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사과의 기술]"잘못했습니다" 해명or사과…대중은 안다

댓글 46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데일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데일리 스타in 김은구·박미애 기자]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한국 대표 김보름 선수가 백철기 감독과 함께 지난 20일 가진 기자회견. 김보름 선수는 경기에서 함께 달려야 하는 같은 팀 노선영 선수가 뒤로 처졌음에도 질주를 했고 경기 결과에 대해 노선영 선수를 탓하는 듯한 발언을 해 비난을 샀다. 이로 인해 기자회견을 마련했고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선두에서 뒤의 선수를 챙기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 크다”고 사과했지만 대중의 용서를 받지는 못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노선영 선수도 기자회견에 함께 할 예정이었지만 감기몸살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혔는데 노선영 선수는 당일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갖고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했기 때문이다. 김보름의 눈물은 대중에게 ‘악어의 눈물’로 받아들여졌다.

제자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배우 조민기와 소속사의 대응은 진정성도 문제였지만 타이밍도 나빴다. 조민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지 하루만인 21일 소속사는 사과를 담은 공식입장을 발표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의혹이 공론화되기 시작하면서 먼저 내놓은 공식입장에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 없이 조민기를 옹호해서다. 잘못이 루머를 확산한 대중에게 있다는 듯 ‘엄중하고 단호한 대처’를 운운했다. 조민기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의혹과 관련해 “가슴으로 연기하라고 손으로 툭 친 걸 가슴을 만졌다고 진술한 애들이 있다. 노래방 끝난 다음에 ‘얘들아 수고했다’ 안아주고, 나는 격려였다”고도 말했다.

‘말로만’ 사과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물의의 당사자가 재빠른 사과로 용서받던 과거와 달라졌다. 대중은 더 분노하고 사태는 더 악화된다. 연극 연출가 이윤택에 이어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 선수도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 사과를 했지만 역효과만 났다.

강태규 대중문화 평론가는 “과거에는 몇명에 대한 입막음만으로 잘못을 덮는 게 가능했다지만 요즘은 SNS 등 피해자들이 언제든 자신들이 받은 피해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대중은 그들의 고백을 용기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이며 응원을 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 세력 등에 도취된 탓인지 세상의 그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을 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다. 사과는 특정 인물, 단체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들이 정리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시작점이 된다. 사과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누그러드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고 사과가 그 정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사과의 말들은 오히려 빚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표면적 이유는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다. 이윤택 연출가의 사과 기자회견장에서는 한 연극배우가 ‘사과는 당사자에게, 자수는 경찰에게’라는 피켓을 들었다. 현장에 있던 연극인들은 이윤택 연출가가 “성폭행은 아니었다”고 발언할 때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의 사과는 같은 연극인들에게도 올바른 사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미투(Me Too)운동이나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 사태가 ‘뜨거운 감자’인 이유가 갑의 횡포에 대한 을의 울분 때문이라고 봤다. 실제 몇몇 사안의 피해자들은 권력을 가진 가해자들에 의해서 묵인과 은폐 등의 2차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이윤택 연출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은 연극배우 이승비는 성추행 피해와 더불어 조직적인 은폐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윤택 연출가의 사건은 또 다른 연극 연출가 오태석에 대한 폭로로 이어지는 등 미투운동은 확산되고 있다. 여자 팀추월 사태도 갈등 중인 양측이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진위가 가려지지 않고 있으나 대중은 빙상연맹의 파벌 다툼에서 노선영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특히 최근의 성범죄는 권력에 의해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었고 관행이란 이름으로 제2, 제3의 피해자가 양산됐다”며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고 그런 문제를 발생시킨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상처받은 피해자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 교수도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힘 있는 자, 권력자에게 잘못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침묵해온 일들이 많지 않았냐”며 “알린다고 해도 받아들여지거나 고쳐지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 병폐가 만연된 상황에서 터져나온 대중의 분노다. 아무리 사과를 해도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고 그 문제를 발생시킨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할지가 나오지 않는다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포털 스타in -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