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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빌리 그레이엄 목사 집엔 백악관 직통 전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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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목사가 기억하는 그레이엄

100세로 타계 21일 밤 전화 받아

3년 전 미국 자택서 마지막 만남

60년여간 185개국 2억명에 설교

73년 여의도에선 110만 명 모여

미국 역대 대통령의 영적인 스승

두 번 방북, 김일성에 성경 선물도

중앙일보

1973년 여의도 집회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를 김장환 목사가 통역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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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루스는 평양에서 공부했다. 거기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북한에서 가장 반겼던 미국 사람이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었다.”

22일 오전 8시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에서 ‘새벽 성경공부 강연’을 막 마친 김장환 목사와 마주 앉았다. 그는 전날 오후 10시에 미국에서 온 전화를 받고 ‘빌리 그레이엄 타계’소식을 알았다. 새벽에는 독일에 있는 자신의 막내 손녀에게서 “괜찮으시냐?”는 안부 전화까지 받았다. 그만큼 김 목사의 상실감은 크다. 김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는 두 차례(1992, 94년) 방북했다”며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했는지부터 찬찬히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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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목사는 ’여의도 집회에서 한 통역은 그야말로 성령의 역사였다“고 회고했다. [사진 극동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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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부인 루스가 왜 평양에서 공부를 했나.



A : “아버지가 의사였다. 루스의 부모는 중국의 오지에서 활동한 선교사였다. 그곳에는 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딸을 외국인 학교가 있는 평양에 혼자 보냈다. 식민지 시절이었다. 일제가 선교사를 모두 쫓아낼 때 루스 부인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만큼 한국을 잘 안다. 제가 노스캐롤라이나의 그레이엄 목사 자택을 방문할 때면 식사 테이블에 김과 나물을 내놓았다.”




Q : 방북 당시 그레이엄 목사가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A : “그레이엄 목사가 그 얘기도 제게 했다. 김일성을 처음 만났을 때 성경책을 건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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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김일성 주석.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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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김일성의 반응은.



A : “이렇게 말했다더라. ‘나도 어렸을 때 교회 주일학교를 다녔다.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일성의 외삼촌이 목사였다. 어머니의 이름도 성경에 등장하는 용어인 ‘강반석’이었다. 한번은 김일성에게서 ‘함께 낚시하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며 어떡하면 좋을지 내게 자문을 구했다. 나는 제안을 수락하고 대신 북한의 젊은이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달라는 요청을 하라고 했다. 결국 낚시는 무산됐지만, 그레이엄 목사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설교를 했다. 당시 그레이엄 목사가 내게 설교 통역을 부탁했는데 북한 측에서 반대했다. 결국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선교사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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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만난 그레이엄 목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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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방북 이후 김일성은 북핵 시설에 대한 국제 사찰을 허용했다. 또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핵 협상을 위해 방북하는 물꼬를 텄다는 평가도 받았다.



Q :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때도 가교 역할을 하지 않았나.



A :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미국 대선 때 트럼프 후보 지지 연설을 했다. 실제 선거에 미친 영향력도 컸다. 트럼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 잘 안다. 그가 트럼프 방한 직전 한국에 와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이모저모’를 알려주며 가교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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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빌리 그레이엄 목사.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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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1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 100세. 21일 오전 7시45분(미국시간) 지병으로 소천했다. 휘튼 대학을 졸업하고 39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50년 빌리 그레이엄 복음전도협회를 창설해 대형 전도집회를 열었다. 60여년간 185개국에서 2억1000만 명에게 복음을 설파했다. 그의 생애를 통틀어 73년 서울 여의도 집회의 규모가 가장 컸다.



Q :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언제였나.



A : “3년 전이었다. 제가 미국 자택을 찾아갔다. 주위에서 ‘빌리 김(김장환 목사의 영어 이름)이 왔다’고 하니까 ‘거짓말하지 마라’고 하셨다. 거동이 불편해서 안 보이니까. 그래서 제가 ‘저 여기 왔습니다’하니까 웃으면서 ‘서울에 다시 한번 가서 전도 대회를 하자’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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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환담을 나누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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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목사 부인의 장례식 때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참석했다. 김 목사는 “이번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식에는 전·현직 대통령이 모두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목사는 그레이엄 목사의 이번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는 다섯 사람 중 유일한 외국인이다. 6년 전에 이미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 6년간 외부 강연이나 설교 요청을 받을 때마다 ‘만약’이란 단서를 달았다. ‘만약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타계하시면 일정을 취소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타계 연락을 받고 닷새 안에 미국에 도착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Q :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오랜 인연이 있었다. 그레이엄 목사를 한 인간으로서 평한다면.



A :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는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다. 트루먼 대통령부터 오바마 대통령까지,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찾아와 기도를 받았다. 역대 대통령들의 영적인 멘토였다. 심지어 닉슨 대통령 시절에는 그레이엄 목사의 자택에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과 연결되는 직통 전화가 있었다. 그냥 수화기만 들면 대통령과 바로 연결이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조언을 다 해줬다. 그렇게 큰 영향력을 가지고도 그처럼 겸손한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다.”




Q : 그레이엄 목사와 대화나 설교 중 가장 가슴에 남는 한 구절은.



A : “1973년 110만 명이 모였던 여의도광장 집회 때 설교의 마지막 멘트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한다. 서로 사랑하라.(God loves you, love one another)’” 김 목사는 장례식 참석차 23일 출국할 예정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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