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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GM, 일자리 볼모로 ‘세금 먹튀’…여러 나라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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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년간 글로벌 사업장 구조조정

독일·영국공장 폐쇄 저울질하며

재정지원 끌어내 본사 손실 줄여

스웨덴선 지원받고도 결국 청산

한국도 청사진 확보없이 지원땐

단기적 연명에 세금만 날릴수도



한겨레

한국지엠(GM) 노사 고용특별대책위원회 3차 교섭이 열린 21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의 서문으로 교대근무를 하기 위해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부평/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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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투자은행 다니던 고위급 한국인이 ‘지엠(GM) 도사’라고 얘기하더라. 아홉수 (내다보고) 두는 회사. 지금 지엠도 같다. 우리나라에서만 엑시트(exit) 하는 게 아니다.”(최흥식 금융감독원장 지난 20일 기자간담회)

미국 지엠이 군산공장 철수를 발표하고 우리 정부에 1조원 이상 지원과 세제혜택을 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빌미로 정부를 압박해 구조조정 비용을 전가했던 지엠의 이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유럽과 호주 등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우리 정부가 한국지엠의 ‘단기 생존’에만 매달릴 경우 재정·세제 지원 등이 단기적 일자리 연명 비용으로만 소진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지엠의 중장기적 발전 청사진을 확보하지 않은 채 정부 지원을 쏟아부었다가 부실경영 책임이 큰 지엠 본사가 져야 할 단계적 철수 비용만 우리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엠 본사는 2009년 금융위기 때 미국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살아난 뒤 지난 10년간 글로벌 사업장의 구조조정을 끊임없이 진행해왔다. 19세기에 창업해 1920~1930년대에 지엠을 주인으로 맞았던 유럽과 호주의 자동차회사 오펠과 지엠 홀덴이 구조조정을 거쳐 공장을 폐쇄했고, 2017년 완전매각·철수 등을 겪었다. 또 1990년 지엠에 경영권이 넘어간 스웨덴 사브는 정부 지원에도 이리저리 되팔리다가 2017년 청산됐다. 독일의 오펠, 영국의 복스홀, 호주의 지엠 홀덴, 스웨덴의 사브 등은 경영권은 일찌감치 지엠에 넘어갔어도 생산기지가 자리잡은 국가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다. 그런 탓에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볼모로 잡힌 각국 정부가 재정·세제 등에서 상당한 지원을 퍼부었던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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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엠은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미국-독일-한국을 주요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삼았지만, 이젠 그 중심축이 지엠 차의 대규모 판매 시장인 미국과 중국으로 바뀌고 나머지는 이른바 ‘기타’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게다가 2014년 1월 지엠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메리 배라 회장은 그해 하반기 ‘지엠 2025 플랫폼 계획’을 발표하면서 26개의 글로벌 생산 플랫폼을 4개로 단순화해 수십억달러를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럴 경우 각국에 흩어져 있는 지엠 글로벌 생산기지들의 통합성은 커지고 비용은 절감되겠지만 독자적 기업으로서의 생존 역량은 줄어든다. 한국지엠의 2대 주주인 케이디비(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조 단위 돈을 지원한다고 해도 향후 한국지엠의 기업으로서의 생존 가능성이 어떠냐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현재 한국지엠은 내수 비중은 약하고 글로벌 지엠의 수출 물량 배정만 쳐다봐야 하는 상황인데, 당장 숨을 돌린다 해도 미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언제든 운명이 뒤집힐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독일에 공장 4곳을 두고, 복스홀 브랜드로 영국에 공장 한 곳, 벨기에에 공장 한 곳을 두었던 지엠의 유럽 자회사 오펠이 2009~2017년 겪은 구조조정과 매각 추진 과정 역시 한국지엠 구조조정 과정에서 참조해야 할 단초들이 담겨 있다. 독일 정부는 2009년 지엠과 함께 오펠도 파산 위기에 처하자 15억유로의 브리지론을 포함해 45억유로(약 6조원)의 융자를 약속하고, 캐나다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로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지엠은 독일 정부의 추가 지원을 패키지로 요구하는 다른 업체 등의 인수제안과 독일 지방선거 추이 등을 저울질하며 매각을 지연시켰다. 결국 2009년 말 독일 정부가 마그나로 매각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이를 백지화하고 자체 구조조정 방침을 통보해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선 독일과 영국 공장의 폐쇄 여부를 저울질하며 각국 정부의 지원 의사를 이끌어냈다. 결국 유럽 내 각국 정부의 지원과 노조의 양보에도 지엠은 글로벌 전략에 따라 유럽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하고, 지난해 3월에 프랑스 자동차 그룹 푸조·시트로엥(PSA)에 오펠과 복스홀을 매각했다.

지엠은 스웨덴 사브에 대해서도 공장 폐쇄를 무기로 정부 지원을 압박한 전례가 있다. 지엠은 2004년부터 독일 오펠 공장이나 스웨덴 사브 공장 중 하나를 폐쇄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스웨덴 정부는 대량 실업 사태를 우려해 20억크로나(약 2746억원) 이상 투자와 공장 인근 고속도로 개선 등의 지원책을 내놨다. 2009년 지엠 본사 파산 위기 때는 스웨덴 정부에 긴급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스웨덴 정부가 “사브를 살릴 주체는 스웨덴 정부가 아니라 지엠”이라며 거부하자, 지엠은 사브에 대한 파산보호 신청에 들어갔고, 매각을 결정했다. 하지만 2010년 매각 이후로도 지엠과 지식재산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사브는 부침 끝에 지난해 6월 청산에 이르게 된다.

결국 지엠이 2월 시한으로 우리 정부의 지원을 압박하고 있으나, 지엠의 글로벌 플랫폼 통합 등 전략에 대한 면밀한 검증과 한국지엠의 부실에 대한 철저한 실사 없이 지원에 나서는 것은 수년간의 연명에 세금을 털어넣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엠이 각국 정부에 구조조정 비용을 전가하고 지원이 끊기면 철수하는 것은 유럽 등을 포함해 한두번이 아니다. 정부도 선거를 앞둔데다 일자리가 아킬레스건이다 보니 사태를 2~3년만 미뤄두자 하면 정권 후반부나 다음 정권으로 폭탄 돌리기가 된다. 지원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세금을 날리지 않게 냉정하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엠도 철수 비용이 만만찮다. 군산 외 다른 공장은 단기간에 철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2월 시한에 절대 연연하지 말고 철저한 실사와 중장기 마스터플랜 확보를 앞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세라 이지혜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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