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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묵객의 시(詩)따라 ‘황산강 베랑길’에 봄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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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원동 순매원과 영포마을서 17~18일 매화축제

한국일보

원동매화마을로 알려진 양산 ‘순매원’과 낙동강 사이로 기차가 지난다. 매화축제가 시작되는 17일 즈음이면 언덕배기가 매화꽃으로 하얗게 덮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9일 모습이다. 양산=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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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영축산 천태산 등 1,000m 안팎의 험준한 산줄기로 이어진 양산에서 낙동강은 그나마 풍경에 숨통을 트는 역할을 한다. 한껏 폭이 넓어진 낙동강 하류와 접한 원동면은 양산에서 봄이 가장 이른 곳이기도 하다. 강줄기를 따라 밀양 삼랑진으로 연결되는 1022번 지방도는 물금읍내를 벗어나면 꼬불꼬불 산길이다. 강으로 흘러내리는 경사가 가팔라 도로는 일직선으로 내지 못하고 강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런 길을 약 10km 달리다 왼편으로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원동매화마을로 널리 알려진 ‘순매원’ 농장이 자리 잡고 있다. 산으로 옴폭 들어간 비탈이 모두 매화 밭이다. 농장 시작과 끝 지점의 전망대에서 굽어보면 새하얀 매화 물결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눈부시다. 그 사이로 이따금씩 부산 구포와 삼랑진을 오가는 열차가 지나고 햇살이 부서지면, 나른한 봄날의 풍경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아직은 성급한 몇몇 나무만 만개한 상태이고, 봉우리를 부풀린 꽃송이가 팝콘처럼 하나 둘씩 터지는 중이다. 이번 주말부터 매화축제가 예정된 순매원에는 나무 아래에 간이 식탁을 놓았다. 상춘객들은 꽃 그늘 속에서 국수 파전 막걸리 등을 즐길 수 있다.

이곳 원동 매실은 1930년경 순매원 옆 삼정지마을에서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지금은 강변뿐만 아니라 인근 영포마을 산골짜기로 확대됐다. 영포마을 매화는 원조를 능가하는 규모여서 만개할 즈음이면 산허리가 온통 하얗게 뒤덮인다. 원동마을에서 영포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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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매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 기차와 어우러진 매화마을 풍경이 아련한 옛 추억으로 여행객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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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에서 키워 지하수로 씻어내는 원동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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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과 함께 불판에 살짝 구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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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마을과 함께 원동역 인근의 함포, 쌍포마을은 요즘 미나리가 제철이다. 지난해 9월 이식해 12월말부터 본격 출하해 온 미나리는 3월 말이면 수확이 끝난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미나리는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농장에서 청정 지하수로 세척해 판매한다. 일대에 미나리를 재배하는 농가가 30여호에 이르다 보니 ‘미나리 삼겹살’이 지역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상추나 깻잎 대신 삼겹살을 굽는 불판에 미나리를 얹어 살짝 익힌 다음, 쌈장에 찍어 먹는 식이다. 알싸한 미나리 향과 함께 입 안에 상큼한 봄 내음도 가득 퍼진다.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먹으면 1kg(1만원)을 기본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에 양이 푸짐하다. 미나리를 먹기 위해 삼겹살을 굽는다는 표현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단, 농가식당은 겨울철 한시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현금으로만 결제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황산강 베랑길’은 예나 지금이나 풍경 좋은 곳

물금에서 원동으로 이어지는 도로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임경대( 鏡臺)는 예나 지금이나 전망이 뛰어나고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뾰족뾰족 안개 낀 산봉우리, 질펀히 흐르는 물(煙巒簇簇水溶溶)’로 시작하는 최치원의 ‘황산강임경대’라는 시가 새겨져 있던 곳이어서 ‘고운대’라고도 부른다. 황산강은 낙동강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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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번 도로에서 임경대로 내려가는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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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마음도 강처럼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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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이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그렇듯, 임경대도 누대보다 그 안으로 끌어들인 낙동강과 산세가 일품이다. 시야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강물이 주변 풍경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은은히 담는다. 주차장에서 누대에 이르는 산책로는 짧으면서도 운치 있다. 최치원을 시작으로 임경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묵객들의 한시가 아담한 솔숲에 돌조각으로 남아 있고, 양편으로 소나무와 대나무가 섞인 길은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다.

임경대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강 위에는 자전거길이 놓였다. ‘벼랑’의 경상도 억양을 한껏 살린 ‘황산강베랑길’이다. ‘양산물문화관’에서 상류 2km 구간에 데크를 설치해 물위를 달리는 기분을 즐길 수 있다. 안내판은 가파른 언덕에 나 있던 조선시대 ‘황산잔도’를 강 위에 복원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옛날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다니던 길이자,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걸었으며, 보부상들이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넘어섰던 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황산잔도는 1900년대 초 삼랑진~구포 간 선로에 편입되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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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강베랑길’ 자전거 도로. 원래 영남대로 베랑길은 오른편 기찻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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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금취수장 부근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원동역까지 왕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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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길은 이곳에서 순매원을 거쳐 원동역까지 약 8km 구간에 걸쳐 기찻길과 나란히 달린다. 물금취수장 인근과 원동역에서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 평상시 원동역에는 하루 19차례 상ㆍ하행 열차가 정차하는데, 매화가 절정인 3월 말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루 17회 추가 정차한다.

양산=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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