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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TF현장] "용산참사 잊었나요"…재개발 현장에 남겨진 철거민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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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서울시 성북구 장위동 7구역에는 시세에 맞지 않는 보상금으로 어쩔 수 없이 강제철거 지역에 남은 4가구가 살고 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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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절기 강제집행·철거금지 명령 어기고 강제 철거해

[더팩트|장위동=변지영 기자] "아직 사람 살고 있는 거 보이지 않나요? 여기 2층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요."

지난 19일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장위동 재개발 현장. 장위 1구역에서는 레미콘과 덤프트럭 등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아직 철거가 되지 않은 구역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지만 곳곳에 깨진 유리들과 철골이 앙상히 드러난 건물 등 '유령도시' 같은 느낌이다. 특히 밤이 되면 무방비 상태다. 혹여나 생길 범죄에 대비해 골목에 배치한 순찰차 2대에서 비추는 불빛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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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 4구역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주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헐값인 보상금을 받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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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는 아직 4가구가 남아 있다. 이들은 모두 시세에 맞지 않는 보상금으로 어쩔 수 없이 강제철거 지역에 살고 있다.

장위 4구역에서 20여 년째 옷가게를 운영했던 강모(57·여) 씨는 이날 "답답한 마음에 조합원실을 찾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우리는 그야말로 개밥의 도토리다. 권리금을 수천만 원 내고 들어왔지만 건물주는 나가는 날까지 월세를 내라고 하고, 지난 1월 17일에는 조합 측에서도 한 달 전 월세를 내라는 통보서를 보냈다"면서 "울며 겨자먹기로 헐값인 보상금을 받고 나가야 하는지 버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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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장위 7구역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푯말이 붙어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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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로 90% 주민들이 지역을 떠났다. 40여 년간 장위동 주민의 세탁을 도맡았던 백조크리닝 항모 씨(61·여)는 "사람이 없으니 장사는 이미 접었다"고 말했다. 항 씨가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는 보상금 문제가 얽혀있다. 그는 "갑작스럽게 남편이 죽었는데 사업자 등록을 내 명의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다른 동종 세탁소 5개보다 1천만 원이나 덜 받았다"고 전했다. "이의신청을 조합 측에 낸 것이 벌써 6개월 전이지만 감감무소식"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정부 지원 없이 도로와 공원 조성에 필요한 기반시설 비용도 주민 몫이 됐고, 2008년 말 예상치 못한 미국발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 주민들 싸움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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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 7구역 주민인 윤미연(50대·여) 씨는 작년 12월 27일 50여 명의 용역 직원들이 집으로 몰려와 강제철거하려 했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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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 7구역 영업권자인 윤미연(50대·여) 씨는 "이곳에서 공장도 돌리고 살고 있는데, 영업권자에게는 '주거이전비'가 제공되지 않았다. 받은 재개발 보상금으로는 주변으로 이사갈 수도 없는 수준이라 내가 평생 일군 삶의 터전을 뺏기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작년 12월 27일 50여 명의 용역 직원들이 집으로 몰려와 강제철거하려 했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윤 씨는 "집에는 대학교 2학년인 딸과 둘 뿐이었다. 집 앞으로 용역직원들이 새까맣게 몰려와 있었다. 열쇠공을 불러 문을 따려 하자 딸이 말리고 밀치는 상황에서 이성을 잃고 옥상으로 올라갔다"면서 "'용산 참사가 괜히 일어난 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윤 씨와 같이 동절기 강제 철거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싸웠던 조한정(59) 씨 만났다. 조 씨는 과거 장위전통시장의 골목길 상가를 소유했지만 재개발로 약국, 정육점 등 가게를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남았다. 그의 건물 1층에는 '2층에 사람이 살고 있어요'라는 종이 팻말이 써 붙어 있었다.

집행관이 불시에 들이닥칠 수 있기 때문에 드나들 만한 곳은 모두 가구 등 집기류로 막았다. 그는 "남은 이들이 내쫓기지 않기 위해서 버티고 있다"고 했다. 조 씨 아내 이모 씨는 "평생 살았던 집을 헐값에 강제로 빼앗기게 됐다"면서 울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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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절기 강제철거에 대항하기 위해 세입자가 창문 입구를 판자로 막아둔 상태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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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 못한 조 씨는 지난해 11월 7일 시행된 강제집행에 불응하는 과정에서 자기 가슴에 칼을 꼽고 할복을 시도했다. 그는 "어차피 나가면 죽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내 이 씨는 동절기 과잉진압을 지적했다. 집행관이 노무자들과 함께 용역 요원들을 데리고 집 앞을 둘러쌌다. 현관문을 망치로 부수는 소리가 들렸고, 갑자기 부엌 창문이 열렸다. 용역 직원이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왔다. 이 씨는 "집행관이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한 사이 조합장이 '줄 돈 다 줬다. 떼쓰지 말라'고 모욕했다. 이를 들은 남편이 감정이 상하면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3개의 잠금장치를 곧바로 잠궜다. 허리를 완전히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만 남겨둔 채 모든 문은 막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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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철거에 대항하기 위해 조 씨의 대문에는 3개의 잠금장치가 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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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를 막기위해 놓은 자재들로 조 씨의 현관 입구가 어수선하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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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씨의 집 현관문은 허리를 90도로 숙여야 들어갈 수 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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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수시로 CCTV를 확인했다. 강제철거가 언제 이뤄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늦은 저녁까지 수상한 사람들이 집 주위를 돌았다는 주민들의 제보 전화도 틈틈이 왔다. 오후 8시가 되자 조 씨는 지팡이를 든 다른 한 손에 랜턴을 들고, 더팩트 <취재진>이 나가는 계단을 비췄다. 성북구 장위 7구역에 살기 위해 남은 이들이 터득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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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철거에 대항하기 위해 조 씨의 집은 허리를 완전히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나머지 공간은 가구나 집기류로 막혀 있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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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들은 이 유령도시에 남게된 걸까.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입을 모아 턱없이 부족한 감정가를 이유로 꼽았다. 주민들은 감정평가 결과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도 "솔직히 감정평가금액이 현 시세의 90%는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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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철거한 한 가정집에 철거건물이니 접근을 금지한다는 경고장이 붙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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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4구역 조합 측은 "보상금에 대한 문제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3곳의 감정 평가사들이 보상금을 평가했다는 이유에서다. 조합 측은 "차질 없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사업이 늦어질 때마다 한 달에만 이자가 어마어마하다. 작년 8월 29일부터 12월 30일 기간이 자진 이주 기간이었다. 이제는 동절기도 곧 끝나 강제 철거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겨울에는 명도집행을 하지 말라는 서울시 권고에도 불구에도 명도집행을 집행한 이유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사업이 지체되면 그 분담금을 조합원이 나눠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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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 7구역 주민대책위원회 건물 1층에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문구가 걸려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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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가에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한편에서는 감정 평가를 재실시하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서울시 측은 '이미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감정평가업자를 복수로 선정해 평가한 만큼 공정성 시비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종규 서울시 재생협력과 팀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법대로 진행했다. 실태조사 결과는 여러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해 나온 평균치로 정한 공식 결과로 공정성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임혜원 성북구 주거정비과 주무관 역시 "4구역은 작년 2월 이미 구청에서 영업권자에 대한 관리처분 인가가 나왔다. 인가에 따라서, 토지보상법에 의거해 감정평가사들이 협의보상을 진행한다. 영업권자의 경우, 영업 동종 업계 기준이라거나 사용하는 기구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합에서 협의 보상을 할 때 감정평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권자들이 반발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인식하고 있다. 임 주무관은 "상가 주택 등 영업권자로 분리되지만 가게를 운영하며 그 곳에 살던 분들은 사실상 영업권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영업보상금'을 제외한 '주거이전비'는 따로 받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것"이라며 "작년 8월 30일부터 토지보상법에 의해 일정 부분 해당되는 세입자분들은 '주거이전비', '동산이전비'를 받아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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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측은 감정평가업자를 복수로 선정해 평가한 만큼 감정금액의 공정성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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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 1구역에서는 주택재개발 공사가 진행중이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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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최근 관리처분계획 인가 타당성 검증 의무화를 실시했다. 이처럼 과도한 강제집행과 시세에 맞지 않는 감정평가금액 산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재건축 검증 규제 강화와 올해부터 다시 적용되는 초과이익환수제로 재건축 사업의 과열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11월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비사업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행위의 중심에 건설사가 있다고 보고 강력한 규제책들을 배치한 도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 의원이 지난해 11월 14일 국토부와 협의를 통해 대표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안은 정비구역에서 지역주택조합원 모집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징역 1년 이하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원욱 의원실 관계자는 "집행관이 거둔 강제집행 실적에 따라서 소득이 결정되기에 무리한 집행이 이뤄지기도 한다"면서 "이는 용역업체가 사실상 건설사의 묵인을 통해 불법행위를 한다고 보고 건설사에 책임을 묻는 명시조항을 넣어 법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hinomad@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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