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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독] 8년전 호별 원룸 임대차계약서까지 요구한 갑질 세무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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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매도자 8차례 찾아가 천신만고 사실확인증명서 받아내 / 양도소득세 2600만원 부과 실패하자 소득세로 방향 틀어 특수수사하듯 존재하지도 않는 수년 전 월세계약서, 금융거래내역 요구해

2002년 부산 부산진구 가야동 동의대학교 정문 인근에 있는 지상 4층, 16실 규모의 원룸 건물을 매입해 임대업을 하던 허모(75·부산 사하구)씨는 지난해 6월 부동산업소에 매물로 내놓은 지 11년 만에 천신만고 끝에 건물을 팔았다.

매각대금은 4억9500만원이었다. 16년 전 매수대금 4억7500만원에 비해 2000만원이 올랐으나 그동안 지급한 은행이자와 감가상각비 등을 계산하면 사실상 손해를 본 셈이다.

원룸 뒤편 산기슭의 동의대 학생 손님을 예상해 샀는데, 대학 측이 최근 10년 사이 대형 기숙사 2개 동을 신축하면서 2000실 이상이 제공되면서 원룸 임대업자들이 직격탄을 맞는 바람에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2000년대 초·중반 거센 원룸 열풍을 타고 동의대 정문 인근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원룸빌딩은 대부분 50%가 넘는 공실률을 기록하며 마지못해 운영하는 적자경영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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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구 서대신동에 위치한 서부산세무서 건물 전경. 부산=전상후 기자


허씨는 이만한 가격에라도 판 데 대해 만족하며, 세무대리인을 통해 양도차익 2000만원에 대한 법정이자 등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만큼 공제한 뒤 첨부서류와 함께 양도소득세 60여만원을 지난해 8월쯤 자진 신고했다.

그런데 허씨 거주지 세무당국인 서부산세무서 재산법인납세과는 자진신고 내용을 믿지 못하겠다며 2600여만원에 달하는 거액의 양도소득세를 임의로 계산, 과세 전 사전통보하며 보정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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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산세무서 내 4층에 위치한 재산법인납세과 출입구


2002년 원룸 건물 매수 당시 1억대 중반으로 다운계약된 금액으로 기재돼 있는 등기부등본과 3억원 정도의 매수대금이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는 다운계약서가 관례로 작성되던 시기였고, 2006년부터 실거래가 신고가 의무화했다.

딱히 입증할 방법이 없었던 허씨는 멀리 경남지역에 사는 건물 매도자를 수소문해 확인한 뒤 무려 8차례나 찾아가 빌다시피 해 애초 4억7500만원에 매도했다는 거래사실확인서를 받아냈다. 인감증명서도 첨부했다.

그는 또 집 안 구석구석을 뒤져 부동산 매수 당시의 대출금 통장과 전 건물주에게 계약 당시 받아둔 임대현황표(호실별 보증금 내역 등)를 찾아내 전세보증금 인수총액이 1억9100만원 사실을 확인했다.

허씨는 천신만고 끝에 당시 은행대출금 승계분 1억3900만원, 전세보증금 승계 1억9100만원, 잔금 지급액 8000만원 등 매수대금의 83%(법적 충족기준 80%)에 달하는 보정자료를 구비해 제출했다.

서부산세무서 재산세과는 이번엔 거래사실확인서에 첨부된 거래상대방(전 건물주, 매도자)의 인감증명서에 용도가 미기재된 사항을 트집 잡았다. 통상의 인감증명 제출 및 사용 관행상 부동산 및 자동차 매도용이 아닌 일반용의 경우 용도를 기재하지 않아도 사용상 아무런 제약이 없다.

세무서 측은 보정자료를 검토한 후 양도소득세 부분 보정은 됐다고 허씨 측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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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산세무서 정문 옆 벽에 부착된 서부산세무서 표식


세무서 측의 ‘갑질 행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양도소득세 부분이 입증되자 이번엔 납세자가 보정자료로 제출한 서류 속에서 소득세 부분을 더 조사해야 한다며 추가로 자료(2010∼2017년 5월까지 호별 임대차계약서 사본, 해당 기간의 월세 입금통장 사본)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허씨는 “건물을 매각한 지가 1년이 다 돼 가는 데다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원룸의 특성상 설사 현재 원룸 임대업을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2∼3년이 지나면 입주자가 바뀌기 때문에 수년 전의 호별계약서가 존재할 리가 없는 데 칼자루를 쥔 세무당국이 소시민을 골탕 먹이는 세무 갑질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분개했다.

허씨는 특히 “처음부터 자료를 정직하게 제출했지만 ‘믿지 못하겠다’고 해 온갖 고생 끝에 16년 전의 전 건물주를 8차례나 찾아가 사실증명확인서를 받는 등 법적으로 유효한 완벽한 보정자료를 제출하니 이번엔 또 다른 횡포를 부리는 게 꼭 무슨 수사기관이 고구마 캐듯이 특수수사를 하는 것 같다”며 “이제는 세무당국이 하는 행정은 믿을 수가 없고, 어떤 서류도 제출하지 않겠으며 상급기관에 진정을 제기하든지 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부산세무서 관계자는 “월급 값을 하기 위해 정상적인 세무조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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