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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캠코더 노골화...'참여정부 명함'만 내밀면 민간기업 자리 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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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恨 풀듯...낙하산 인사 무더기 투하]

금융권 부회장직까지 만들어 文측 인사 선임

공기관엔 대선 공신·정치인들 공공연히 등용

기업도 '보이지않는 힘'에 참여정부 출신 발탁

"어제 오늘 일 아니지만 차별성 없어 아쉬움"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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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우리 사회 곳곳의 1만명을 바꾸면 지난 9년간 형성된 구조를 어느 정도는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부처는 물론 공공기관과 금융사·민간기업·학계·연구계까지 사회 지도층 전반의 물갈이를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형성된 보수화를 완전히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새 정권 수뇌부의 이 같은 공감대는 ‘인사’라는 강력한 수단을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주요 공공기관장에 대한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증거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권과 일반기업까지 경쟁적으로 ‘코드 맞추기’ 식 인선에 돌입하면서 새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점점 노골화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무리수는 전문성 논란을 낳고 노동조합과는 마찰을 일으키며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25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사외이사로 김정훈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 전문위원을 선임했다. 김 신임 사외이사가 전문위원 겸 운영위원으로 있는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는 전·현직 금융기관 관계자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로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문재인 당시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주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3명을 교체하며 박병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를 임명했다. 박 신임 이사는 30년 넘게 판사를 지낸 법률전문가인데 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이 때문에 ‘코드 인사’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또 선우석호 KB금융 사외이사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기고 선배이자 장 실장과 논문을 같이 낼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KB부동산신탁은 없던 부회장 자리를 새로 만들면서 김정민 KB부동산신탁 전 사장을 앉혔다. 김 부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고 지난해 9월 KB금융 회장 선임 과정에서 유력 후보로 떠오르기도 했다.

민간 기업들에서도 정부와 코드가 맞는 경영진을 선임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포스코는 다음 달 9일 정기주주총회에서 김성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김 전 장관은 참여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 정책관리비서관과 산업정책비서관을 거쳐 해수부 장관까지 지냈다. KT 역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이강철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김대유 전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각각 사외이사에 선임했다. 또 사조그룹의 사조대림이 다음 달 참여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종민씨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하고 패션 회사 LF도 이번 정기 주총에서 문재인 캠프 홍보본부장을 지낸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다시 뽑는다.

사외이사는 기업 경영의 조언자이자 주요 안건을 의결하는 권한을 가진 비상근 경영진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주로 임명된다. 그러나 본래 목적보다는 몇 번의 회의 참여로 연간 수천만원의 보수를 챙기면서 경영진의 결정을 맹목적으로 돕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금융계, 과거 공기업이나 민영화한 기업을 중심으로 일종의 ‘챙겨주기’ 형태로 친정부 인사를 사외이사에 앉혀온 게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대기업이나 대형 공기업 사외이사의 경우 정권이 직접 내리꽂는 경우도 허다했다. 최근 ‘코드’를 맞춘 사외인사들이 득세하는 현상은 정부 입김이라기보다는 기업 스스로 결정한 ‘전략’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적폐 청산’을 외치는 정부와 확연히 바뀐 기류 자체가 ‘보이지 않는 힘’이 돼 기업에 압박을 더 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문 대통령이 “무자격·부적격자의 낙하산·보은 인사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공공기관장에는 ‘낙하산’ 인사가 이미 공공연해졌다. 지난해 10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표에 오른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은 최초 금융감독원장과 한국거래소 이사장 하마평에 올랐다. 그러나 비전문가라는 비판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돌고 돌아 KAI로 갔지만 김 대표가 방산 관련 경험이 없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됐다. 이때만 하더라도 공공기관장 ‘낙하산’ 임명은 쉬쉬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노골화하는 모양새다. 먼저 정치인 출신들의 기관장 임명이 대대적으로 이뤄지는 중이다. 6일 취임한 오영식 신임 코레일 사장은 여당 소속으로 3선 의원을 지냈다.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 등 모두 여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 역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지난 대선 캠프에서 중앙선거대책본부 조직본부 부본부장을 맡았다.

지난 정권들과 다를 바 없는 낙하산 인선은 숱한 전문성 논란과 노조와 마찰도 키우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의 경우 노조가 증권 유관기관이 아닌 산업은행 출신 신임 투자지원본부장(상무)의 선임에 반발해 두 달간 출근 저지 투쟁을 하다 최근 갈등이 일단락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입맛에 맞는 임원을 뽑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과거와 마찬가지라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처음이 어렵지 일단 색깔이 뚜렷해진 만큼 이런 추세는 임기 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임진혁기자 경제부 종합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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