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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성추행 논란'에 최영미 시인 책 판매 늘고, 고은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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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혐오' 분위기에도 전체 문학서 판매량 변동 미미

뉴스1

최영미 시인(왼쪽)과 고은 시인/뉴스1DB©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1990년대 문단 술자리에서 한 원로 시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 최영미 시인의 폭로가 일파만파 퍼져나간 후, 성추행 당사자로 지목된 고은 시인의 책 판매량은 줄어든 반면 최영미 시인의 책 판매는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교보문고와 예스24가 고은 시인 성추행 논란이 본격화한 지난 7일 전후 각 일주일씩(1월31일~2월6일, 2월7~13일) 총 2주간 두 시인의 대표작 판매량을 비교한 결과,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의 경우 고은 시인의 책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순간의 꽃' '어느날' '초혼'의 판매량을 합친 수는 210권에서 60권으로 71%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영미 시인의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 '돼지들에게'와 에세이 '시를 읽는 오후'는 총 판매량이 20권에서 120권으로 6배 늘어났다.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변화폭만을 밝힌 예스24도 마찬가지였다. 논란이 불거진 지난 7일의 일주일 전후를 비교해보니 '순간의 꽃'은 판매량이 40.5% 줄었고, '어느 날'은 70.7% 감소했다. 이와 달리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5배 가까이, '시를 읽는 오후'는 9배가량 판매량이 증가했다.

최영미 시인은 잡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청탁을 받고 문단 뒤풀이 등에서 성추행을 저지르는 한 시인을 묘사한 시 ‘괴물’을 발표했다. 이 시가 누리소통망(SNS)상으로 뒤늦게 주목받으면서 최 시인은 지난 6일과 7일 방송에 잇달아 출연해 어두운 문단 문화를 폭로했다. 최 시인은 'En선생'이라고 거론된 시 속 시인이 누군지 공개하지 않았으나 일반인들의 관심이 뜨거워졌고, 누리꾼과 문단에선 고은 시인을 En선생으로 지목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던 시인이 성추행 논란에 휩싸이자 독자들과 일부 누리꾼들은 문단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영미 시인이 인터뷰에서 일부 문인들이 권력으로 군림하며 자신들의 성희롱을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 시인들을 문단에서 배제해왔다는 말을 해서다.

하지만 일부 문인을 둘러싼 논란이나 문단에 대한 실망감이 이 기간 전체 책판매나 문학책 판매량 감소까지 몰고 오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가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일주일간의 책 전체 판매량과 문학 분야 책 판매량을 전주 일주일간(1월31일~2월6일)과 전년도 동기와 비교해본 결과, 전체 문학 도서 판매량은 전주 대비 약 3% 가량 늘었고,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0.7%가량만 줄었다.

책전체 판매량은 전주에 비해 0.8% 가량 감소했고,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0.4% 가량이 감소했지만 차이가 미미해서 고은 시인 논란이 도서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예스24의 경우 국내문학서의 판매량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고은 논란 이후 일주일간 국내 시, 소설, 에세이 등의 국내문학책 판매량은 이전 한 주와 비교해 15.2% 감소했다. 예스24는 그러나 "문학 분야 내 시집 판매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라서 고은 시인 사태의 영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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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뉴스1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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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출판사들은 그러나 2월 들어서 서점의 책 주문량이 1월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호소했다. 인기있는 신작을 내서 판매량이 고공행진하던 출판사 및 일부 종합출판사들은 "2월에 평창동계올림픽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 낙폭이 커서 문단을 둘러싼 논란이 악영향을 끼친 것 아닌가 한다"고 우려했다.

출판평론가 김성신은 이런 견해에 대해 "책 판매량이나 주문량은 뚜렷한 외부 요인 없이도 원래 오르내리는 폭이 크다"면서 "고은 시인 사태가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섣부르다"고 밝혔다. 단기간 집계한 판매량을 통해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출판 불황과 신경숙 표절사태 이후 문학분야 책 판매량이 작아져 작은 요인에도 출렁이게 됐고, 출판사에 대한 서점의 주문량 감소는 설 연휴를 대비해 서점들이 미리 1월부터 재고를 확보하려해서 상대적으로 2월의 주문량이 적어졌을 수도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출판 전문가들은 기성 문단에 대한 독자들의 실망감은 확실히 존재하며 점점 커져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젊은 세대는 주류 기득권자에 대한 실망감이 생기면 철저히 외면한다"라며 "고은뿐만 아니라 논란이 된 유명작가들의 신작들이 예전처럼 잘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학적 권위가 있다해서 독자들이 아무 생각없이 책을 사보지 않게 된 것은 좋은 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면서도 "독자들의 더이상의 이탈을 막기 위해 문단과 출판사들은 새로운 주류(필자)를 등장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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