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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과학을 읽다]②노벨상, 이상의 가치 '이그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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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은 수상한 10여 년 뒤 노벨상을 받은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안드레 가임 교수. 첨단 미래소재 '그래핀'을 발명했습니다.[사진출처=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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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은 과학이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 우리 생활 주변에서 시작되고,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누구나 하나 정도는 가진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뗐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최첨단 신소재 '그래핀(Graphene)'을 발명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안드레 가임(Andre Geim)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가 산 증인입니다.

가임 교수는 노벨상을 받기 10여 년 전인 2000년 개구리 공중부양 실험으로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먼저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그노벨상 수상 당시 괴짜였던 가임 교수는 노벨상의 영광을 안겨준 '그래핀' 발명 과정에서도 여전히 괴짜의 기질을 보여줍니다.

가임 교수는 연필심인 흑연에 테이프를 붙였다 뗀 것을 다른 테이프에 10~20번 가량 붙였다 떼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한 층의 그래핀을 얻어내는데 성공하면서 동료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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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지는 디스플레이와 투명디스플레이, 입는 컴퓨터로 각광받는 미래 소재인 '그래핀'. [사진출처=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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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해 엉뚱한 행동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휘어지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와 투명디스플레이(Transparent Display),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로 각광받는 미래 소재를 발명, '그래핀 시대'를 연 것입니다.

이처럼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의 가치는 수상자와 수상작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치밀한 평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2016년 화학상 수상자로 독일의 자동차 회사인 '폭스바겐'이 선정됩니다. 2015년 '디젤 게이트'로 세계적인 이슈가 됐던 폭스바겐사는 차마 부끄러워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이그노벨상을 주관하는 하버드대 과학유머잡지 AIR가 폭스바겐사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자동차가 테스트를 받을 때만 자동적으로 배기가스를 전기·기계적 조작을 통해 줄어들게 함으로써 오염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2012년 평화상은 공공장소에서 박수를 금지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손이 하나뿐인 남성을 체포한 남성이 공동으로 수상했습니다. 시상식장에서 한 팔을 몸에 붙인 채 두 사람이 나머지 한 손만으로 박수를 치려 낑낑대는 장면을 연출해 평화상 수상자들을 한껏 조롱했습니다.

수상작 선정 과정도 전문가들의 치밀한 심사를 거쳐 '떡잎'인지, '유머'인지를 판단합니다. 심사위원들은 대부분이 진짜 노벨상 수상자들이거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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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인식상을 수상한 '가랑이 사이로 본 세상'을 연구한 아츠키 히가시야마 일본 리츠메이칸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시상대에 올라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보는 포즈를 시연하고 있습니다. [사진출처=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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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처음 생겼다 사라진 분야인 인식상에는 '가랑이 사이로 본 세상'을 연구한 아츠키 히가시야마 일본 리츠메이칸대 심리학과 교수와 코헤이 아다치 오사카대 교수가 공동 수상했습니다. 이들은 무대에서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보는 포즈를 시연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안전공학상에는 2006년 타계한 미국의 발명가 구스타노 피조(Gustano Pizzo)가 선정됐습니다. 그는 비행기 납치범을 낙하산에 묶어 경찰에게 내려 보내는 방법을 고안해 1972년 미국 특허를 받았지만 생전에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그노벨상을 받은 후 피조의 발명품은 세상에 널리 알려집니다.

한국인 수상자도 나왔습니다. 커피가 가득찬 잔을 들고 뒤로 걸을 때 컵 속의 액체 슬로싱(sloshing) 현상을 연구한 미국 버지니아대학에 재학 중인 한지원씨가 유체역학상을 받았습니다. 관련 논문을 작성할 당시 한씨는 민족사관고에 다니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당시 한씨의 이그노벨 유체역학상 수상이 대서특필되자 일본 네티즌들이 "너희들은 이그노벨상도 처음이냐"고 비아냥거리면서 웹상에서는 때 아닌 한일전이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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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한국인 한지원씨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모습.[사진출처=유튜브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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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 외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이 한씨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소문낼 만한 소식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2001년 3만6000쌍의 합동결혼식을 주최한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경제학상, 1999년 향기나는 양복을 개발한 권혁호 코오롱FnC 부장이 환경보호상, 2011년 휴거소동으로 유명한 A목사가 종말을 예언한 다른 나라 예언자(?)들과 공동으로 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이웃나라 일본은 최근 30년간 11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우리는 아직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면서 "두뇌가 부족해서가 아닌 창의적 발견·발명들이 사장되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진단, 연구 패러다임의 전환 등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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