 뒤 대중에 고스란히 알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온갖 루머가 넘친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왜 4번씩 성폭력을 당할 동안 참았느냐'는 식의 악성댓글도 많다.

결국 김씨는 12일 자필편지를 통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고 있다. 신변에 대한 보복도 두렵고 온라인을 통해 가해지는 무분별한 공격에 노출돼 있다. 예상했지만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배우 조민기씨(53)의 성폭력 피해를 실명 폭로한 배우 송하늘씨(28)도 2차 피해를 입고 있다. 지난 9일 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그의 페이스북은 악성댓글로 엉망이 됐다. '너 때문에 조민기가 죽었다', '속이 시원하냐'는 공격이 잇따랐다.

그렇다고 피해자가 익명에 숨을라치면 가해자가 발뺌하거나, 온갖 음해론이 고개를 든다. 피해자에게 '가상 인물 아니냐', '얼굴·실명을 까라'고 아무렇지 않게 요구한다. 피해자에게 삶을 송두리째 걸만큼의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시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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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임종철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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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피해, 성폭력 가해만큼 큰 고통= 이래저래 피해자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큰 고통이다. 박숙미 서울시 인권보호팀장은 "고통받는다고 신고 했는데 '뭐 있었던 것 아니냐', '너도 좋았던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이 굉장히 치욕스럽게 느껴질 것"이라며 "2차 피해는 성폭력을 직접 가해하는 것만큼 크다"고 설명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 박 팀장은 "피해자가 놓여진 상황·심정·상태가 어떤지 이해가 부족하고 공감이 너무 안된다"며 "진위 여부는 조사기관이 가리면 된다. 피해자를 지켜주기 위해 입을 다물어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언론도 문제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이들이 느낄 심정에 대해 다루기보다 자극적인 가해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피해자 실명·사진 등을 반복해서 재생산해 피해자의 '잊혀질 권리'를 박탈한다.

김현정 국립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사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성에 대한 보도를 너무 상세하게 하는 것 같다"며 "언론이 피해자를 보호해줘야 하는 의무도 띠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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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20117년 영화계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에서 심재명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센터장(왼쪽 네번째)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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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해결책= 결국 폭로형 미투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신뢰할 만한 체계 마련이 필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왜 폭로하는지 살펴보면 제도적으로 문제 해결이 안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믿을 만한 절차와 체계, 신고창구 마련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같은 사례로는 최근 영화계에 개설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을 참고할 만하다. 지난 1일 개소한 '든든'은 영화산업 내 성폭력 상담, 피해자 지원 등 역할을 맡았다.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성인지적 조사 및 연구, 정책제안 등의 활동도 맡는다.

서울시의 '시민인권보호관' 제도도 좋은 사례로 꼽힌다. 폐쇄적인 공직사회 분위기상 성폭력을 당해도 쉬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5년 전 서울시가 시민인권보호관 제도를 처음 도입했고, 공무원이 아닌 분리된 외부 인권전문가를 영입해 신뢰성을 확보했다. 이후 성범죄 해결을 위한 신고 창구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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