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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인사이드칼럼] 행동으로 치닫는 트럼프의 통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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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한국 특사가 전달한 북한의 정상회담 제의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락한 바로 그날, 백악관에서 중요한 결정을 발표했는데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관세 부과 대상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한 세계 모든 나라의 철강 제품이며,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미국의 동맹국이 포함돼 있다. 원래 이 조치는 미국 안보상의 목적을 위해 수입을 제한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착수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중요한 미국의 안보 동맹과 마찰을 일으키는 모순을 낳았다. 이는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이 원칙이나 국제규범보다는 거래(deal)라는 틀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으로, 국경장벽을 설치하면서까지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멕시코는 이번 관세 조치에서 제외했는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트럼프 정부는 그동안의 통상 압박을 보다 구체적인 행동플랜으로 나타내고 있다. 철강과 같은 러스트벨트 산업을 보호하고 정치적 상징성이 큰 NAFTA 같은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관철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최우선적인 조치는 한미 FTA의 개정 협상에 통상 역량을 결집하는 일이다. 미국이 NAFTA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고, 일본 등 11개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서명한 이 시점에서 우리 FTA의 중요한 축인 미국과 FTA가 흔들려서는 아시아·태평양에서 선점했던 위치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도록 노력하되 접점을 찾아야 한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의 가장 큰 관건은 미국 내 정치적 영향력이 큰 자동차 분야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보고서도 자동차를 중요 협상 목표로 적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투자한 GM 문제 처리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개별 기업의 일로서 GM 경영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지만 해법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는 자동차 산업이 양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인 철강 관세에 대해서는 보름의 발효 기간 동안 미국 측과 협의해 우리 제품을 제외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이 린치핀과 같은 안보 동맹임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에 더해 무역 불균형 축소를 위한 한국의 노력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트럼프 정부 출범 첫해인 작년에 오히려 늘었으며, 특히 대규모 교역국인 중국·일본과의 적자가 늘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지난해 대미 상품교역 흑자를 17% 줄였으며 서비스를 포함할 경우 미국의 대한국 적자는 불과 100억달러로 5000억달러가 넘는 전체 미국 적자에서 미미한 부분이다.

미국은 전자 화학 섬유 등 많은 한국 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와 같은 수입 규제 조치를 취하고 세탁기·태양광패널에 대해서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했는데, 요건이 충족되는 사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적극 제소해야 한다. 직접적인 무역 보복 조치를 실행하기에 제약이 있는 우리 위치에서, 미국의 조치들이 국제규범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그 반대의 경우에 비해 훨씬 많이 내린 WTO 분쟁 해결 절차를 활용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WTO 주요 회원국들과 공조의 폭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화되고 있는 미국발 보호무역 조치의 확산으로 중국 EU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 전 세계 교역국의 무역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필요한 경우 WTO 공동 제소를 모색해야 하며, WTO 통상장관회의나 주요 20개국(G20) 회의 같은 기구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적극 알려야 한다.

그동안 백악관 내에서 경제 원리에 따른 정책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이 사임하고, 피터 나바로 무역위원장과 같은 행동적인 보호무역주의자의 영향력이 커지게 됐다. 통상의 폭풍을 잘 대비해야 할 때다.

[현정택 객원논설위원·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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