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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데스크칼럼] GM은 결국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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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GM(제너럴모터스)이 군산공장을 5월까지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으면 남은 부평공장과 창원공장도 문 닫고 떠나겠다는 뜻도 밝혔다. 요청한 금액이 1조원에 육박한다.

기업이 위기를 맞아 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할 때에는 경영을 잘못한 데 대한 반성부터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GM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협상시한을 2월말로 못박고 그때까지 한국 정부가 자금지원 결정을 하지 않으면 전면 철수할 수 있다는 말은 협박에 가까웠다. 발표 시기도 설 명절을 앞두고, 평창올림픽 축제가 열리고 있는 기간이어서 충격이 컸다.

GM은 고용창출 효과가 큰 자동차 회사의 특성을 역이용해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한국GM과 관련된 인원은 회사가 직접 고용한 1만6000명에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30만명에 이른다. GM이 갑자기 한국에서 철수하면 대량실업이 발생한다. 6월 지방선거와 남북정상회담 등 현 정권이 신경쓰고 공들이는 정치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정부가 자금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엿보인다.

GM의 지원 요청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한국GM의 경영이 어렵다는 위험신호를 여러 차례 보냈음에도 한국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한 결과다” “회사가 적자임에도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가동을 멈춘 날에도 평균임금의 80%를 받아가는 노조가 문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한국GM 경영진과 노조가 잘못했는데 국민 혈세를 왜 지원해야 하는가” “정부가 경영에 실패한 한국GM을 지원하는 것은 열심히 노력한 현대·기아, 르노삼성, 쌍용차에 대한 역차별이다"는 견해도 있다.

정부는 실사부터 해야 한다며 시간벌기에 나섰지만, 결국 크든 작든 지원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GM의 철수로 대량실업이 발생하면 경제에 대규모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큰 한국으로선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한국GM을 지원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세탁기, 철강에 이어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규제를 더 확대할 수 있다.

정부가 한국GM을 지원하면 회생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GM 부실의 일차적 원인이 정부의 지원 부족이나 강성 노조가 아니라 경영실패에 있기 때문이다.

GM이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고유가 시기여서 연비가 우수한 소형차를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가 필요했다. 이후 셰일가스 영향으로 유가가 하락하면서 소형차 판매가 줄고 대형 고급차 소비가 늘었다. 하지만 GM은 한국공장에 고급 세단과 대형 SUV 같은 고수익 차종을 투입하지 않았다. 수익성이 낮고 글로벌 경쟁은 심한 소형차를 계속 배정해 생산하도록 했다. 그 결과 한국GM은 지난 3년간 2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내고 자본잠식에 빠졌다.

GM의 글로벌 전략이 바뀐 것도 변수다. 2014년 취임한 메리 바라 GM 회장은 “적자를 내거나 사업 차질을 빚는 사업장에선 빨리 떠나라”면서 외형보다 수익성 중심으로 전략을 바꿨다. 수익성 높은 미국과 중국에 집중하는 대신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 유럽, 인도, 호주에선 잇따라 철수했다.

전문가들은 GM이 지난해 호주공장을 폐쇄한 것처럼 한국GM도 문 닫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GM은 호주공장 유지를 조건으로 호주 정부로부터 12년간 1조7000억원을 지원받았으나 호주 정부가 지원을 중단하자 곧바로 공장문을 닫고 떠났다. 한국 정부가 1조원을 지원한다 해도 현재 한국GM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는 3~4년 안에 지원금이 바닥난다. GM은 다시 지원을 요청할 것이고, 정부가 추가지원을 중단하면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정부는 대량실업을 막기 위해 자금지원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GM이 철수할 것에 대비한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어 군산공장의 경우 자동차 위탁생산 전문업체로 바꿔 현대차 등 다른 회사 차종을 생산하는 것을 고려해 볼만하다.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같은 첨단 자동차 공장으로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당부하건대 정부·여당은 ‘지방선거에 악재가 되지 않도록 빨리 끝내야 한다’는 식의 정치적 조급증에서 벗어나 미래가 있는 해결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김종호 산업부장(tell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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