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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제천·밀양 참사 벌써 잊었나…도심 곳곳 버젓이 비치된 노후 소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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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된 소화기 그대로 방치
주유소·어린이집에도 노후 소화기
아시아경제

서울 강서구 한 근린상가 건물에 1992년 제조된 소화기가 버젓이 놓여 있다. (사진=송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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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소화기 의무 교체요? 글쎄요. 처음 듣는 얘기인데…"

5일 오전 11시께 찾은 서울 강서구 화곡3동의 한 근린상가. 대형 가구전시매장과 교회가 있는 4층짜리 상가 건물 입구에는 빨간색 소화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뿌연 먼지와 함께 군데군데 거미줄이 가득한 소화기는 녹이 잔뜩 슨 상태였다. 가까이서 확인하자 '1992년 제조'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보였다. 26년 전 만들어진 소화기다. 해당 상가에는 층마다 1~2대씩 만든 지 20년 이상 된 소화기들이 목격됐다. 1층 상가 입구와 계단 곳곳에는 서랍장, 매트리스 등 화재에 취약한 가연성 물질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소방시설이라곤 오래된 소화기 7대가 전부였다.

강서구 등촌3동 한 어린이집 입구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발견된 소화기는 1994년 제조돼 안전핀이 완전히 녹슨 채 굳어버렸다. 이에 화재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기 힘든 상태였다.

화재 위험이 도사리는 주유소도 사정은 비슷했다. 인천 남구 용현동의 한 주유소에서는 1994년 제조된 가압식 소화기가 발견됐다. 주유소에 비치된 8대의 소화기 중 제조한 지 10년이 안 된 소화기는 1대에 불과했다. 지난 1999년 이후 생산이 중단된 가압식 소화기는 노후 상태로 사용할 경우 폭발 위험이 크다.

소화기는 초기 화재 진압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필수적인 장비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몰리거나 화재에 취약한 시설에 제 역할을 못하는 노후소화기가 버젓이 비치되면서 소방안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노후 소화기를 의무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개정 소방시설법 시행령(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현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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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개정된 소방시설법 시행령에 따르면 제조연월을 기준으로 10년 이상 된 분말형태 소화기는 교체하거나 1년 안에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성능시험을 받아야 한다. 성능시험을 받으면 최장 3년까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 시행령은 1년의 계도기간을 거쳐 지난 1월27일부터 현장에 적용됐다. 특정소방대상물에 해당하는 대부분 건축물 안전 관리자 등 건물 관계인은 이날까지 소화기를 교체하거나 성능시험을 완료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규정을 모르고 있거나 알면서도 무시하는 등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화재 초기 소화기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자발적인 교체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초기 소화기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니기 때문에 모든 건물에 비치해야 한다"면서 "노후 소화기는 소화 약재가 굳어있을 확률이 높은데다 가압식 소화기는 폭발의 위험까지 있어 신속한 교체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일선 소방서에서 모든 건물마다 일일이 시설 점검을 하기엔 인력적인 한계가 있다"며 "각 소방서마다 자발적인 교체를 위해 홍보활동과 특별점검을 펼치는 등 최대한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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