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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올림픽 환호 속에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산, 가리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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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이 끝나가는 마당이니 이제 가리왕산 얘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산인 가리왕산(해발고도 1,561m)은 강원도 평창군과 정선군에 걸터앉아 태백산맥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산입니다.

왕에게 바칠 산삼을 채취하기 위해 조선 세종 때부터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켰고, 그 덕에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시림의 형태를 유지해 온 곳입니다. 실제로 영조 때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정선강릉부삼산봉표(旌善江陵府蔘山封票)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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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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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이 아니더라도 보호해야 할 산림자원이 널렸기에 산림청에서도 2008년 10월 23일부터 가리왕산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민간인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추석 이후부터는 더 이상 보호구역이 아니게 됐습니다. 평창올림픽의 알파인스키 활강 경기장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출발점과 결승점의 표고차가 800m 이상 되고, 평균 경사도가 17도 이상이며, 슬로프 연결 길이가 3킬로미터 이상이어야 한다는 국제스키연맹(FIS) 규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은 평창 주변에서 가리왕산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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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에 건설된 평창올림픽 알파인 스키 활강코스 전경. 사진=평창올림픽 조직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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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평창 알펜시아에서 30분 내 거리의 경기장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무리하게 내세운 결과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가리왕산이 어떤 곳입니까? 법으로 정해서 출입을 금지하고 보호하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그 법을 이길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어 결국 훼손의 길을 택했습니다. 인류의 대제전을 위한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여러 환경 단체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평창 올림픽 기간 동안에도 비판과 우려 섞인 글이 계속해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글에 담긴 식물에 관한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이 엿보입니다. 특히 주목과 관련된 내용은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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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위의 주목 군락지(발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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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가리왕산은 어린 개체부터 수백 년 된 거목까지 모든 세대별 주목이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어 풍혈 지역의 가치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얼토당토않은 말입니다. 주목과 풍혈은 별개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목이 꼭 풍혈지에서 사는 나무도 아니고, 풍혈의 특성 때문에 가리왕산에서 모든 세대별 주목이 잘 자라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남한 내륙에서는 어린 주목이 자연 발아하지 않는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면서 ‘어린 주목부터 늙은 주목까지 어울려 살고 있는 가리왕산 생태계가 파괴되면 우리나라 주목은 멸종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펼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종의 멸종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언급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잘못된 글은 또 다른 잘못된 글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가리왕산이 주목의 사실상 유일한 자생지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라는 식의 글이 바로 그런 유형입니다. 주목은 가리왕산에서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여러 산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가리왕산이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하고 육지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주목의 어린 나무가 활발하게 자라는 숲이기도 하다’는 글도 사실이 아닙니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뭘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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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껍질이 인상적인 사스래나무(발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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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이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왕사스레나무의 최대 자생지다’라는 소개도 완전히 엉터리입니다. 왕사스레나무라는 나무는 있지도 않은 나무입니다. 아마 커다란 ‘사스래나무’를 말하는 것일 겁니다.

사스래나무는 경남과 충청도 정도를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가리왕산이 사스래나무의 최대 자생지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비판하는 글일수록 신중해야 할 텐데 막 써도 너무 막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잘못된 내용이 비판적인 글에 실리면 자칫 여론을 호도할 수 있기에 꼭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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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은 저처럼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도 들어가 보기 어려운 곳이었기에 식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전에 평창국유림관리소에서 진행했던 ‘우리꽃보기’ 행사 때 중왕산 일원을 탐방한 게 전부입니다.

그때 봄에 본 식물만으로도 그곳의 식생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갈퀴현호색, 자주갈퀴현호색, 금강제비꽃, 들바람꽃, 태백바람꽃, 얼레지, 흰얼레지, 홀아비바람꽃, 한계령풀, 복수초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자라는 식생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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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의 우려 속에 결국 가리왕산에는 바리캉으로 밀어버린 듯한 경기장이 만들어졌습니다. 경기장 건설을 허락한 조건은 올림픽이 끝난 후 가리왕산의 산림을 복원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번 훼손된 산림을 원래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500년 넘게 사람의 출입을 통제해 만들어진 숲인데 어떻게 그것이 단시간 내에 복원될 수 있겠습니까? 산림 복원이 뭐 마당에 잔디 바꿔 심는 일 같은 것인가요? 실제로 이뤄지게 한다면 거기에 드는 비용과 시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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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복원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 실행 여부가 더욱 의심받습니다. 1996년 동계유니버시아드경기대회로 훼손된 덕유산국립공원(무주리조트), 1999년 동계아시안게임으로 마구 파헤쳐진 발왕산산림보호구역(용평리조트)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익 차원에서 단 며칠 동안의 잔치를 위해 500년 넘게 간직한 숲을 수천억 원을 들여 파괴해서 1회용이나 다름없는 경기장을 건설했는데, 거의 불가능한 복원 약속이 전제로 깔렸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가리왕산을 향해 외쳐본들 이제는 메아리도 만들어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친 숲은 언젠가 그만큼의 어두운 그림자를 우리에게 드리울 것입니다.

축구장 110개만큼의 숲이 사라진 지금, 복원에 대한 기대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대규모로 환경을 파괴하는 국제행사가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개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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