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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 5층 창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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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설계도면·시방서 첫 공개



다른층과 달리 30㎝ 작은창 채광억제·탈출방지 의도한 듯
조사실 문들 엇갈리도록 달고 천장 흡음판 달아 소리 막아
‘공포 극대화 구조’ 의혹 짙어…유명 건축가 고 김수근씨 설계


군사독재 시절 고문 수사로 악명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도면과 시방서(공사 순서를 적은 문서)가 처음 공개됐다. 1976년 완공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은 ‘인간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6일 경찰청이 민주당 임수경 의원(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밀폐공간에서 비밀스럽게 수사하기 위해 남영동 대공분실의 각 공간을 처음부터 치밀하게 설계한 사실이 드러난다.

영문으로 ‘남영동 오피스 빌딩’이라 적힌 설계도면들 가운데 조사실로 사용된 5층의 설계도면이 가장 눈에 띈다. 일반 사무실로 이용한 1~4층과 달리 꼭대기층인 5층(이후 증축해 현재는 7층 건물)에는 설계 단계부터 다른 층의 8분의 1도 되지 않는 작은 창문을 배치했다. 너비가 겨우 30㎝에 불과하다. 채광을 최대한 억제하고 탈출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고 박종철씨와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고문을 당했던 곳도 이곳 5층 조사실이었다.

또 복도 양쪽으로 배열된 16개 조사실의 문을 서로 어긋나게 설계해, 마주한 두 조사실의 문을 동시에 열어도 맞은편 조사실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설계자가 건물 용도를 알고 그 용도에 맞춰 디자인을 적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사실마다 내부에 욕조를 설치하도록 설계한 부분은 처음부터 물고문을 의도해 배치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들게 한다. 고은태 중부대 교수(건축학과)는 “당시 욕조라는 시설이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용도가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건물 외벽에 1층과 5층을 바로 연결하는 원형 계단을 설치하도록 한 것도 설계도면에서 확인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대공분실 정문에 들어선 피의자를 곧바로 조사실까지 이동시키는 동시에 눈을 가린 피의자들이 빙빙 돌며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공포심을 느끼도록 의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설계도는 다른 층에 없는 천장 흡음판을 4층과 5층에 설치하도록 했다. 고문 등으로 인해 5층 조사실에서 발생할 소음이 다른 층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미리 조처한 것으로 보인다.

시방서는 조사실 천장에 달리는 전구의 형태·색깔·밝기까지 지정했다. 모든 형광등은 스프링 소켓을 사용하고, 백열등엔 특정한 형태의 갓을 반드시 씌우고, 외면은 은회색 멜라민 도장, 반사면은 백색 멜라민 도장으로 해야 한다고 일일이 지정했다. 오창익 국장은 “평상시에는 형광등을 켜놓고 있다가 조사가 시작되면 피의자를 비추는 백열등만 켜서 공포심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출되는 전구에는 철제 덮개를 씌우도록 했는데, 외부 충격으로 전구가 깨질 것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안창모 교수는 “과거 한국에서 조명 분야의 설계가 대부분 부실했는데, 조명의 색까지 지정한 시방서는 굉장히 꼼꼼하게 작성된 것”이라며 “건축가 또는 건축주의 의도가 치밀하게 반영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1986년 사망)이 설계를 맡았는데, 그가 일련의 치밀한 설계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국내 건축학계에선 ‘설계를 주문한 군사정권의 강압에 의한 것인지, 설계자 스스로 정권의 주문에 부응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운영해온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용도가 바뀐 뒤 일반인에게 공개됐지만, 설계도면 등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수경 의원은 “이번 설계도면 공개로 남영동 대공분실이 애초부터 고문 등 인권 탄압을 위해 설계됐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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