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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버스 음료반입 금지’ 시행 한 달…버스기사만 “어찌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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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후영 인턴기자] #. 지난 17일 오후 12시 서울 강남역 사거리를 지나는 버스 안. 곳곳에 테이크아웃 음료 컵을 든 승객들이 눈에 띄었다. 버스 운행 중 약 20~30분 간격으로 ‘버스에 뜨거운 음료를 들고 탑승하면 안 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승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버스기사 역시 음료를 들고 타는 승객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을 뿐, 별도의 제지는 없었다.

‘버스 내 음료반입을 금지(이하 음료반입 금지)’하는 서울시 조례가 공포된 지 약 한 달이 지났지만 현장의 변화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버스기사들 사이에서는 “조례가 기사의 승객 제재 의무와 권한을 애매하게 규정하면서 오히려 업무부담만 가중시킨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서울시는 “아직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경과를 지켜보며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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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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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시내버스업계 등에 따르면, 음료반입 금지 조례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28일 조례·규칙심의회를 열고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운행 기준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시내버스 운전자는 여객의 안전을 위해하거나, 여객에게 피해를 줄 것으로 판단되는 음식물이 담긴 일회용 포장 컵 또는 그 밖의 불결·악취 물품 등의 운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음료반입 금지 조례에 명시된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이다. 안전운행 방안 세부조항 6개 중 ‘의무규정’(해야 한다)이 아닌 ‘재량규정’(할 수 있다)으로 표시된 것은 해당 항목이 유일하다. 버스기사의 상황 판단이나 승객 항의 여부에 따라 제지가 들쭉날쭉하거나, 버스기사들이 승객 제지에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이유다. 시민 편의와 안전 증진을 위해 조례까지 만들었지만, 실효성은 전무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내버스 기사는 “조례만 있지 실제 승객의 탑승을 거부할 권한이나, 음료반입에 대한 과태료 등 법적 구속력은 없다”며 “시민과 불필요한 마찰이 생길 수 있어 음료반입을 완강히 거부하지 못한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대중교통에 음식물을 들고 탄 승객에게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500(한화 약 45만원)가량의 벌금을 부과하는 싱가포르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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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버스기사들 사이에서는 조례가 버스기사에게 권한은 주지 않은 채 책임과 부담만 늘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버스 안에서 음료 낙하 등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운전자가 안전운행 조례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버스기사가 과실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버스정책과 관계자 역시 “(기사에게) 재량권이 주어졌기에 사고가 일부 책임이 기사에게로 돌아갈 개연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그러나 현재 수준 이상으로 버스 내 음료반입을 제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의 관계자는 “테이크아웃 음료 소비가 시민들 사이에 보편화된 데다, 도시 간 문화적 차이도 있어 (싱가포르처럼) 일률적인 제지 혹은 제재안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률적인 음료반입 금지가 시민 개개인의 자율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된다. 서울시는 다만,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현장의 반응을 살피면서 버스기사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whosezer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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