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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황당무계? 지금 만화계선 내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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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김성모, 논란의 첫 웹툰 '돌아온 럭키짱' 6년 만에 끝맺어

"마초작가? 작가는 주눅들면 안돼"

논란의 웹툰 '돌아온 럭키짱'이 6년 만에 끝났다. '마계대전' '대털' 등 히트작을 내놨던 만화가 김성모(49)의 첫 웹툰 도전기도 막을 내렸다. 1995년 발표한 장편 만화 '럭키짱'의 세계관을 이어 열혈 고교생 강건마가 주먹과 의리 하나로 불량 학생을 쳐부수는 학원 액션 만화. 잦은 개연성 실종과 '주먹이 운다…징징징!' '녀석의 공격이 콧잔등 1㎜를 스쳤다' 같은 황당 어록을 남기며 곧잘 막장 드라마에 비견됐고, 별점 1점 주기 운동과 댓글 테러를 양산했던 '문제작'이다.

조선일보

경기도 부천 화실에서 만난 만화가 김성모가 주먹을 뻗어 보이고 있다. "만화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권선징악과 의리·근성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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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어떤가?

"부끄러움이 크다. 다작(多作) 때문에 망한 것 같다. 신문 연재 2개, 다른 웹툰 4개를 동시에 하다 보니 설정도 까먹고 100회쯤 지나니 스토리가 붕괴됐다. 일부러 옛날 갱지 만화책의 느낌, 정통 극화를 보여주려 했는데 아쉽다."

만화 속 등장인물은 기이한 대사를 연발하며 1회부터 줄기차게 쌈박질해왔다. 그러다 마지막 회에 이르러 "우리를 마지막으로 학원 폭력이 없어지길 바라자"며 갈등을 단 한 컷에 봉합해버린다. 마지막 대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였다. 전작(全作)에 걸친 일관된 엉뚱함은 그러나 애증의 대상. 독자들에게 김성모는 '성모 형'이었다.

―댓글 다 봤나?

"댓글 보고 상처 안 받는다. 오히려 고맙다. 딱 하나 마음 아픈 게 휴재 한 번 했던 것.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빵꾸 안 냈는데, 그날은 몸살이 너무 심해 사경을 헤맸다. 휴재 공지하니까 매일 별점 1점 주던 독자들이 9~10점을 줬다. 독자와 웃고 떠들고 재밌게 놀았던 6년이었다."

"데뷔 후 하루도 쉰 적이 없다"는 그의 만화는 '근성' 한 글자로 요약 가능하다. "지금껏 단행본 2000권을 냈다. '공장장'으로 불리지만, 일 쉬면 프로덕션 팀원 15명을 먹여 살릴 수가 없다." 웹툰행(行)도 근성 탓이었다. "어느 날 중학생 딸이 그러더라. 아빠 같은 사람은 절대 네이버에 연재 못 한다고." 그게 그의 근성을 건드리고 말았다.

―왜 근성인가?

"내 만화 인생 자체다. 이현세 만화 보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초등학교 4학년 이후 가장 중요한 게 근성이었다. 집에 돈도 없고 공부도 못하고 세상이 암담했다. 하루 4시간 자면서 무식하게 취재했다. 사채업의 세계를 알고 싶을 땐 돈 빌리고 안 갚아버렸다. 6개월 안 갚으니 집에 쳐들어오더라. 일부러 상점 들어가서 깽판도 쳐보고. 경찰서도 가보고."

―너무 극단적인데.

"마초 작가라 흉보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 남자다움이 주는 교훈이 있다. 주인공 강건마를 봐라. 한문 뜻이 있는 건 아니지만 멋있지 않나? 강하고 건실한 남자. 1994년 '그레이트 캡짱' 때부터 등장한 이름인데, 청소년 남자 주인공 이름은 무조건 강건마로 정했다. 언제까지나 남자 만화를 하고 싶다."

데뷔 25년. 그는 "지금 만화계에선 내가 최고"라고 했다. "작가는 누가 뭐라든 자기가 최고라고 여겨야 한다. 돈도 많이 벌었다. 빌딩도 샀고. 콤플렉스로 무너지는 것보다 거만한 게 낫다. 자신감은 반드시 작품에 반영된다. 차기작은 훨씬 괜찮을 자신 있다. 주인공은 강건마다."

―강건마가 또?

"올해 안에 돌아온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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