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변호사가 ‘을’과 보낸 100일 “법대로 하잔 말도 차마 안 나오더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윤지영 변호사의 ‘직장갑질119’ 100일 기록

폭언·폭행·성희롱·임금체불·과로…불이익 오래될수록

입증 어려운 ‘갑질’ 많은 현실, 법과 먼 현실의 맨얼굴


한겨레

지난해 12월7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커피숍에 직장 ‘갑질’ 피해자 2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종이봉투로 만든 가면을 쓰고 각자의 경험을 공유했다. 직장갑질119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월8일, 노무사·변호사·노동전문가 등 241명으로 구성된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가 출범한 지 100일을 맞았습니다. 석달 동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전자우편을 통해 밤낮없이 쏟아진 제보는 5400여건에 달하는데요. ‘직장갑질119’ 법률 스태프 가운데 한 명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가 제보자들을 직접 만나 들었던 직장인들의 참혹한 사연을 전해왔습니다.

‘직장갑질119’는 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전자우편을 통해 상담을 한다. 직장에서 갑질을 당하는 사람들이 오픈카톡방에 글을 남기거나 전자우편을 보내면 노무사·변호사·노동활동가로 구성된 스태프가 답장을 하는 방식이다. 이왕이면 나는 제보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그러면 폭언·폭행·성희롱·임금체불·과로와 같은 단 몇 글자가 그들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들과 그 가족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좀더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직장 내 성희롱 때문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한번은 딱 두 문장만 적힌 전자우편을 받았다. 이른 아침 카페에서 제보자를 기다렸다. 밝고 활기찬 모습인 ㄱ에게서 ‘직장 내 성희롱’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대화가 시작되자 ㄱ은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4년 전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여성 직원이 더 많은 그곳에서도 팀장 이상의 관리자는 남성 몫이었다. 4년 전 회식 도중 팀장은 ㄱ을 따로 불러냈고, ㄱ은 방어할 새도 없이 성추행을 당했다. 4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ㄱ은 아주 자세하게 그 상황을 묘사했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을 테니까. 마침 팀장의 성추행을 동료 몇 명이 목격을 했다. 그 덕분에 ㄱ은 피해 사실을 임원에게 보고하고 조치를 요청할 수 있었다. 팀장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자진 퇴사했다. 여기까지는 해피엔딩이다.



노골적으로 싫은 티에 인사 불이익까지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새로 들어온 팀장은 노골적으로 ㄱ에게 싫은 티를 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새 팀장과 전 팀장이 서로 친한 사이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때부터 ㄱ은 승진에서 거듭 누락되었고 좋지 않은 보직으로 밀려났다. 연차에 따라 자동으로 승진이 이루어지는 조직이었지만 ㄱ은 예외였다. 그럴수록 ㄱ은 노력하면 달라질 것이라며 다짐했단다. 그러나 ㄱ에겐 매번 이해하기 어려운 평점이 부여됐다. 가해자를 쫓아낸 ㄱ을 보이지 않게 괴롭히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ㄱ은 세 아이의 엄마였다. 성희롱 피해 사실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가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다. 남편은 ㄱ을 나무랐다. 얼마나 처신을 잘못했으면 그런 일이 생기냐면서. 혼자서 아이 셋을 키우는 ㄱ은 최근 아주 먼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다닐 수 없는 곳으로 말이다.

ㄱ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화가 났다. 직장 내 성희롱의 패턴은 언제나 똑같다. 피해 사실을 말하는 그 순간, 피해자는 조직에서 찍히고 불이익을 받는다.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게, 성격이 까칠하다는 게, 애사심이 부족하고 이기적이라는 게 불이익의 이유다. 이런 핑계는 인사상 불이익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인사상 불이익이 확인되면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인사상 불이익이 보복조치인지 입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ㄱ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불이익을 입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법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법대로 하자’는 말을 차마 못했다. 법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나는 ‘정말 나쁜 상사들과 조직’이라며 ㄱ의 말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함께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시답지 않은 내 말에 ㄱ은 일순간 눈물을 쏟아냈다. ㄱ은 외로웠다고,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작은 공감마저 ㄱ에게는 너무나 간절했다.

ㄱ은 일순간 눈물을 쏟아냈다
외로웠다고, 자기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이가 없었다고 했다


ㄴ은 물었다. 자기가 잘못한 거냐고
당연히 ㄴ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근로감독관은 ㄷ을 귀찮아했다
ㄷ은 분노했다. 정당한 분노였다


ㄹ은 문자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퇴직금이라도 달라고 했으나, 업체는
‘당신은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웃음으로 시작했다가 눈물로 끝낸 사연이 하나 더 있다. ㄴ이 보낸 메일에 담긴 내용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상식적이었다. ㄴ이 내부 고발자라고 오해한 상사는 그를 괴롭혔다. “씨×년”, “미친년”, “돼지 같은 년” 하루에도 몇 번씩 상사로부터 욕을 들어야 했다. 상사는 직원들에게 ㄴ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했다. 상사의 편을 들던 다른 직원들도 ㄴ을 따돌렸다. 회식에도 초대되지 못했다. ㄴ은 매장에서 물건을 가장 많이 팔았지만 상사는 실적을 가로챘다. 그래서 ㄴ에게는 성과급이 지급되지 않았다. ㄴ은 환청이 들린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데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전자우편을 읽고 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자우편을 보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씩씩한 목소리였다. 한 시간 가까이 ㄴ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뒤, 지금 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안내했다. 그러자 ㄴ이 내게 물었다. 자기가 잘못한 거냐고. 의외의 질문이었다. 당연히 ㄴ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상사와 그에 동조한 사람들의 잘못이었다. 그런데도 ㄴ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당신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단호하게 답을 했다. 그러자 ㄴ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자기 잘못 없는 것 맞냐고 내게 되물었다. 자기 자신을 탓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말이 안 되는 폭언도 계속 듣다 보면 말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상사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 것은 직장에서는 불문율이다. 직장인들은 부당한 상황으로부터 떠나거나 못난 자신을 탓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 ㄴ은 후자를 택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내 말에 지금까지 참아왔던 고통과 설움이 폭발했다. ㄴ의 대성통곡을 전화기로 들으며 나 역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ㄴ은 잘 대응했다. ㄴ을 안쓰럽게 여긴 동료 몇 명의 진술서를 확보했고, 상사의 폭언도 녹음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두고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서도 받았다. ㄴ은 이를 토대로 상사 및 가담자 징계, 정신적 손해에 대한 적절한 조치 등을 요구했다. 다행히 회사는 ㄴ의 요청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일 시켜 놓고 ‘근로자’ 아니라며 발뺌

직장갑질119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에는 ㄴ처럼 스스로 나설 때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 중에 ㄷ이 있다. ㄷ은 지난해 여름 이름을 익히 들어봄직한 호텔에 입사했다. 그런데 제때 월급을 받지 못했다. 밀린 월급을 사정해서 겨우 받아냈는데 다음달 월급이 또 밀렸다. ㄷ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깟 한달치 월급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빠듯한 살림에 한달이라도 월급이 밀리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 ㄷ은 고용노동부를 찾아갔다. 근로감독관은 시큰둥한 태도로 진정서를 내고 가라고 했다. 직원 수십 명의 밥줄이 달린 중요한 사안이라고 애원했으나 근로감독관은 ㄷ을 귀찮아했다. ㄷ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봄부터 체불 임금 진정을 한 직원은 60명이 넘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근로감독관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심지어 한 진정인에게 “왜 한꺼번에 다 같이 진정을 하지 않고 흩어져서 진정을 하냐”고 짜증을 내기도 했단다. 피해자가 넘쳐나건만 반년 넘도록 근로감독 한번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를 믿지 못한 ㄷ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회장실을 찾아가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고, 직장갑질119에 제보했다.

한겨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윤지영 변호사와 한림대 성심병원의 갑질 문제 제보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화면. 윤지영 변호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ㄷ을 만났다. ㄷ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토로했다. 특히 근로감독관의 행태에 무척 분노했다. 정당한 분노였다. 일을 했는데도 월급을 주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에게는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없었다. 그저 처리해야 할 사건이 하나 더 늘어나는 사실에 신경 쓰였을 것이다. ㄷ은 다른 직원들을 걱정했다. 호텔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회장은 호텔 수익을 다른 곳에 투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ㄷ은 몇 가지 증거를 보여줬다. 확실히 이상했다. ㄷ이 준 정보를 가지고 고용노동부에 항의했다. 뒤늦게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에 나섰지만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 신청을 했다고 한다.

고용노동부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보자와 함께 근로감독관 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ㄹ은 유명 홈쇼핑업체의 상담사였다. 상담사의 절대다수가 여성이었다. 업체는 일·가정 양립을 강조하며 상담사들의 재택근무를 실시했고,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직장이라며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ㄹ에게는 한달에 1400통의 상담이 의무적으로 할당됐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생계가 불가능했다. 한달에 2100통의 통화를 해도 월급은 12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최대치인 3360통을 통화해내야 가까스로 200만원이 넘었다. 지난해 겨울 ㄹ은 불만신고 3건이 접수되었다는 이유로 문자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ㄹ은 인사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퇴직금이라도 달라고 했으나 업체는 ‘당신은 근로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면 퇴직금도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ㄹ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근무 장소가 집이라는 것을 빼고는 여느 직장과 다름없었다.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업체의 지휘와 감독을 받아 일을 했으며, 업무에 필요한 모든 장비는 업체가 제공했다. 상담사들의 통화내역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업체였다. ㄹ이 근로자가 아니라면 다른 상담사들도 근로자일 리가 없었다. 다른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고 직장갑질119 문을 두드렸다.

한 카페에서 ㄹ을 만났다. ㄹ이 작성했다는 진정서와 준비한 자료들은 완벽했다. 노동사건을 다루지 않는 일반 변호사들보다도 더 많이 법리를 알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혼자 공부하고 준비했단다. ㄹ이 진정한 사건은 ㄹ만의 사건이 아니었다. 같은 형태로 일하는 수백명의 이해가 걸린 사건이었다. 마침 고용노동부 조사가 다음주에 있다고 했다.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해 나도 조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조사는 실망스러웠다. 근로감독관은 형식적으로만 질문을 던졌다. 제대로 기록을 검토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면서 ㄹ에게는 업체와 합의할 의향은 없는지 물었다. 그 순간 나는 이 사건의 의미를 근로감독관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내 말을 잘랐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진정 사건이니 진정 사건만 처리하면 된다고 했다. 기계적으로 사업주를 조사하고, 대질 신문을 하고 한참 지나 결정을 내릴 태세였다. 그 전에 합의를 해서 ㄹ이 진정을 취하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한겨레

지난 1월29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직장갑질119’ 주최로 열린 ‘최저임금 위반 제보 놀부회사 명단 공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최저임금 ‘꼼수’를 사용했다고 발표한 기업의 얼굴을 밥풀 묻은 주걱으로 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갑질과 범죄에 뒷짐 진 고용노동부

능력 있는 법률가는 당사자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는 때도 있다. 하지만 기계적인 판단과 방관하는 태도는 노동자를 두번 죽이는 일이다. 노사관계는 절대 평등할 수 없다. 사용자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밥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법은 노동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위해 법을 만들고 집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1950년대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날로 진화하는 다양한 갑질을 규율하지 못한다. 상사의 폭언은 사람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비참하게 만들지만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다. 그나마 법으로 규율되는 것들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노동법 위반행위는 범죄다. 여느 범죄처럼 노동자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노동법 위반행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결국 문제 해결은 노동자의 몫이다. 주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최종 선택은 갑질의 피해자, 바로 노동자가 해야 한다. 직장갑질119도, 변호사도 대신할 수 없다. 그저 나는 혼자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그들의 편이 되고 싶다. 용기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고 싶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외로워 말아요. 함께 뭉치고 싸워요.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