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프랑스 공직자들 "마크롱 집권 후 관료지배 심각해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르몽드에 익명 집단기고…"정당의 전통적 역할 퇴보…민주주의 약화 우려"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공무원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후 집권당의 정책기획 능력이 현저히 약화한 대신에 관료의 지배(테크노크라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 고위직 경험이 있는 국립행정학교(ENA) 출신들이 장·차관에 기용된 뒤 선출된 권력인 의회를 무력화해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익명의 고위공무원 일동이라고 칭한 이들은 22일(현지시간) 르몽드에 기고한 '고위 관료들이 진정한 집권당'이라는 글에서 마크롱 집권 후 관료집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 기능이 약해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 인선과 정책 마련을 행정부 고위직들이 도맡아 하는 것이 마크로니즘(마크롱주의)의 한 특징"이라면서 집권당의 역할이 거수기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행정부 비중이 전 정부들에 비해 전례 없이 커졌고 지난해 여름 노동유연화를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추진한 데서 이런 현상이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노동법 개정 추진방식과 노동계와의 협상이 전적으로 관료집단에 일임됐고, 집권당은 이 과정에서 정부가 들고온 방안을 승인하는 역할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공직자들은 "과거 정당들이 해왔던 기능이 사라져버렸다. 행정부 고위관료들과 정당 사이의 여과장치가 없다"면서 "이는 마크로니즘의 주요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나아가 "대선 전부터 마크롱의 공약들을 만든 것은 재무부, 금융권, 내각 비서실의 국립행정학교 출신 인사들이었다"면서 이들이 마크롱의 집권 후 각료로 발탁돼 정당의 기능을 현저히 약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각료들, 특히 엘리트 그랑제콜인 국립행정학교 출신들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몰려 관료집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무력화됐다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이들은 "행정과 정치를 혼동하는 데에서 위험이 발생한다"면서 "민(民)이 지배하는 민주주의가 테크노크라시, 즉 관(官)의 지배로 대체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프랑스 공무원들이 이런 글을 낸 것은 마크롱이 이끄는 내각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고, 이들이 굵직한 국정과제들을 충분한 협의 없이 성급히 밀어붙인다는 비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은 취임 후 노동시장 유연화, 대테러법 개정, 중등교육 개편 등 주요 국정과제들을 충분한 사회적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비판에 자주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LREM·전진하는 공화국)는 정부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었다.

LREM은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 1년여 전에 창당한 중도신당으로, 작년 6월 총선에서 공천자 절반을 정치 경험이 전무한 신인으로 채우는 정치실험 끝에 과반의석을 달성했다.

이 때문에 기업 출신의 초선의원이 많은 여당이 대통령의 어젠더를 최대한 신속히 처리하려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yongla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