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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IOC 위원장 꿈 꾸던 소년, '쇼트트랙 눈썹남'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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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눈썹남, 정체는 경기운영직원

헝가리 선수 동작 따라했다 깜짝 스타

트위터에서 3만 RT…국제심판도 알아봐

산도르가 먼저 찾아와 "사진 찍자"

어릴적 쇼트트랙 선수생활…올림픽 각별해

"운영직원·자원봉사자 노력도 기억해주길"

중앙일보

훈훈한 외모로 인기가 높은 헝가리 쇼트트랙 선수 리우 샤오린 산도르(오른쪽). 왼쪽은 그의 여자친구인 영국 쇼트트랙 대표 엘리스 크리스티. [크리스티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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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으로 양쪽 눈썹을 번갈아 쓱쓱, 그리고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가리키며 윙크. 헝가리 쇼트트랙 대표 리우 샤오린 산도르(23)가 결승전 출발선에 설 때마다 선보이는 동작이다. 그는 ‘출국을 막아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평창 올림픽 훈남 스타 중 한 명이다. ‘헝가리 윙크남’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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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 헝가리 리우 산도르가 등장하는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그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 네티즌은 이 남성을 '시강남', '눈썹남'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산도르의 인기와 함께 덩달아 화제에 오른 인물이 있다. 17일 남자 1000m 결승에서 산도르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했던 한국인 스태프다. 해당 중계 장면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가며 네티즌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에게는 ‘시강남(시선강탈남)’, ‘빨간조끼남’, ‘눈썹남’ 등 다양한 별명이 붙었다. 트위터에 처음 올라온 게시물은 현재 3만 번 이상 공유됐다. 인스타그램(인스타)에서는 관련 동영상이 63만 번 넘게 재생됐다.

산도르는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본인의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며 ‘나의 눈썹남(#myeyebrowman)’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저 사람은 대체 누구냐’는 질문이 빗발쳤다. 강릉 올림픽 파크에서 뜻밖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경기운영직원 이준오(29)씨를 쇼트트랙 마지막 경기가 열린 22일 강릉에서 만났다.



Q : 산도르의 눈썹남, 당신은 누구인가.



A : 경기 운영부서에서 쇼트트랙을 담당하는 SID(스포츠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일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유급 인력이다. 한국 선수뿐 아니라 쇼트트랙 선수 전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Q : 그 동작을 왜 따라했나.



A : 10일 1500m 결승에서 산도르가 했던 등장 세리모니를 봤다. 보통 한국 선수들은 진지하게 경기에 임한다는 의미에서 별다른 제스쳐를 하지 않는데, 유쾌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제가 된 동작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따라했다. 일하면서 가끔 화면에 얼굴이 잡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 순간 그 각도로 딱 잡힐 줄은 몰랐다.




Q : 화제가 된 것을 언제 실감했나.



A : 경기 직후다. 그 동작을 하고 1000m 결승이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2분 정도다. 경기가 끝나고 30초쯤 지났는데 자원봉사자 친구가 “대박났다”면서 영상을 보여줬다. 곧이어 페이스북에도 떴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얘길 하기 시작했다. 얼떨떨했다.




Q :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나.



A : 쇼트트랙 국제심판들이 나를 볼 때마다 눈썹 세리모니를 한다. 영상을 본 것 같다. 올림픽 파크를 지나다니면 ‘윙크남이다’ 하는 소리도 들린다. 올림픽과 쇼트트랙의 인기를 새삼 실감한다.




Q : 산도르와 사진은 어떻게 찍었나.



A : 선수 관리가 일이다 보니 평소에 대화도 하고 친하게 지냈다. 산도르가 동영상을 보고 와서는 함께 셀카를 찍고 인스타에 올려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나란히 서서 눈썹 세리모니 하는 모습을 다시 찍어 내 인스타에도 올렸다. 산도르가 내 아이디를 태그한 덕분에 인스타 팔로워가 며칠만에 1500명 정도 늘었다.




Q : 쇼트트랙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A : 사실 초등학교 때 쇼트트랙을 했다. 2학년부터 5학년까지 대전 대표 선수로 뛰었다. 전국체전에서 메달도 따봤다. 물론 올림픽 선수를 꿈꿨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적힌 장래희망이 IOC 위원장이다(웃음). 선수를 그만 둔 이후에도 쇼트트랙이 가슴에 남아 있었는데, 다른 방식으로라도 이렇게 올림픽을 함께하게 됐다.




Q : 올림픽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겠다. 일 하면서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A : 선수들은 경기 결과로 절대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다. 국적이 달라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4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넘어져서 경기를 망치면 분명히 자존심도 상할텐데 그래도 박수치고 웃으며 상대방을 축하한다. 스포츠로 하나가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Q : 선수단과 재밌었던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A : 쌍둥이 형도 같은 SID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쌍둥이 중에도 닮은 편이라 선수와 스태프들이 잘 구분을 못 한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형과 장소를 나눠서 근무를 하는데, ‘너는 어떻게 두 군데 다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어떤 선수의 분실물을 내가 찾아줬는데 고맙다면서 형한테 선물을 주기도 했다. 북한 감독은 마지막 훈련 날에야 “너네 쌍둥이였네?”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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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르의 눈썹남으로 화제가 된 이준오(왼쪽) 씨가 22일 강릉 아이스아레나 앞에서 쌍둥이 형 이준영씨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두 형제는 한 달간 강릉에 머물며 쇼트트랙 선수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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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산도르의 헝가리팀이 남자 계주를 우승했다.



A : 축하한다고 얘기했다. 우리 선수들이 메달을 따지 못해 안타깝긴 했지만 원망은 없었다. 헝가리는 사실 메달을 크게 기대하지 않던 팀이었다. 그런 팀에게도 반전이 찾아오는 게 쇼트트랙이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시상대에 오를 선수들을 이끌고 링크로 들어가는데 산도르 형제의 아버지도 날 알아보시더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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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리우 형제와 만난 이 씨 형제. 리우 형제는 닮은 외모 때문에 쌍둥이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지만 산도르가 세 살 형이다. 왼쪽부터 헝가리 국가대표 리우 샤오앙(20), 이준영, 이준오, 리우 샤오린 산도르. [사진 이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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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가까이서 본 평창 올림픽, 어땠나.



A : 성공적이었다고 느낀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쇼트트랙 파트는 그랬다. 운영 직원과 자원봉사자 모두가 발로 뛰며 최선을 다 했다. ‘이번 올림픽처럼 선수 관리 면에서 트러블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앞으로 평창 올림픽을 이야기할 때, 메달을 딴 선수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했던 사람들도 함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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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의 모든 경기가 마무리된 22일, 쇼트트랙 경기운영부서의 업무도 끝났다. SID팀이 아이스링크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이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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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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