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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올림픽 이후 예상했는데…제재 서두른 美, 한국에도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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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이 23일 백악관에서 북한에 대해 해상차단을 강화하기 위한 선박 28척, 해운무역회사 27개가 포함된 최대 규모 제재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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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최근 북한의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 등 몇 주간의 해빙 무드가 있었다. 적어도 남북 간에는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 있는데, 왜 지금 제재를 발표하는가.”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우리 대통령과 부통령이 명확히 추가 제재에 대해 밝힌 바가 있고, 이런 제재 패키지를 준비하는 것은 엄청난 과정이다. 그것이 준비되는 즉시 우리는 오늘 발표한 것이다.”

23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 제임스 S. 브래디 기자회견실에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열 번째 대북 독자 제재를 발표한 므누신 장관이 기자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미국이 선박 28척, 해운·무역회사 27개, 대만 무역회사대표 1명 등을 명단에 올리는 역대 최고 강도의 제재를 가하는 데 있어 평창올림픽도, 남북 대화 재개도 고려 요인은 아니었다. 므누신 장관은 “대통령은 이미 전 세계 기업들에 명확히 밝혔다. 북한의 핵 야심을 돕는다면 미국과는 거래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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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제임스 리시 미 상원 외교위 의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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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후’ 예상했는데 이방카 방한 중 전격 발표=미국이 북한에 대한 ‘역대급 제재’를 예고한 것은 지난 7일이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방일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회담한 뒤 “가장 공격적이고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추가 제재는 기정사실화하면서도 시점은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로 예상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관련 질문에 “올림픽 이후에 미국의 독자 제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계속 제재를 검토하고 정기적으로 리스트를 발표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예측과 달리 미국은 굳이 폐막식을 이틀 앞두고 제재를 발표했다.

독자 제재 발표를 전후로 한 시간대별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23일 오전 북한은 한국에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할 대표단장으로 보내겠다고 알려왔다. 공식 발표는 오후 1시30분이었다. 오후 2시쯤(한국시간) 외신들이 “미 재무부가 오늘 새 제재를 발표한다”고 속보를 전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4분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탄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이방카는 오후 7시30분부터8시5분까지 문 대통령을 접견하고, 오후 9시50분까지 함께 만찬을 했다. 만찬이 진행중이던 오후 9시 무렵 백악관은 한국 언론을 포함한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24일 오전 평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오후 11시30분쯤 보수정치행동위원회(CPAC)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직접 독자 제재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해상 차단에 집중한 이번 제재를 스스로 “전례 없는 가장 무거운 제재”라고 표현했다.

24일 용평리조트 USA 하우스에서 오전 9시20분부터 약 20분 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은 대박 압박을 계속할 것이며 ▶올림픽에서 북한 인사들과 접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백악관의 입’인 샌더스 대변인은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 압박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제재 효과의 극대화를 노리기 위해 폐막식 직전을 시점으로 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목적이 제재 훼손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이에 올림픽이 끝나기 전 더 강한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확실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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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말콤 턴불 호주 총리와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대북 제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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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거친 2단계’ 한국에는 난제 가능성=외교부는 미국의 추가 제재에 대해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이끌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북한과 대화를 할 때 하더라도 압박 구도에 변함은 없다는 미국의 드라이브에 ‘환영’이 아닌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발표 직후 “이번 제재가 효과가 없으면 2단계로 가야 한다”며 “이는 매우 거칠 수 있고, 전 세계에 매우 불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과 24일 평창에서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제임스 리시 상원의원(공화당)은 “상황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여러 안이 제출된 것으로 알고 있다. 상황이 악화하지 않길 바란다”면서다.

샌더스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2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더 강할 것”이라며 “동맹국들에게도 노력을 함께 할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2단계가 해상 차단 강화나 ‘세컨더리 제재’(북한과 정상적 거래를 하는 제3국 기업, 개인도 제재)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정부는 고민이 깊다.

해상 차단 강화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5년 각국이 협력해 핵·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배나 비행기의 이동을 공동으로 차단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PSI를 고안했다. 한국은 PSI 운영전문가그룹(OEG) 16개국에 포함돼 있다. 미국의 2단계는 이를 근거로 동해 상에서 의심 선박에 대한 검색 등에 있어 한국의 협력을 요구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세컨더리 제재에 대한 전면 동참 요청도 가능한 2단계 시나리오다.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가 사실상 중국을 타깃으로 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은 남북 관계뿐 아니라 한·중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서울=유지혜, 평창=김원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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