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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MB 측근들은 왜 MB를 배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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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측근들’ 수사에 상당히 협조적… 포토라인 서게 될 MB 주변에 끝까지 남을 사람은 누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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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청계재단 사무국장) 하고 있으니 또 나가 조사 받아야 될 것 아니겠나. 특검에 가서 다 이야기했지만.”

2011년 4월 11일, 청계재단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난 이병모씨의 말이다. “정권이 바뀌면 도곡동 땅이나 BBK 문제는 다시 조사할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자의 말에 대한 답이다.

2월 15일, 이씨는 구속됐다. 이번 조사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나 영장에 적시돼 있는 말을 보면 과거 “2008년 정호영 특검 등에게 불려나가 다 이야기했다”는 이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2011년 기자를 만났을 때 그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생활의 곤궁함’을 거론했다. 청계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지만 그가 받는 월급은 “집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곤란할 정도”라고 했다. 하도 사정이 어려우니 청계재단 이사들이 200만원씩 갹출해 2000만원짜리 통장을 만들어 사무실 운영과 관련한 잡비는 체크카드로 지출한다고 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사람들 중 과거 측근이었던 사람 많지 않나’라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누구나 돈 욕심도 있겠지만 자격지심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학력도 짧고… 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 검찰 조사에서 실토한 자금관리인 이병

원래 그는 작고한 처남 김재정씨 회사 ‘우방토건’(나중에 태영개발로 이름을 바꿈) 직원이었다. 현대건설이 월성원전을 짓는 데 하청을 받아 일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현대건설 사장을 그만두자 그도 현장에서 쫓겨났다고 회상했다. 그는 김재정씨가 중풍에 걸려 회사가 문을 닫으니, MB가 ‘갈 데가 없으면 여기 있으면서 도와 달라’고 해서 김재정씨 매형 MB의 개인회사인 ‘대명’에 들어갔다가 이후 청계재단에 남았다고 덧붙였다.

검찰 결론에 따르면 그는 ‘실주주 MB(검찰 공소장 언급)’의 자금관리인이었다. MB 차명재산 관리 정황은 압수한 그의 외장하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곧 공개될 것.” 지난해 4월 1일, 김종백씨가 자신의 개인 페이스북에 <주간경향> 김경준 출소 기사를 링크하며 남긴 말이다.

무엇이 공개된다는 말일까. 김씨가 링크한 <주간경향> 기사의 제목은 “[단독] ‘BBK 김경준 140억 다스 송금 이면 합의문 있다’”였다. 김경준씨가 끝끝내 함구한 ‘이면합의’ 내용이 공개될 것이라는 것이다.

김씨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상은 회장, 그리고 시형씨의 운전기사 및 다스 총무차장을 맡았었던 김씨는 다스와 청와대 사이의 문서 수발 심부름을 하며 증거자료를 차곡차곡 모아놓고 있었다.

이 해 4월 25일,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추가로 남겼다.

“D회사에 옛 경리팀장 곧 경주 내려와서.....아마도.....누구 떨고 있을 듯...이 사실 알면.....BK의 진실 미국에 다니면서 법원에도 다니신 분.”

암호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지금은 해석이 가능하다.

위 글에서 BK는 BBK다. 언급한 옛 경리팀장은 채동영씨다.

실제 공개된 다스와 청와대 내부문서에 따르면 에이킨 검프 측이 작성한 ‘서울 출장 증언녹취(Deposition) 계획서’에 채씨의 이름이 언급된다. 김씨는 페이스북에 이 글들을 남긴 후 약 9개월 뒤 현재 검찰 수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서자료들을 검찰에 제출한다.

다스 실소유주 MB 사건과 관련한 진행상황을 체크하다 보면 특이한 부분이 있다.

검찰에 출두한 ‘한때 측근들’이 수사에 ‘상당히 협조적’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이 수사를 잘해서? 그럴 수 있다. 꼼짝할 수도 없는 증거와 핵심 관계자들의 진술을 들이밀기 때문에? 역시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단지 그것만은 아니다.

■ “돈 있는 사람이 정치해야” 내가 틀렸다

“만약 그때 진보가 집권했다면 부정비리가 없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진보와의 결정적 차이점이 뭘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역사적 소명의식이랄까, 보수는 그런 것이 없었던 것 같다.”

MB가 대선에 나설 당시 캠프의 핵심 멤버였던 인사의 말이다.

그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MB가 사업가 출신이었던 것이 문제였는데, 당시는 그것을 장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출신이든 운동권 출신이든 어찌됐든 어떤 기획을 하면 공적인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MB같이 20~30년 사업한 사람들? 보자마자 나오는 말이 ‘어? 저거 돈 되겠네’다. 본능적으로 돈을 알아보는 사람이다. 국가가 하는 사업도 어떻게 하면 내 돈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당시는 MB를 지지했을까.

“그때 분위기가 그랬다. 정치는 돈이 있는 놈이 해야 한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을 했는데, 돈 없는 사람들이 집권하니 후원회니 뭐니 악성민원이 정권 차원의 비리가 되는 게 아니냐, MB는 자기 돈이 많은 사람인데 어디서 돈을 받겠느냐, 그게 국민들에게 먹힌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봤고.”

그러나 당시 자신의 판단은 틀렸다고 그는 이어 말했다.

“MB나 SD(이상득)나 자기 돈을 쓴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남이 만든 것에 편승해 이익을 채운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만약 집권했다면 이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정 회장은 그래도 자기 돈을 썼다. 만약에 힘든 사람이 있어서, 어디 가서 자기가 아는 비리를 불어버릴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자기 돈을 써서라도 막았다. 그런데 MB는 자기 돈을 써서 해준 것이 없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던 것도 맞는 것 같다. 자기 돈을 안 쓰고 또 해 먹어도 됐으니.”

하지만 그는 “MB의 전체 인생을 놓고 보면 결국 잘못이 드러나지 않았나”라고 덧붙였다.

“촛불집회가 아니었고, 박근혜가 5년 동안 집권하고 난 뒤 지금 대통령이 야당으로 집권했다면 이렇게까지 쉽게 불지 않았다. 누가 알았겠나.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너질지. 이건 하늘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냐.”

이 인사는 “차라리 전두환 전 대통령 주위 사람을 보면 군인 특유의 조폭적 의리정서라도 있는데, MB 주위엔 진정으로 그를 위해 뛰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했다. 정말 그럴까.

“솔직히 다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5년 내내 내 분야만 하기도 벅찼다.”

지난 1월 17일 MB 기자회견에 배석했던 MB정부 청와대 수석의 말이다. ‘혼자 서게 되면 너무 적적할 것 같다’는 MB 대치동 집무실 쪽 연락을 받고 갔다고 했다. 그래도 “자신은 인간적으로 끝까지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에게 물었다. ‘순장조’가 될 것이냐고.

“우리는 순장조라든가 완주조 같은 말을 쓰지 않는다. 주군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싫어한다. 대통령이셨지 왕은 아니지 않은가.”

과연 이 측근은 평창올림픽 이후 예정된 MB포토라인 자리에도 나타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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