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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CEO 열전: 엘리자베스 홈즈] 거짓 PR과 무책임한 보도가 만들어낸 가짜 신화... 미국판 황우석의 비상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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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강일용 기자] 기회의 땅 실리콘밸리에서도 유독 주목을 받던 인물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Anne Holmes), 미국의 바이오 스타트업 테라노스(Theranos)의 창업자겸 최고경영자다. 홈즈는 불과 19세의 나이로 테라노스를 창업했다. 홈즈와 테라노스는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피 몇 방울만 있으면 260여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메디컬 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정맥혈관에 주사바늘을 찔러넣어 대량의 피를 채취해야 몇 가지 질병 유무만 확인할 수 있었던 기존의 의학 상식을 뒤집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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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즈니스 잡지인 포천지 커버를 장식했던 엘리자베스 홈즈.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포천 2014년 6월호 커버>

홈즈와 테라노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기존의 의료 서비스 시장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혁신이었다. 미국, 한국 등 의료 기술이 발전한 선진국뿐만 아니라 가난한 제 3세계 국가들의 국민도 저렴한 가격에 우수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터. '스타트업'과 '테크' 기업의 산실인 실리콘밸리는 홈즈와 테라노스에 열광했다. 많은 투자자, 기업가, 정치인들이 홈즈와 테라노스를 마크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에 버금가는 위대한 스타트업이라고 칭송했다. 수많은 투자가 들어왔고, 기업 가치도 급등했다. 600만 달러의 투자로 시작된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90억 달러로 급증했다. 50% 정도의 테라노스 지분을 보유한 홈즈의 재산도 45억 달러에 도달했다. 때문에 홈즈는 불과 30살이라는 나이로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억만장자가 되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의 뒤를 잇는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거물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영광은 길지 않았다.

파국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근무하던 한 기자의 의심에서 시작되었다. 에디슨의 원리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홈즈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조악한 답변을 내놨던 것이다. 이를 본 그 기자는 테라노스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에디슨이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은 '헤르페스' 등 16종에 불과했다. 이는 동네 의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기초적인 검사였다. 나머지 200여 개의 질병은 지멘스 등이 제작한 기존의 대규모 의학 장비로 확인한 것이었다. 심지어 홈즈와 테라노스는 채취한 샘플을 원본 그대로 보존해야한다는 당연한 의학상식을 지키지 않고 멋대로 샘플을 조작하기까지 했다. 테라노스를 이탈한 직원들도 기자에게 앞다투어 "테라노스에는 에디슨이란 기기를 만들 기술력이 없다"고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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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기술전문지 테크크런치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한 홈즈. 출처는 플리커>

2015년 10월 이러한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홈즈와 테라노스는 이것이 악성 루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테라노스의 투자자와 파트너는 테라노스와의 거래를 즉시 중단했다. 한때 홈즈와 테라노스의 위업을 찬양하기 바빴던 언론들도 그제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테라노스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제지 포천은 홈즈와 테라노스의 신화를 가장 앞장서서 포장해주었던 언론이다. 2014년 6월 홈즈와 테라노스를 잡지의 커버스토리로 내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해주었고, 이어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를 90억 달러, 홈즈의 재산을 45억 달러 수준으로 평가해줬다. 홈즈를 올해 기업인이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억만장자라고 포장해주기도 했다. 결국 포천은 이러한 기사를 낸 것에 대한 사과 기사를 게재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홈즈와 테라노스의 문제를 지적한 후, 테라노스의 가치를 '0달러'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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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와 테라노스는 급격히 몰락했다. 테라노스의 주식 거래는 동결되었고, 투자자들은 홈즈와 테라노스가 사기극을 저질렀다고 고소했다. 미국 CMS(Center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 미국의 의료 정책을 주관하는 기관)는 홈즈와 테라노스가 향후 2년 동안 메디컬 센터와 연구소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결국 2016년 홈즈는 테라노스의 임상실험연구소와 피 검사를 진행하던 '웰니스 센터(Wellness Center)'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때문에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펜실베페이니아 등 미국 전역에서 근무하던 수 백 명의 테라노스 직원들이 한 순간에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한때 미국에서 제일 부유한 여성이었던 홈즈와 미국 최대의 바이오 스타트업이었던 테라노스는 그렇게 시장에서 영원히 퇴출되었다.

홈즈와 테라노스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비즈니스 세계에 수많은 성공 신화 못지 않게 수많은 사기극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홈즈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거대한 사기극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홈즈의 삶과 거짓이 폭로된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보자.

홈즈의 화려한 비상... 실리콘밸리의 여왕으로 등극하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1984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정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근무했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 나이에 중국에서 살았고, 덕분에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고등학교를 거쳐 미국 최고의 명문이자 창업의 산실인 스탠퍼드대 화학과에 진학했다.

학교를 다니던 도중 그녀는 자신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이점을 살려 싱가포르에 위치한 게놈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여기서 주사기로 혈액샘플을 채취해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의 원인이 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는 2003년 약물 전달 패치에 관한 특허를 신청했다. 그녀가 출원한 첫 번째 특허였다. 이때부터 특허에 관한 홈즈의 묘한 집착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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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플리커>

인턴에서 돌아온 홈즈는 학교를 그만두고 바이오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회사의 이름은 '리얼타임 큐어'였다. 회사의 목표는 '건강관리의 민주화'였다. 누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창업자금은 자신이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모은 월급이었다. 회사가 위치한 장소는 스탠퍼드 대 근처에 위치한 쇼핑몰의 지하 창고였다. 여느 창업가,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홈즈 역시 처음에는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갖고 창업에 나섰다.

600만 달러의 초기 투자를 받은 홈즈는 2004년 회사의 이름을 테라노스로 바꾸고 손 쉽게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메디컬 키트 개발에 나섰다. 이후 10년 동안 테라노스는 다른 초기 스타트업처럼 세상으로부터 별 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몇몇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며 근근히 버텨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몇 방울의 피만 있어도 200여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에디슨'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게된다.

2013년 9월에는 테라노스는 미국 전역에 약 7000개의 매장을 보유한 미국 최대의 약국 체인점 월그린과 계약을 맺었다. 월그린 상점 내에 40여 개의 진단센터를 설립하고 에디슨을 활용한 질병 검사를 실시했다. 홈즈는 월그린과 협력해 미국 전역에 이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간단한 질병 검사에도 수백 달러, 종합 검진의 경우 수천 달러가 들어가는 반면 에디슨은 50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200여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홈즈는 자신이 18개의 미국 특허와 66개의 해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에디슨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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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에디슨의 검사 방식을 소개한 자료. 테라노스 홈페이지>

이러한 혁신을 보고 많은 사모펀드(벤처캐피탈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것)들이 테라노스에 투자를 단행했다. 수 많은 매체가 홈즈와 테라노스의 성곰담을 다루었고, 그녀가 열악한 미국의 의료산업 전반을 혁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많은 유명인이 테라노스의 이사진으로 합류했다. 홈즈의 은사였던 채닝 로버트슨 스탠퍼드대 화학공학 교수, 조지 슐츠 전 미국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전 미국국무장관, 샘 넌 전 미국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정치인과 투자자들이 그녀를 극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건강관리 예방의 새로운 시대'라는 보건예방회담에 참석하기 앞서 테라노스 연구실을 방문했다. 이 때 홈즈와 테라노스의 비전을 듣고 "이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혁신을 놀랍게 생각한다. 홈즈와 테라노스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녀가 이룬 업적은 정말 놀랍다"고 극찬했다. 넷스케이프의 개발자이자 미국의 유명 벤처투자자인 마크 안데레센은 홈즈를 "제 2의 스티브 잡스"라고 치켜세웠다.

당시 홈즈는 누가 봐도 실리콘밸리의 여왕이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래리 페이지, 마크 저커버그의 뒤를 잇는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그녀의 거짓 PR과 이를 띄워준 보도 때문에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거짓 PR과 무책임한 보도가 만들어낸 가짜 신화...완벽히 무너지다

당시에도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외부 오염을 막고 다양한 병원체 검사를 수행하기 위해 혈액 검사는 많은 피를 정맥에서 직접 뽑아내야만 한다. 손가락 끝에서 나온 몇 방울의 피(이른바 핑거스틱 테스트)로 수백 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엘리자베스 홈즈의 주장은 이러한 현대 의학의 상식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때문에 의학계와 생물학계의 연구자들은 홈즈와 테라노스의 메디컬 키트가 임상실험을 통해 아무런 검증을 받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이 이어질 때마다 홈즈는 자신이 만든 의료 서비스를 정당하게 검증받지 않고 특허, 정부와 실리콘밸리의 협력자들, 그리고 언론의 뒤에 숨었다.

홈즈는 어떻게 사람들을 기만했나

홈즈는 자기 PR(Public Relation, 홍보)의 달인이다. 스스로를 스티브 잡스에 버금가는 혁신가로 포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스티브 잡스처럼 언제나 검은 터틀넥 스웨터만 입었다. 혁신을 이끌기 위해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연애도 하지 않으며 연구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자신이 실리콘밸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보기드문 자수성가한 '여성' 사업가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갈색이었던 머리카락도 언제나 금색으로 염색하고 다녔다. (금발벽안은 서구권에선 여성성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테라노스의 모든 홍보모델을 본인이 직접 수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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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 홍보 자료에 담긴 홈즈의 프로필 사진. 출처 테라노스 프레스킷>

창업 동기에도 많은 스토리를 부여했다. 제 3세계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테라노스를 창업했다고 말하기도 했고, 주사바늘과 채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테라노스를 설립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말의 앞뒤가 안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를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기 드문 여성 사업가가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하고 불합리한 의료체계를 혁신하기 위해 스탠퍼드라는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교를 박차고 나와 창업에 나섰다. 게다가 그 여성은 젊고 미인이기까지 하다. 학벌, 외모, 희귀성까지 갖춘 이 완벽한 '스토리텔링' 앞에 많은 언론과 사람들이 열광했다.

처음 홈즈와 테라노스에 주목한 매체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테크 매거진들이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기업들에게 많은 지원을 받으며 최신 IT 기술과 스타트업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매체들이다. 이들이 먼저 홈즈 띄우기에 나섰고, 이에 주요 경제 매체들이 호응했다. 새로운 거대 바이오 기업이 출현하는 것은 미국 경제 발전과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홈즈와 테라노스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자신에게 덧씌우기 위해 이사진으로 합류하거나 후견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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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 고위직이 2013년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을 만나 기술협력을 논의할 당시 미팅에 참여한 테라노스 홈즈 창업자. 출처 미 국방부 보도자료>

언론과 정치인들이 홈즈와 테라노스의 거짓말을 알고도 비호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잘못은 무지(無知)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테크 매거진들은 IT 분야의 도사였고, 경제 매체들은 돈에 관한 전문가들이다. 정치가들도 정치에는 도가 텄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의료와 생명과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의료와 생명과학에 대한 지식없이 홈즈와 테라노스에 대한 무분별한 찬양만을 늘어놓았다. 때로는 거짓말보다 모르는 것이 더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홈즈는 이렇게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TED 등 주요 스타트업 컨퍼런스와 교육 행사에 연사로 다니며 자신의 유명세를 더했다. 언론, 정치인 등의 비호를 받는 홈즈와 테라노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의혹을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적어도 2015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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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다. 홈즈는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수 많은 언론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 가운데 뉴요커라는 매체가 있었다. 뉴요커의 기자는 그녀의 성공담을 들으면서, 마지막으로 에디슨의 원리에 대해 물었다. 여기에 대한 홈즈의 대답이 걸작이다.

"먼저 화학 반응을 수행합니다. 이어 화학 반응이 발생하고, 시료(혈액)와 검사키트 간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신호를 생성한 후 결과로 변환합니다. 이를 인증된 실험실 직원이 검토합니다. (a chemistry is performed so that a chemical reaction occurs and generates a signal from the chemical interaction with the sample, which is translated into a result, which is then reviewed by certified laboratory personnel.)"

긍정적인 기사를 쓰러온 뉴요커의 기자조차 어이가 없었는지 원래의 논조를 뒤엎고 그녀의 대답이 한심하다는 글을 썼다. 이러한 기사를 월스트리트저널에 근무하던 한 전설적인 기자가 보게된다. 그의 이름은 존 캐리루우(John Carreyrou), 기자들에게 최고의 영예라고 여겨지는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적 있는 탐사전문 기자였다.

캐리루우는 바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홈즈와 테라노스의 기술과 사업모델에 어딘가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취재에 나섰다. 그리고 테라노스를 퇴직한 직원들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홈즈와 테라노스가 주장하는 에디슨이라는 메디컬 키트가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캐리루우가 회사의 뒤를 캐는 것을 알게된 홈즈와 테라노스는 자사의 고문 변호사를 캐리루우와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내 허위사실을 공표하면 바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캐리루우는 이에 굴하지 않고 6개월간의 추가 취재 끝에 홈즈와 테라노스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심층 보도를 하게 된다.

'카드로 만든 집(House of cards)'은 바로 무너졌다. 에디슨을 통해 받은 질병검사 결과가 부정확하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테라노스로부터 두 가지 질병을 진단받고 병원에 갔는데, 정밀검사 결과 멀쩡했다는 식이다. 연구결과 테라노스와 기존 검사방식의 일치도는 고작 32%에 불과하며, 68%의 오차가 있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전혀 믿을 수 없는 검사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월그린은 바로 테라노스와 파트너 관계를 끊고 자사 매장에 있던 검사 기기를 철수시켰다. 언론은 연일 정정 보도와 사과 보도를 해야만 했다. 가짜 성공신화에 가려진 테라노스의 비리가 전 직원과 내부고발자를 통해 터져나왔다.

가장 결정적인 폭로는 홈즈와 검사 관련 직원이 나눈 대화였다. "에디슨으로 검사할 수 있는 질병은 얼마되지 않는데, 이렇게 수 많은 질병을 검사할 수 있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느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언젠가 우리는 그렇게 많은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줄기세포를 입증하지 못했으나 우리에겐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이 있다는 황우석의 발언이 생각나게 하는 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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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 검사 장비와 연구실 직원들. 출처 테라노스 홈페이지>

홈즈와 테라노스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테라노스의 기술은 진짜이고 여전히 에디슨을 통해 많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130개의 검사결과를 제출해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30개의 검사결과 가운데 테라노스가 받은 승인은 헤르페스(포진)를 감지하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테라노스의 기술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새로운 의학기술이 받아들여지는 전통적인 과정, 즉 의사 동료들간의 상호 검증, 과학저널 게재, 다른 과학자들의 실험실 평가 및 재현 등이 필요하다는 학계와 언론의 지적을 여전히 묵살했다. 그 와중에 테라노스 직원들을 모아놓고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명목으로 "망할(F-words) 캐리루우"라고 단체로 외쳐대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많은 투자사들이 투자를 철회하고 홈즈와 테라노스가 사기를 저질렀다며 소송을 걸었다. 홈즈는 테라노스의 지분을 나눠주는 조건으로 소송을 무마해야만 했다. 미국 연방정부도 홈즈와 테라노스가 투자자에 대한 중대한 기망을 저질렀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0달러가 되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후 홈즈와 테라노스는 지카 바이러스를 손쉽게 진단할 수 있는 기기인 '미니랩'을 개발했다며 재기를 꿈꿨지만, 사기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곳은 더 이상 없었다. 지난해 12월 홈즈는 포트리스 인베스트먼트 그룹으로부터 1억 달러를 투자받았다며 테라노스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모펀드는 일반 투자사가 아니라 부도 직전의 기업 자산을 저렴하게 인수해서 수익을 내는 곳이다. 이미 시장은 홈즈와 테라노스가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홈즈의 사기극을 두고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홈즈가 제 2의 스티브 잡스이며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한껏 추겨세우면서, 동시에 홈즈의 사기극을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별 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홈즈와 테라노스에 투자한 곳은 거의 대부분이 개인 투자자의 투자금을 모은 사모펀드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은 정작 테라노스에 투자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테라노스가 정상적인 기업이 아님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자극적인 보도에 대한 반성 움직임도

사실 그 누구보다 비판받아야 할 곳은 따로 있다. 바로 무책임한 언론이다. 언론은 홈즈의 거짓 PR을 무분별하게 수용함으로써 가짜 신화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 언론이라고 변명이 없겠는가. 사실 테크 매거진과 경제지가 특정 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취재 기회의 차단이다. 특정 기업을 비판하면 향후 해당 기업과의 취재, 인터뷰 등의 기회를 얻을 수 없게 된다. 다른 매체에서는 관련 기사가 나오는데, 비판을 한 매체에선 기사를 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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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는 자주 검은색 터틀넥을 입었다. 이를 두고 애플 신화의 주역인 스티브 잡스를 따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다. 유튜브 화면 캡쳐>

정보가 없으니 독자들이 떨어져나가게 된다. 종합지는 정치, 사회 이슈 등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나, 애당초 기업의 소식과 서비스를 다루는 테크 매거진과 경제지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두 번째는 광고와 행사 연사 초대의 차단이다. 현재 언론사의 수입은 광고와 각종 행사 개최를 통한 수익을 얻는데 치중되어 있다. 기업과 척을 지면 광고를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행사에 기업 관계자를 연사로 초대할 수도 없게 된다. 수익이 사라지니 기업을 비판하는데 조심스럽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홈즈의 사기극이 밝혀진 후 포천지는 '테라노스가 우리를 어떻게 실수로 이끌었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홈즈와 테라노스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참고문헌
뉴스페퍼민트: 테라노스 사태의 숨은 범인 - http://newspeppermint.com/2016/05/05/m-theranos/
배니티페어: EXCLUSIVE: HOW ELIZABETH HOLMES’S HOUSE OF CARDS CAME TUMBLING DOWN - https://www.vanityfair.com/news/2016/09/elizabeth-holmes-theranos-exclusive
포천: How Theranos Misled Me - http://fortune.com/2015/12/17/how-theranos-misled-me-elizabeth-holmes/?xid=nl_daily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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