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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되짚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우리 보도는 인종차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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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문제 특집호 앞두고 외부 자문받아 ‘자성문’

경향신문
“지난 수십년간 우리 보도는 인종차별적이었다. 과거를 딛고 올라서기 위해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미국 국립지리학회가 1888년 창간한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12일(현지시간) 인종 문제를 주제로 한 4월호(사진) 출간을 앞두고 이 같은 제목의 편집자 서문을 공개했다.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 지난 130년간의 보도에서 인종차별적 요소는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작업도 진행했다. 인종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통렬한 자기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기획은 창간 이래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유대인 편집장인 수전 골드버그가 주도했다. 그는 서문에서 “과거 잡지가 썼던 끔찍한 이야기를 꺼내 보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인종을 주제로 한 특집호를 만들기로 결정했다면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문을 맡은 역사학자 존 에드윈 메이슨 버지니아대 교수의 평가는 냉정했다. 메이슨 교수는 “1970년대까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미국 내에서 가사노동·육체노동 이외의 영역에 종사하는 다른 인종의 존재를 사실상 무시해왔다. 타국의 ‘원주민’들은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야만인, 사냥꾼, 외래종 같은 존재로만 그려졌다”고 했다. 그는 경쟁지인 라이프 등과 비교해봐도 인종주의적 편견을 뛰어넘으려는 잡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1916년 발행된 잡지에서는 두 남호주 토착민들의 사진 아래 “이 야만인들은 전 인류를 통틀어 가장 지능이 낮은 사람들로 꼽혔다”는 설명이 쓰였다. 1962년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인도네시아 티모르섬의 부족이 기자의 카메라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진이 실렸다. 서양의 과학기술에 매혹되는 원주민의 모습은 인종차별의 전형 중 하나다.

반면 전쟁이나 기근, 인종차별과 같은 불편한 의제들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196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 69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샤프빌 학살’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잡지는 이 소식을 2년 반이 지나서야 기사화했다.

최근 들어서는 변화의 움직임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015년에는 아이티 젊은이들에게 카메라를 주며 직접 현실을 기록해 보도록 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메이슨 교수는 “아이티인들이 찍은 이미지는 귀중한 자료이자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 같은 평가를 가감 없이 전하며 쇄신을 다짐했다. 올 한 해 인종다양성 문제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골드버그 편집장은 “정치 전략으로 인종주의를 이용하던 부끄러운 과거와 직면하고, 우리는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음을 증명해보자”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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